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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김 사망원인과 머리

유라준 2016.07.28 17:00

(1/4) 총 4개의 글중 첫번째 글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 사망원인과 더불어 평가, 어린 시절 등을 짚어봅니다.


# 목차

* 앙드레김 어린 시절

* 앙드레김 패션디자이너가 된 계기

* 앙드레 김 본명은 김봉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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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본명 김봉남)은 1935년 8월24일 태어나 2010년 8월 12일 사망하게 됩니다(향년 76살).

앙드레김 고향은 경기도 고양(현재 서울 은평구)였습니다.


(앙드레김 종교) 불교

(앙드레 김 학력 학벌) 신도초등학교, 고양중학교, 한영고등학교 졸업, 국제복장학원 졸업

(앙드레 김 프로필 및 경력) 1962년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오픈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

1980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주디자인으로 뽑힘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의 선수복을 디자인


앙드레김 사망원인 - 앙드레김은 2010년 대장암 합병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별세하게 됩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말년까지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건강이 악화된 면이 없지 않았죠.

앙드레김 사진

* 앙드레김 어린 시절


앙드레김이 아직 젊은 때인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대표 패션디자이너, 우리나라 최초의 남성 디자이너로 무척 유명했습니다.


앙드레 김하면 영어와 불어를 섞어 쓰는 말투때문에 유학파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사실 앙드레 김은 외국 유학을 한번도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영어 등의 외국어에는 재능이 있었죠.


앙드레김: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지만, 전 외국 유학을 떠나본 적이나, 혹은 외국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적이 없었어요. 다만 고양중학교에 입학하고 영어를 처음 배웠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가 없었어요."


앙드레김: "당시 교과서와 사전에 나오는 영어 발음기호를 그대로 공부했기에, 제 발음이 영국식 악센트로 굳어졌어요."


앙드레김: "그리고 (625때였던) 부산 피란시절에 미군 통신부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당시에 학생들이 3교대로 일을 했는데, 전 밤 11시에부터 아침 7시까지 일했어요. 그때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앙드레김: "사실 그때 같이 일했던 대학생 중에, 나중에 유학을 간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래서 저 역시 유학을 너무 가고 싶어서 아버님께 말씀드렸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서 결국 가지 못했죠."


앙드레김: "(전쟁이 끝나고) 서울 환도 후에는 의상디자인에 몰두하게 됐어요."

앙드레김 젊은시절 사진

(원래 앙드레김 머리는 탈모가 진행되면서 가발을 써보기도 했지만, 본인이 불편하게 느끼면서 머리에 칠을 하게 됨)

* 앙드레김 패션디자이너가 된 계기


의상에 관심을 갖게 된 앙드레 김은 국제복장학원에 입학해서 1기생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국제복장학원이란 당시 우리나라 패션계의 대모라고 불리던 최경자가 만든 의상학원이었는데, 여기서 앙드레 김은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최경자: "그 시절에는 남자가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만해도 굉장히 특별한 일이었어요. 게다가 (앙드레김은) 키도 크고 잘 생겨서, 특별히 눈에 띄었죠. (의상 공부에) 굉장히 열심이었는데, 항상 공주같은 옷을 만들었어요."

(참고로 앙드레김 키가 178cm로, 젊은시절에는 훤칠한 미남이었음)


최경자: "성진이(앙드레김의 과거 잠시 사용하던 이름)이는 매우 활달한 성격에 또 영어도 잘 해서 외국인들과 교제가 많았어요."


그리고 앙드레김은 국제복장학원을 졸업한 뒤, 1962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살롱 앙드레'를 오픈하게 됩니다.


앙드레김: "(이름을 앙드레김으로 한 이유는) 당시 프랑스 대사관의 외교관으로부터 충고를 받았기 때문이었어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한국의 성은 간직해도 이름은 부르기 쉬운 이름인 앙드레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충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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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드레 김 본명은 김봉남


앙드레김: "살롱을 오픈할 당시에, 조선호텔 앞에 GQ테일러라는 양복점이 있었는데, 거기는 양복점 문 양쪽으로 쇼윈도가 두 개였어요. 무작정 그곳 주인을 찾아뵙고 한쪽 쇼윈도를 빌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주인분께서 쾌히 허락을 해주셨어요."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앙드레김은 외국 친구들이 많았고, 1966년에는 프랑스 패션 협회의 초청으로 파리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열게 됩니다.


당시 프랑스 현지의 반응은 '신비로운 동양의 마술', '동양의 고요한 나라로부터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등의 찬사를 받았죠.


또한, 앙드레김은 6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성일과 엉앵란 부부의 웨딩드레스를 맡으면서,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패션 디자이너중의 한명이 되었고, 이 또한 인지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생전에 앙드레김은 일벌레로 유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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