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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엄홍길 16좌 등정의 의미,

사실 엄홍길 다리 부상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죠.


그리고 엄홍길 박무택 사망 진실, 그리고 엄홍길의 휴먼원정대 이유와 더불어 엄홍길 명언들을 모아봤습니다.


# 목차

* 엄홍길 박무택 사망전 인연

* 엄홍길 다리 부상에도

* 엄홍길 휴먼원정대 조직 이유

* 엄홍길 명언 어록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엄홍길 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엄홍길진

[스타] - 엄홍길 가족 16좌 성공 이전 생활,등산과 입산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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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홍길 박무택 사망전 인연


아무튼 이것이 바로 엄홍길과 박무택이 칸첸중가를 오르던 중 비바크(biwak)를 시도하게 된 경위입니다.

(비바크 뜻 - 산에서 텐트 없이 지형지물을 이용해 밤을 지새우는 일. 텐트를 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경우에 사용함)

영화 히말라야에 이 에피소드가 잘 나와 있죠.


또 한번은 엄홍길의 다리가 180도 돌아가는 부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정확하게는 로프에 발목이 걸려서 발목에 큰 부상을 입음)


엄홍길: "안나푸르나를 등정할 때,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2명의 세르파를 구하려다가 발목에 로프가 감겼다. 뼈가 뒤틀어진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추락하던 셰르파들은 무사했지만, 난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사고난 지점은 해발 7600미터였기에, 다른 사람들이 부상자를 쉽게 도울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엄홍길: "그때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한번 움직여 보자'라고 결심하고는 기어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엄홍길 박무택 사진

* 엄홍길 다리 부상에도


엄홍길: "오직 앞꿈치와 두 팔로 기고, 온몸으로 구르면서 6일만에 베이스캠프(해발 4000미터)까지 내려왔어요."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엄홍길에게는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전문 산악인에게 생명처럼 귀중한, 다리 부상이었죠.


하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재활 훈련에 들어갔고, 결국 엄홍길은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엄홍길은 14좌 등정, 16좌 완등에 성공하게 됩니다.

(2007년 5월 31일)


그런데 2005년에 우리나라 산악계에 큰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박무택, 백준호, 장민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다가 사망했던 사건이었죠.


이 사건 당시에 엄홍길은 15좌(얄룽캉)에 등정하기 위하여 준비중에 후배들의 조난 소식을 들었죠.


이들은 8750미터에서 설맹에 걸려서 주저앉게 되었고,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설맹 - 자외선의 반사 때문에 일어나는 눈의 염증으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됨)

(박무택이 설맹을 당하자 후배 장민을 먼저 내려보냈는데, 장민은 실종을 당하게 됨)

* 엄홍길 휴먼원정대 조직 이유


험한 산에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기에, 한 걸음도 내걸을 수가 없었죠.

결국 박무택의 시신은 산에 매달린 상태로 다른 사람들이 등정할 때마다 지나치게 됩니다(엄홍길 동료 박무택 사망원인 사망연도 2005년).


이에 엄홍길은 휴먼원정대를 꾸려서 이들의 시신을 국내로 송치하려고 시도합니다.

영화 히말라야가 이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죠.



휴먼원정대는 결국 박무택의 시신을 찾는데 성공하지만, 도전히 산 아래로 운반할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몸이 꽁꽁 얼어붙어서 100㎏ 가까이 나감).


결국 히말라야에 돌무덤을 만들게 되었죠.

엄홍길: "초모랑마의 턱밑 8,750m 지점 절벽에서 로프에 매달린 채  꽁꽁 얼어붙은 (박)무택이를 발견했다. 당시 눈보라때문에 도저히 시신을 운구할 수가 없었다."


엄홍길: "그래서 무택이를 돌무덤에 안장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그렇게 무섭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싹 그치고 봄 날씨처럼 바뀌엇다. 이제야 무택이가 한을 풀고 편히 가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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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홍길 명언 어록


이처럼 엄홍길 대장은 14좌 등반, 16좌 등반, 휴먼원정대까지 한국인으로 실로 위대한 업적을 이룹니다(산악인 엄홍길 업적).

과연 그는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엄홍길: "저는 산을 알면 알수록, 또 깊이를 알면 알수록 두렵더군요.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많이 느껴요. 그런데 이 같은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은 정신력 밖에 없더군요."


엄홍길: "(로체샤르 등정때 후배가 갑자기 설맹이 되었고) 기막힌 상황이었어요. 모든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설맹이라니... 서로의 몸을 줄로 묶고, 한국에 있는 아내와 두 아이를 생각했어요. '나에게 용기를 달라.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난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라고 끊임없이 암시를 걸었어요."


엄홍길: "사고가 난 날을 되짚어보면, 욕심을 부린 날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산은 알면 알수록 두려운 대상이죠."


또한 엄홍길은 대장이기도 합니다.

자기 한몸만 잘 건사한다고 등반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위하여 올바른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하죠.

엄홍길: "사고가 터지면 저도 사실 두려움을 느껴요. 하지만 제가 만약 우왕좌왕하고 눈물을 쏟으면 저를 믿고 따라오는 대원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사고가 터지면) 오히려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 하죠."


엄홍길: "그러면서 속으로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 사고는 사고다. 산 사람부터 살아야 된다.'라고 끊임없이 되뇌여요. 그리고 그 상황을 벗어나면 뒤늦게 죄책감이 밀려오요."


실로 한 사람의 산악인으로나, 혹은 리더로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산악계에서는 엄홍길을 비난합니다.

'엄홍길 실체(엄홍길 진실)'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우리나라의 엄홍길이 일본보다 빨리 히말라야 14좌 등반에 성공했고, 세계 최초로 16좌 성공을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엄홍길이 세계 산악계로부터 받고 있는 비난과 멸시가 무엇인지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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