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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즐거운 사라 윤동주 연구 성과

(1/4) 총 4개의 글중 첫번째 글


마광수 즐거운 사라 사건, 그리고 마광수 윤동주 연구 성과를 비롯하여 어린 시절을 짚어봅니다.


# 목차

* 마광수 집안 이야기

* 마광수 등단 및 교수 임용

* 마광수 즐거운 사라 줄거리 및 내용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마광수 교수는 1951년 4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당시 1.4후퇴 피난 당시에 태어난 것이죠(마광수 고향 서울). 올해 66살입니다(마광수 교수 나이).

(마광수 학력 학벌) 청계초등학교,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동대학원 박사

(마광수 프로필 및 경력)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197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1979년 ~ 1983년 홍익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조교수

1984년 ~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그리고 2003년과 2006년에 각각 연세대 부교수와 정교수가 됩니다.)

마광수 교수 젊은 시절 사진

* 마광수 집안 이야기


원래 마광수 아버지가 종군 사진기자였는데, 6.25전쟁중에 전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많이 가난하게 성장했죠.


그런데 어릴 때부터 미술과 독서에 재능을 보입니다.

마광수: "초등학생 때 미술대회 나가서 상을 정말로 많이 탔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도 미술반 활동을 했고요. 물론 당시에 연극이나 문학 동아리 활동도 했는데, 어릴 때는 좋아하는 것들이 워낙에 많았으니까요."


마광수: "책도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라비안 나이트」나 중국 소설 「금병매」나 같은 야한 소설을 초등학교 4학년 때 다 뗐을 정도로 아주 조숙했죠."


마광수: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전 그림을 꾸준하게 그렸어요. 제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의 표지도 제가 직접 그렸죠."


그리고 마광수는 국문학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입니다.

현재는 그저 '야한 소설을 쓴 교수'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사실 마광수가 박사 과정때 쓴 '윤동주 연구'는 우리나라 시 역사상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연구 자료이죠.

* 마광수 등단 및 교수 임용


참고로 당시 윤동주는 거의 무명 시인이었습니다(마광수 윤동주 관계).

마광수의 연구 덕분에 재조명을 받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의 국민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77년에 등단해서 시인으로 활동한 마광수는 1979년 홍익대에 교수로 임용되는데,

당시 불과 29살이었습니다. 이른바 20대 천재 교수의 탄생으로 당시 꽤나 주목을 받았죠.

또한, 1983년에 내놓은 '윤동주 연구'로 역시 큰 주목을 받았고요.


그리고 1989년 마광수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성 담론에세이를 냈는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마광수: "그 해의 베스트셀러가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리고 내 책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인데, 지금까지 거론되는 책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뿐이잖아요."


마광수: "몇년전에 중앙일보에서 ‘해방 이후에 패러다임을 바꾼 세 권의 책’을 손꼽은 적이 있는데, 바로 박지향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이어령의 <전환시대의 논리> 그리고 내 책이었어요. 그만큼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거지."


마광수가 자화자찬을 하네요.

사실 이미 1980년대인 전두환 시대때부터 3S 정책이라고, 대중들에게 섹스를 많이 노출시킵니다.

80년대의 에로틱한 영화들이 대표적인 예들이죠.


오히려 마광수가 89년에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학계와 지성계가 폐쇄적이고, 사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네요.

.. ..

* 마광수 즐거운 사라 줄거리 및 내용


그리고 1992년 마광수는 문제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출간하면서, 외설 시비가 붙게 됩니다.

(실제로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때 이미 강의가 취소되는 등의 여러가지 압박을 받았음)


참고로 '즐거운 사라'는 굉장히 읽기 쉽고 단순한 소설인데, 그래도 그 안에 마광수가 의도한 소설적 장치들이 있습니다.

마광수: "이름인 사라는 고심 끝에 붙인 거예요. 성이 라(나)인데, 사라가 술집을 나가잖아요. 그래서 나를 돈 주고 사라라는 '나사라'라는 뜻으로 붙였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더군요."


그러다가 마광수는 연세대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다가 '긴급체포'를 당하게 되었죠. (긴급체포 뜻 - 영장도 필요없이 현행범일 경우에 바로 체포할 수 있음)


결국 이 사건으로 마광수는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또한 연세대 교수직에서도 해직되게 됩니다.

(후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현승종 국무총리가 법무장관에서 마광수 교수를 사법처리할 것을 간접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드러남)


마광수: "작가가 구속되는 건 처음이었어요. 세계 최초였죠. <채털리 부인의 사랑>(영미 작가 DH 로렌스의 작품으로 외설 음란 시비를 낳았음) 작가도 현행범으로 잡혀간 게 아니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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