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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총 4개의 글중 두번째 글


마광수 교수 즐거운 사라 사건 이후와 마광수 결혼 생활에 대하여 짚어봅니다.

(마광수 부인(아내)김방옥 교수)

# 목차

* 마광수 즐거운 사라 일본 평가

* 마광수, 이문열의 비난

* 마광수 필화 사건

* 마광수 교수 부인(아내)김방옥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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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 마광수 즐거운 사라 윤동주 연구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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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광수 즐거운 사라 일본 평가


마광수: "OECD 국가 중에 야한 소설로 탄압하는 데는 우리나라밖에 없을걸요?"


사실 서방 국가에서는 당시 한국을 준선진국 정도로 분류를 했는데, 당시 서방 언론에서도 마광수의 긴급체포는 꽤나 큰 흥미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궁금해 했죠.


마광수: "그런데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 번역돼서 한국 소설로는 최초로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은 기록이죠."


마광수: "일본에서 볼 때 한국은 무척 한심한 거예요. 그쪽에서 볼때, 우리나라는 한마디로 유교적 정신주의에 함몰돼있다는 거지."


마광수는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합니다.

마광수: "정말 후회 많이 했어요. 그 사건으로 시달림을 오죽 많이 받았어야지. 사실 기껏해야 판금 정도로 생각했지, 날 잡아 가둘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사라 때문에 나의 40대가 완전히 가버렸어요."


마광수: "사실 무라카미 류, D.H. 로렌스의 성과 사랑에 얽힌 책들은 내 책보다 더 야해요. 그런데 그런 책들은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19금이 된 적이 없고, 난 잡아가두고... 우리나라는 국수주의와 사대주의가 막 엉킨 나라예요."


마광수: "영화는 봐주고, 소설은 안 봐준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런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해서, 결국 마광수는 우리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이중성을 지적하게 됩니다.

마광수: "낮과 밤의 이중성이에요. 낮에는 신사이고, 밤에는 야수이고. 한국의 밤 문화는 정말 엄청나요. 술집이 룸살롱같은 곳에 가면, 여자들을 제공해주잖아요."

마광수 부인(아내)김방옥 사진

* 마광수, 이문열의 비난


사실 당시 마광수를 비판했던 사회 지도층들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문열 - (마광수의 작품은) 구역질을 동반한다, 보잘것없다


서울대의 모 교수 -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 마광수는 교수가 아니라 마광수씨로 불러야 한다.


모 평론가 - <즐거운 사라>에 나오는 여대생과 교수 사이에서 문란하고 변태적인 성 관계로 학점이 흥정대상이 된다. 이는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고, 마광수 역시 (소설처럼) 여제자 사이의 모종의 성적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전두환의 3S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이런 사람들의 의식속에는, 영화는 대중들에게 제공되는 오락거리이고, 문학(소설)은 대중들을 계도하는 훈화 수단으로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네요.


또한, 마광수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 작가와 서양 및 일본 작가에 대한 이중 잣대 역시 엄연히 존재한 것은 사대주의의 한 단면이었고요.


아무튼 즐거운 사라 이후 마광수는 커다란 타격을 받습니다.

전과 1범으로 교도소에 갇히기도 했고, 연세대로부터 면직을 당하기도 합니다(1995년).

긴급 체포 당시 마광수 교수 사진

* 마광수 필화 사건


1998년, 우여곡절끝에 연세대에 다시 복직되었지만, 2000년에는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논문 실적 등의 문제로 탈락했고, 국문학과 교수들의 집단 따돌림을 당하여 재임용이 거부당하기도 합니다.


마광수: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필화 사건(즐거운 사라 사건) 이후에도 우울증을 앓기는 했지만, 그때(2000년)는 (연세대) 동료 교수들이 똘똘 뭉쳐서 나를 내쫓으려 했으니까요. 당시에 우울증에 신경쇠약까지 걸려고, 울화병까지 생겨서 사경을 헤맬 정도였어요."


결국 마광수는 정신과 병원에 한때 입원을 하기도 했고,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기도 합니다.

'즐거운 사라'라는 책 하나로, 인생에 큰 타격을 받은 것이죠.


참고로 2006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올렸고, 당시 언론들은 마광수를 즉각 구속시키라고 주장했고, 결국 검찰은 마광수를 불구속 시킵니다.

이에 대한 재판결과 마광수는 벌금 200만원의 판결을 받았고, 마광수는 '전과 2범'이 됩니다.

'즐거운 사라'란 책 하나로 별 2개를 달았네요.


사실 기득권 측에게 민중은 계도해야 할 대상입니다.

민중이 성을 즐기더라도 허용된 범위 내에서 즐겨야 하고, 민중들을 계도하는 수단인 '문학' 등에서 이탈자가 나오면, 절대 그냥 놔두지 않죠.


그러면서도 본인들에게는 최고급의 성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착각합니다.

동료들이 아무리 성적인 범죄를 저질러도, 동료 의식으로 이를 덮고 무마를 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장자연 사건이나, 모 차관의 별장 성접대 동영상 사건들이었습니다.

이런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사회 지도층 혹은 고위 공직자들은 한명도 없었죠.

.. ..

* 마광수 교수 부인(아내)김방옥


참고로 마광수는 연극계의 유명한 배우였던 김방옥과 1985년에 결혼합니다.

마광수: "1980년대에는 남자는 서른 살 전후로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철칙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서른살이 되자, 주변에서는 성화였어요. 대학 교수인데도 왜 아직 결혼하지 않느냐?"라고요."


마광수: "결국 35살 되던 해 여름, 결혼하기로 결심했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전처와 겨울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마광수 교수 배우자(와이프)김방옥)


마광수: "서른다섯에 결혼했고, 이후 3년 같이 살다가 2년동안 별거하고 이혼했어요. 사실 결혼 전 연애 기간 10년을 포함해서, 젊었을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여자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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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뒤(2016년 7월 31일) 발행됩니다)

[스타] - 마광수 전부인 김방옥,마광수 이혼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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