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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철 노래모음 11곡입니다.

특히 이승철과 그런사람 또 없습니다와 노무현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사실 이승철의 그런사람또없습니다는 2009년에 나왔는데, 당시 노무현의 서거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노래가 큰 주목을 받았죠.


또한 이승철이 과거에 김태원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 역시 한번 짚어봅니다.


이승철과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승철 김태원) 새창보기

김태원 부인 이현주와 아들 자폐의 실상


(스폰서 링크)


# 목차

* 이승철 노무현과 그런사람또없습니다.

* 이승철 노래모음 11곡

* 이승철과 김태원의 관계

* 이승철 폭행당한 사건

*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

* 이승철의 사업가적인 마인드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가수 이승철은 1966년 12월 5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이승철 고향). 올해 50살이죠(이승철 나이).

(이승철 키 몸무게 혈액형) 170cm, 65kg, A형

(이승철 학력 학벌) 불광초등학교, 서대문중학교, 대신고등학교 졸업, 수원공업전문대학 기계공학과 중퇴

(이승철 프로필 및 경력) 1985년 7월 부활의 보컬로 데뷔


1989년 솔로 가수로 데뷔하였고, 이후 큰 인기를 얻게 되지만, 아래에 서술하는 여러가지 사건으로 부침을 겪게 됩니다.


이승철 대표곡으로 희야, 마지막 콘서트,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소녀시대,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네버엔딩 스토리, 인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등이 있습니다.



* 이승철 노무현과 그런사람또없습니다.


이승철에게 히트곡은 무척 많지만, 최근 가장 사랑받는 노래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입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할 당시에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았죠(이승철 그런사람또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승철이 특별히 언급한 말이 있습니다.


이승철: "노래는 생명이 있고 임자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또한 사회 분위기가 굉장한 역할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노래‘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일주일간 370번 방송됐다. (아무래도) 곡도, 가수도 타고난 운명이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잘 타고난 것 같습니다.


이승철 사진


* 이승철 노래모음 11곡


#1 이승철 노래모음 11곡 이승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승철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노무현대통령 추모영상]  


 이승철 네버엔딩스토리 kpop /부활-네버엔딩스토리/ Born again(復活BOO HWAL)-Never ending story (2002년)

   


 이승철 그사람

 


이승철 마이러브(이승철 my love)  


 이승철 인연

   


이승철 서쪽하늘(청연 OST)

 


이승철 말리꽃 Kpop 이승철 Lee Seung-Chul - 말리꽃 (Malri Flower)  


이승철 아마추어 이승철 (LeeSeungChul) - 아마추어 (Amateur)  


이승철 그날에  


이승철 시간참 빠르다



* 이승철과 김태원의 관계


이승철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가수중의 한명입니다.

조용필 이후 최고의 가수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그는 2가지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가지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지만, 다른 한가지는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았죠.


첫번째, 그는 바로 부활의 막내였다는 사실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보컬이었던 김종서가 부활을 나간 다음에 부활의 다음 보컬을 찾고 있었고, 같은 동네에 사는 '한살 아래 동생' 이승철이 우연히 부활의 보컬이 됩니다.


이승철(이하 이): "당시 김태원은 같은 동네 사는 막역한 형이었다. 김종서의 후임 보컬 자리를 노렸다."


김태원: "당시 이승철이 오디션 곡으로 부른 팝송 '솔저 오브 포춘'을 듣고, 내가 그의 목소리에 반했었다. (이승철의) 데뷔 이전부터 보컬로서의 자질이 낭중지추라고 할 만큼 뛰어났던 후배였다."


김태원 이승철 과거 사진 - 젊은시절의 앳된 모습이 그대로


당시 부활의 멤버들은 이승철이 보컬로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지만, 김태원이 적극 추천하게 됩니다. 또한 당시 부활의 매니저가 부활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이승철에게 시스템을 사서 부활에 들어오라고 시킵니다.

즉, 연주가는 악기 등을, 보컬인 이승철은 시스템을 사와야 한다는 말이었죠.

(이 부분은 밑에서 추가 설명)


이: "부활로 데뷔 초기에 지하철을 타고 나녔고, 악기도 손수 날라야 했어요. 힘든 일은 막내인 제 몫이었죠. 어느 해인가 1월1일 새벽이었어요. (부활 멤버) 형들이 갑자기 리어카에서 파는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는 거예요."


이: "그런데 그날 따라 눈이 많이 와서 단골이었던 아줌마가 리어카를 안 했어요. 그래서 어절 수 없이 그 옆에 있던 리어카에서 샌드위치를 사서는 (따뜻하게) 가슴에 품고 돌아왔죠. 그런데 우리 단골집은 계란을 풀어서 만드는데 제가 사온 샌드위치는 계란 프라이를 했거든요. 그래서 맛이 틀리다며 (형들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요."



* 이승철 폭행당한 사건


1985년 이승철이 데뷔하던 때 그의 나이가 20살이었습니다.

십대 후반부터 부활 멤버들과 함께 곡 작업도 하고 연습도 했는데(약 2년 전부터), 막내로 궂은 일을 모두 담당했던 것 같네요.


이: "(부활이 재결성되었을 때) 공연을 하러 어머니와 대기실로 갔는데, 부활 매니저가 (다짜고짜) 내 따귀를 때렸다. (황당해서) 이유를 묻자 인사를 안했다는 이유로 때렸다고 하더라."


이: "당시 매니저는 공연의 개런티 등의 공연 자체에 대한 불만이 많이 있었던 거 같다."


매니저: "김종서와 이승철에게 정말 미안하고 사과한다. (과거에) 종서를 한번 손댄 적이 있다. 이승철이도 한번 손댔다. 무조건 나의 잘못이다."



이승철의 부활 탈퇴 이후에 10년만에 만난 매니저였는데, 대뜸 이승철의 뺨을 때린 것이나, 김종서에게도 폭행을 가했던 것을 보면, 손버릇이 별로 좋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승철이 데뷔전이나 데뷔 초에는 더 험한 꼴을 당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의 구타 폭력 문화, 군대 문화는 음악계라고 예외가 아님. 현재는 많이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문제가 많았음)


다만 팀의 리더이자 직속 선배인 김태원이 이승철에게 폭력을 행사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네요.



*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


두번째,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이승철 집안이 부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승철은 시스템을 장만하라는 부활 팀의 요구를 받고는 그대로 이행합니다.


이: "하루는 부활의 매니저였던 형이 보컬이 필요한데 누구 없냐며 알아봐달라고 했다. 그러자 김태원 형이 나(이승철)도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서 부활의 보컬이 되게 됐다."


이: "그런데 부활팀에서 악기를 사와야 내가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해서 못 들어갈 위기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당시 어머니께서 돈을 주셨다. '내 1년치 연봉을 모은 돈이다'하시면서... 그 덕분에 악기들을 연결하는 시스템 기계를 샀고, 결국 부활의 보컬이 될 수 있었다."(당시 이승철 어머니 직업은 교사였음)



참고로 이승철 할아버지는 모 사립학교 재단 설립자이었고, 이승철은 어린 시절에 부유하게 성장합니다.


이: "이미 어릴 적에 드라마 ‘대장금’에서 나온 음식들을 다 먹어봤다."



하지만 이승철은 철저한 사업가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 제가 집에서 도움받은 건 처음에 악기(를 연결하는 시스템) 살 때하고 앨범 제작할 때 빼곤 없었어요."


실제로 이승철과 부활등은 처음부터 직접 앨범을 제작하면서 노래의 히트 이후 큰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후에 부활이라는 팀이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된 것이죠.



* 이승철의 사업가적인 마인드


참고로 이승철은 부활 탈퇴와 솔로 가수 활동, 다시 부활 재결성 등의 시기에 여러 사업을 벌이기도 합니다. 마포에 갈비집을 열기도 하고, 서울 강남에 55억원짜리 녹음실을 만들기도 했으며, 평택에 대지 5천평 건평 1천 5백평 규모의 재즈 전용 라이브클럽을 오픈하기도 했죠.


이: "마포 갈비집은 지금 형님이 하는데, 제 욕심엔 그게 좀 규모가 작더라고요. 뭔가 (좀 더) 큰 거, 거창한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해(2002년) 강남에 ‘루이’(녹음실) 를 낸 거죠."


이: "루이에 총 55억원 들었는데 지난해(2002년) 수해 때 침수 피해를 입어서 또 5억원 정도가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모두 60억원 정도 들어간 사업인 거죠. 사실 전 마이너에서 시작해서 메이저로 가겠다는 건 안 믿어요. 원래 사업이란 메이저에서 메이저로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이승철의 비지니스 마인드는 확실히 다른 가수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후에 김태원과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되죠.


이승철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승철 강문영 이혼이유와 폭력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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