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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토크쇼 301회에 나온 이서진이 자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계성초등학교을 나왔는데, 현재 반포로 옮긴 이후에는 굉장한 명문 사립 초등학교이지만, 예전에 명동에 있을 때도 엄청났던 모양입니다. 모두들 교실 난로로 조개탄을 땔 때, 스팀난로였을 정도네요.

이서진

하지만 중학교를 나름 일반 중학교에 가서 조개탄, 한반에 70명 등의 열악한 환경을 겪은 후에 고등학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자유분방하면서 풍족한 분위기였던 미국의 분위기에 많이 끌렸던 것 같네요. 아마 이서진 동년배들에게 미국 유학은 하나의 꿈이었고 로망이었을 겁니다.

1960년대에 이서진의 할아버지인 이보형이란 분이 제일은행장을 할 정도였으니, 그 정도 집안 재력은 충분했겠네요.

 

이서진은 영화연출이 꿈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뉴욕대 경영학과로 진학합니다. 카리스마가 있는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죠.

대학 졸업후에는 한국으로 와서 입대를 했는데, 기무사에 배치를 받습니다.

(그래도 좋은 부대에 배치를 받았네요. 하긴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을 일반 야전부대에 배치하기에는 아깝죠.)

 

어쨌든 자신에게 전혀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군대 시절이, 이서진의 무명 시절을 버텨나가는 큰 원동력이 됩니다. 

이서진: "훈련소에 있을 때 어린 것들이 반말하고, 거의 짐승 다루듯이 다루니까, 처음에 자존심이 너무 힘들어 가지고..."

이서진

아마 여자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남자들만의 경험이죠.

그래도 기무사에서는 그런 굴욕감을 겪지는 않았겠네요.

 

꽃보다할배 유럽편 촬영을 마친 다음에 한국에서 쉴 때 진짜 사나이를 봤는데, 사무실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꽃보다할배 방송에서 '계약 해지'를 위한 내용증명을 보내겠다고 흥분했던 그였기에, 이런 이유로 소속사와 파국까지 치닫지는 않았는 모양이네요.

이서진

정말 그때 이서진을 태운 버스가 공항이 아니라 논산훈련소로 갔으면, 방송사상 최초로 폭력사태나 탈영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네요.

 

차인표의 영향을 받고 배우의 길로 들어선 이서진이지만, 차인표만큼 일약 스타로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재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복한 그였기에 집안의 돈을 보고 접근했던 PD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서진은 끝내 거절했네요.

이서진: "대중들의 마음을 돈으로 움직일 순 없더라고요."

이서진

확실히 이서진의 말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돈으로 출연기회를 더 잡는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호응이 없으면 별무소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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