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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항기 노래모음, 윤항기 이거야 정말 등의 히트곡은 아주 유명합니다.

윤항기가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고, 특히 마약중독이었던 아버지의 밑에서 이런 성공을 했던 점이 아주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윤항기의 어린 시절과 그의 발자취가 궁금하네요.

(윤항기 태진아)

태진아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태진아 아내 옥경이 이옥형 사진과 첫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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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윤항기 집안 이야기

* 윤항기 노래모음

* 윤항기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

* 윤항기 가수가 된 계기

* 윤항기 탈영 사건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윤항기는 1943년 9월 15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납니다(가수 윤항기 고향 충남 보령). 올해 74살이죠(가수 윤항기 나이).

(윤항기 학력 학벌) 연세대학교 종교음악학교 졸업, 미국 미드웨스트 신학대학교 신학과 학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대학원 교회음악학과 석사 및 신학 박사 졸업

(윤항기 프로필 및 경력) 1959년 키 보이스(Key Boys)의 일원으로 데뷔(우리나라 최초의 록 음악 밴드)


이후 1974년 솔로 가수로 데뷔

대표곡으로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이거야 정말,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어떡하라고 등이 있습니다.


또한 1975년에는 영화 '나는 어떡하라고'의 주연배우로 스크린에 데뷔합니다(영화배우 윤항기 데뷔).


가수 윤항기 젊은시절 과거 사진


* 윤항기 집안 이야기


윤항기 부모는 모두 뛰어난 예능인이었습니다.

윤항기 아버지 윤부길은 일제시대때 경성음악전문 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습니다. 오페라부터 악극 연출까지 주도했던 우리나라 예술계의 선구자였고, 또한 원맨쇼의 일인자로 '부길부길쇼' 등을 통하여 1940년대 악극단 무대를 주름잡았죠.


그리고 윤항길 어머니 성경자 (예명 고향선) 역시 일본 유학을 다녀왔던 엘리트로, 천재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이기도 했습니다(윤항기 집안).


하지만 성경자는 윤부길의 첩이었고, 윤항기 윤복희 남매는 첩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들이 큰어머니라고 부르던 윤부길의 본처로부터 구박을 당하면서 성장하게 되었죠.


윤항기: "아버지가 하던 예술단체의 활동이 어려워져 빚을 졌고, 결국 집을 넘기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 청계천 다리 밑에서 거지로 한동안 살았다. 게다가 625 전쟁이 일어나서 (인민군을 피해) 숨어 지냈다."


윤항기: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탈환하였고, (어머니는) UN군 위문단으로 활동하면서 공연료로 담배와 식료품을 받아오셨다. 그것을 팔아서 겨우 먹고 살았다."


* 윤항기 노래모음


윤항기 걱정을 말아요 듣기

윤항기 걱정을 말아요 전국top10가요쇼 20141125  


 윤항기 나는 행복합니다 듣기 

나는 행복합니다 - 윤항기 (1980,윤항기) 2013-12-09  


윤항기 별이 빛나는 밤에 듣기 

윤항기 - 별이 빛나는밤에  


윤항기 여러분 듣기 

여러분 - 윤항기 (1979,윤복희), 2013-04-29 Full HD  

 윤항기 이거야 정말 듣기

   


 윤항기 나는 어떡하라구 듣기  


 윤항기 친구야 친구 듣기

   


윤항기 노래모음 듣기



* 윤항기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


이 당시 윤항기 부모는 유랑극단으로 여러곳을 떠돌아 다녔고, 윤항기 여동생 윤복희 역시 부모님과 함께 다닙니다. 다만 윤항기만 부모와 떨어져서 청계천에 살면서 구두닦이와 신문팔이를 하면서 혼자 살게 되었죠.


참고로 윤항기 아버지는 이전부터 마약 중독자였고, 마약 중독이 심해지면서 남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됩니다.


윤항기: "예술가였던 아버지는 마약 중독자였다. 그래서 무용가였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유랑극단과 계약을 맺고 무대에 출연했는데, 결국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객사하셨다."


윤항기: "아버지 역시 마약 중독 요양을 하다가 (어머니의 죽음) 2년 뒤에 세상을 떠나셨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 아버지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절대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윤항기: "결국 청계천 주변 좌판에 들어가 가마니를 깔고 자는 등 거지 생활을 하게 되었다. 무척 힘든 시절이었다."


윤항기 윤복희 남매가 어릴 때부터 무척 불우했던 것 같네요.

당시 6.25 전쟁통이었기에 이산 가족도 많고 거지들도 많았는데, 윤항기 남매 역시 무척 어려운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윤항기는 스스로 일어서게 됩니다.



* 윤항기 가수가 된 계기


윤항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김희갑 선생님을 찾아가서 "제가 윤부길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음악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이때 윤항기는 김희갑으로부터 드럼과 노래를 배웠고, 그 덕분에 음악을 알게 됩니다.


결국 1958년 윤항기는 미8군 쇼 무대에 가수로 데뷔하면서,

가수로 생활을 영위해 나가게 되었죠.


하지만 1960년 해병대에 입대해서 군악대 생활을 하다가 탈영을 하게 됩니다(윤항기 군대 탈영 사건).


윤항기: "내가 원래 말더듬이여서 고참들로부터 기합을 받는 일이 많앗다. 그럴 때마다 동기인 김덕수가 위로를 해주어 큰 힘이 되었다."



* 윤항기 탈영 사건


윤항기: "어느 날 휴가를 나갔다가 어린 여동생(윤복희)이 굉장히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결국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 이후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여서 동생을 먹여 살렸다."


윤항기: "그렇게 6개월동안 탈영병 생활을 했는데, 어느날 (휴가를 나온) 김덕수가 찾아와서 자수를 권하더라. 결국 자수를 했고 (정상이 참작되어서) 가벼운 처벌로 끝나게 되었다. 아마 김덕수가 없었다면, 가수 윤항기 역시 없었을 것이다."



이후 윤항기는 1964년 한국 최초의 록 그룹 '키보이스'를 결성해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또한 1970년대부터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면서 '별이 빛나는 밤에', '이거야 정말', '장미빛 스카프' 등을 히트시킵니다.

아마 탈영병으로 그대로 살았다면, 이런 활동은 절대 하지 못했을테죠.


윤항기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윤항기 부인 정경신 직업과 혼전임신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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