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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이야기

유시민 노무현 일화 인연과 유시민 이명박 박근혜 정권

(3/3) 총 3개의 글중 세번째 글


유시민 노무현 일화와 더불어 둘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가 궁금하네요.

또한 유시민은 참여정부에 대한 해명, 이명박 정권 등에 대한 비판을 하는데, 그의 생각이 어떤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시민에 대한 이야기가 2편에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3)

유시민 딸 유수진 서울대 성폭행 사건과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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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유시민 노무현 인연

* 유시민 노무현 정권의 핵심 인사로

* 유시민 노무현 일화

* 유시민의 해명

* 유시민 이명박 박근혜 정권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유시민 노무현 인연


과거 유시민 노무현 인연이 처음 시작된 것은 제 13대 국회때입니다.

(1988년 5월 ~ 1922년 5월)


당시 유시민은 이해찬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고, 노무현은 통일민주당 의원이었습니다.

(당시 노무현은 이해찬 평민당 의원과 함께 국회 노동위 소속이었음)


유시민: "당시는 내가 일방적으로 노 의원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관계였다."



그러다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시민이 한경혜와 결혼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유시민 노무현이 더 가깝게 지내게 됩니다.


당시 유시민은 약 5년동안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잠시 한국에 귀국할 때마다 노무현을 만나고 서로 여러가지 토론을 벌이면서 서로의 가치관과 성격을 파악하게 됩니다.



유시민 노무현 사진


* 유시민 노무현 정권의 핵심 인사로


그리고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때 유시민은 노무현 당시 후보의 캠프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되면서, 서로간의 신뢰가 더 두터워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노무현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당선 된 다음, 유시민은 집필 활동에 몰두하려고 하는데, 당시 후단협(후보 단일화 협의회)에서 노무현을 후보에서 낙마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유시민이 절필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뛰어들게 되었죠.


유시민: "다시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 앞에 서는 심정이다."


결국 개혁국민정당이 2002년 11월에 창당되게 됩니다.



이후 잘 알려진 것처럼, 유시민은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노무현 정부의 핵심중의 한명이 됩니다.



* 유시민 노무현 일화


유시민이 처음 국회의원이 되어서 국회에 등원했을 때,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호칭할 때마다 "노무현이 어디갔냐?", "노무현 그 자식", "걔 왜 그래?" 등의 막말을 합니다.


이에 유시민이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의원님들 최병렬(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어디 갔어요? 병렬이요!"라고 하자,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의 무척 불쾌해 합니다.

(유시민 막말)


그러자 유시민이 "의원님들도 본인의 대표를 그렇게 부르니까 기분 나쁘시죠? 지킬 것은 지켜야지, 의원님들 안방도 아니고 국회에서 (대통령을) 그렇게 부르면 되겠습니까?"라고 반박을 합니다.


이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유시민 앞에서만은 노무현에 대하여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됩니다.



참고로 참여 정부 말기에 당시 여당 내에 여러 대권 후보가 있었습니다.

정동영, 이해찬, 한명숙 등...



그런데 노무현은 유시민 역시 차세대 주자로 평가하고 있었고, 차기 대선에서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윤태영의 책 '바보 산을 옮기다'에서 발췌)


유시민과 노무현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하네요.



* 유시민의 해명


참여정부가 끝난 다음에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유시민의 해명입니다.


유시민: "종부세, 국가균형발전 정책 등 참여정부의 개별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찬성 쪽이 훨씬 높은 게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말이나 성품과 관련해 일부 보수언론이 집중적으로 국민과 참여정부의 거리감을 조성하는 전략을 썼고, 우리가 그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유시민: "지지율이 높은 개별정책들이 참여정부의 총체적인 국정수행 지지율로 연결되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보수언론과 싸움에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완패했다."


유시민: "전 소시민 입장에서 국정원, 검찰, 경찰, 청와대 등 어느 권력 기관도 두렵지 않지만, 조중동 같은 보수신문은 무서워요(웃음). 그 분들은 개인적인 감정을 지면을 통해 풀거든요."



유시민: "조중동은 과거 노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모든 것을 동원했고, 그리고 우리 참여정부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은 것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 똑같은 사안에 대해 입장을 완전히 바꾸면서 국민을 욕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광우병 문제만 해도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와 쇠고기 수입을 분리해 협상했고, 그 결과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한다 등의 결과를 도출했어요."


유시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은 광우병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그런데 지금(이명박 정부)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가 위험하다고 하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괴담이라고 몰아붙이잖아요. 이런 조중동의 태도는 국민에 대한 모욕이에요."


* 유시민 이명박 박근혜 정권


이후 노무현 정권이후에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연달아 들어서게 됩니다.


유시민: "정권 교체가 된 후를 보세요.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 건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핵심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명박씨 (대통령)가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그저 (부자) 감세나 작은 정부, 경제성장률 제고를 말하는데, 이런 부분들은 방법론이 아니에요."


유시민: "참여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만든 정책도 (이명박 정부에서) 다 파기하고 있으면서 이명박씨가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씨가 공약으로 내건 경제성장률 7% 달성과 연간 60만 개 일자리 창출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에요."


실제로 이명박은 747 공약(한국 경제 성장률 7%,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 세계 7위권의 선진대국 달성)은 거짓말이었던 것이 들어납니다.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박근혜 역시 '증세 없는 복지'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일반적으로 역사를 아는 사람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데,

한국인들은 불과 10년 사이에 '뉴타운 개발(국회의원 대거 당선)', '747 공약', '증세 없는 복지' 등을 적극 밀어줍니다.


다음 대통령은 또 어떤 거짓말 공약으로 당선될지 궁금하네요.


(유시민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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