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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정한용 김대중 인연과 결별이유 정한용 추락하면서

탤런트 정한용은 김대중과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정한용을 국회의원으로, 정치인으로 만든 것이 김대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한때 정한용이 '동교동계의 황태자'라고 불릴 정도로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는데, 갑자기 추락하게 됩니다.

과연 거기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정한용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정한용 국회의원 활동 내역과 미국 유학


(스폰서 링크)


# 목차

* 정한용 김영삼으로부터 고소당해

* 정한용 재산이 거덜났다고 한탄하는

* 정한용이 국회의원이 된 이유

* 정한용 동교동계의 황태자에서 끝없는 추락을

* 정한용 정치 은퇴 이유는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정한용 김영삼으로부터 고소당해


또한, 정한용은 김영삼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합니다(1998년 10월).


김영삼 전대통령 측: "정한용의원이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영삼 전대통령의 지시로 임채주 당시 국세청장이 1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하여 정한용 의원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


이 고소사건에 대하여 검찰은 수사를 지지부지하다가 그냥 종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정한용이 아무 근거도 없이 허위 비방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김영삼이 정말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일까요?



후에 조금 다른 시각에서 사건이 밝혀집니다.


노태우 회고록: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에게 3천억원을 비자금으로 주었다."


이에 대하여 김영삼 측은 반박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는 노태우의 뒤늦은 고백이 진실에 가깝습니다.


1992년 당시에 3천억원이라면, 지금의 돈 가치로는 1조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네요.


정치권이 경제계를 압박하여 이런 거금을 비자금으로 만든 것,

혹은 경제계가 이권을 위하여 정치권에 미리 뇌물을 바치는 것,

모두 우리 경제의 활력에는 좋지 못합니다.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대표적인 문제중의 하나죠.


정한용 사진


* 정한용 재산이 거덜났다고 한탄하는


어쨌든 정한용은 이런 의정활동을 하는데, 경제적인 문제를 겪기도 합니다.


정: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수입이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야당을 선택하는 탤런트에게는 가장 큰 수입원인 CF 모델 섭외가 한 건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정한용이 국회의원이 된 1996년에는 야당이었고, 나중에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1997년 연말부터는 여당 국회의원이 됩니다(정한용 김대중).


정: "현실적으로 정치인들은 불법적인 정치 후원금이 없으면, 생활이 유지될 수 없다. 내가 받는 본봉이 500만원 정도(15대 당시 기준)인데, 필수적으로 시민단체 등에 기부금을 내놓고 나면 집에 가져가는 돈은 110만원 안팎이었다.



정: "가령 학교 대회가 있으면 상을 준비하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갔다. 당시 국회의원상이 1등, 시청상이 2등인데, 시청은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지만 국회의원은 모두 자비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한용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판공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더 컸죠.

현재는 당시보다 국회의원에 대한 지원도 많아지고, 또한 국회의원들이 돈을 많이 쓰게 하는 풍토가 개선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혁을 통하여, '국회의원들이 돈을 많이 쓰는 풍토' 자체를 바꾸어야 할 것 같네요.

(참고로 정한용이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노후에 국회의원 연금을 받게 됩니다.)



* 정한용이 국회의원이 된 이유


참고로 1990년대에는 연예인들의 국회 진출이 많은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원로 배우들인 최불암(14대), 이순재(14대 지역구), 강부자(14대)들이었고, 또한 지역구가 아니라 전국가로 당선된 사람들이 많았죠.

그런 점에서 비교적 젊은 정한용이 지역구에서 당선된 것은 특이한 사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한용은 어떻게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을 의미함)



첫째, 정한용은 언변이 굉장히 좋습니다.

사실 정치인들 혹은 정치지망생들을 보면, 대부분이 친화력이 좋은 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빨리 받아야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혹은 대중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정치인으로 많이 진출하죠.)



둘째 정한용은 비교적 생각이 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평소에도 '시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연기자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정: "우리 방송연예계는 너무나 미국, 일본식의 자본주의적인 요소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배우는 현재 관객을 '환각시키는' 화려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유럽은 이와 다르다. 우리나라 연예계도 유럽처럼 배우가 사회적인 가치를 대중과 함께 깨우치고 느끼는 '시대의 동반자적 존재'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또한 정한용은 조지 스코트의 유명한 말을 종종 인용하기도 합니다.

""배우는 자기로서, 극중인물로서, 자기를 보는 다른 관객으로서 삼중인생을 살아야 한다."


정한용 과거 사진


사실 일반인들은 정치인들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그저 피상적인 판단을 하고, '욕'을 할 뿐이죠.


실제로 직접 만나보면, 정치인들은 일반인들보다 뛰어난 면이 많습니다.

일반 대중이 정치인을 단순히 욕만 한다면,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수준이 올라가지 못합니다.


대중이 정치인의 뛰어난 점을 인정하고, 대중 스스로의 수준을 더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지만, 정치인의 수준 역시 올라가는 것이 가능하죠.



* 정한용 동교동계의 황태자에서 끝없는 추락을


아무튼 정한용은 초선 의원치고는 무난한 의정활동, 높은 인지도, 김대중의 신임을 바탕으로, '동교동계의 황태자'라고 불리게 됩니다(정한용 김대중).

사실 동교동계란 김대중의 가신 그룹을 지칭하는 것인데, 정치신인이자 충북이 고향인 정한용이 이들과 함께 묶인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이었죠.



하지만 후에 그 사이가 틀어지게 됩니다.


정: "국회의원 시절 당 선배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대선을 도와준 당 선배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자리를 요구했다. 그래서 내가 이에 대한 충고를 하니 그 선배들과 멀어지게 되더라."(정한용 김대중)


정: "입바른 소리하다 동교동계 눈밖에 나고 사이가 틀어졌다. 탈당 후 밤새도록 울었다."(정한용 탈당 이유)



그렇게 정한용은 2000년 새정치국민회의를 탈당해서 자민련에 입당하게 됩니다.


정: "당이 개혁에 대한 원칙이나 뚜렷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나에 대한) 공천배제설을 흘리는 등 정치 신의를 저버리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당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판단, 탈당을 결심하게 됐다."(정한용 탈당 이유)



결국 '동교동계의 황태자'에서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네요.

그리고 정한용은 제 16대 총선에 자민련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게 됩니다(2000년 4월).



* 정한용 정치 은퇴 이유는


정: "연기를 할 때는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치를 한 뒤부터 저를 욕하는 사람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도 제가 싫어서 욕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제가 속한 정당의 대표에 대한 지지 여부에 따라 저를 욕했다 칭찬했다 하는 거죠."(정한용 김대중)


정: "전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싶어서 정치를 한 것이지, 욕을 먹으려고 한게 아니거든요."


확실히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정치 의식은 그리 높지 않은 편입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들의 수준으로 결정된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중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은, 정치 수준이 올라갈 것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정한용은 이런 회의감으로 정치 은퇴를 선택하는데, 사실 그의 정치 은퇴에는 이런 부분만 작용한 것이 아닙니다.


국회의원 낙선 후에 큰 일(정한용 간통죄 사건의 전말)을 겪었고, 이 사건이 사실 그의 정치적인 생명을 완전히 끝장냈죠.


정한용 이야기가 3편으로 이어집니다.

(새창보기) 정한용 부인 전혜선 이혼할 뻔한 간통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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