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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총 4개의 글중 두번째 글


산악인 엄홍길 가족 이야기, 그리고 등산과 입산의 차이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등반을 등산이라고 오해를 하기도 하죠.


# 목차

* 엄홍길과 세르파의 죽음

* 엄홍길이 성공한 이유

* 등산과 입산의 차이점

* 엄홍길 가족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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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 엄홍길 대장 udt 군대 이유와 엄홍길 가족의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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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홍길과 세르파의 죽음


이후 엄홍길은 25살의 나이에 에베레스트에 첫 도전을 했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번째 도전에는 죽음을 목도하게 되었죠.


엄홍길: "해외여행 자체가 특권이던 시절이었다. 한 번 히말라야에 간다는 것은 집을 팔거나, 전세값이라도 빼야 할 정도로 목돈이 깨졌다."


엄홍길: "1986년 히말라야에서 에베레스트와 맞설때 내 나이 26이었다. 내 근육은 단단했고, 힘줄은 팽팽했으며,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다. 비록 그 일년전에 첫 등정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엄홍길: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보라가 휘몰아쳤는데, 해발 7500m쯤에서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암벽을 타던 셰르파 술딤 도르지가 추락한 것이다. 몸이 공처럼 통통 튀더니 1000m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셰르파 뜻 - 히말라야 등산대의 짐을 나르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


엄홍길 부인(아내)사진

엄홍길: "서둘러 도르지를 찾으러 내려갔는데, 피묻은 옷자락과 찢어진 배낭만 바위에 끼어 있을 뿐, 그의 시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홍길: "내려오는 길에 팡보체라는 셰르파 마을에서 그의 어머니와 부인 학파디기를 만났다.  셰르파 도르지 부인의 나이는 당시 열여덟살, 결혼한 지 넉 달만인 신혼이었다. 가족들은 나를 원망했다."


엄홍길: "처음으로 목격한 죽음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가 먼저 앞서가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고통으로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다시는 히말라야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엄홍길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세번째 도전인 1988년 9월에 8000 미터급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게 됩니다.

3번째만의 성공이었죠.

* 엄홍길이 성공한 이유


사실 당시에는 '히말라야 등반'이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엄홍길: "주변에서는 많이 말렸어요. 등반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일도 어려웠고, 대중적인 시선이나 관심도 전무했으니까요."


엄홍길: "게다가 히말라야 14좌 등반이 쉬운 일도 아니라고 다들 생각했어요. 그런데 1995년부터(네팔 마칼루, 파키스탄 브로드피크, 로체 등정)는 어느 정도 목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나니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외국 사람만 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엄홍길: "제가 이걸 직업으로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산에 오르다보니 또 다른 세계가 보인 거죠. 처음에는 국내산을 오르다가 생각과 사고, 시야가 점차 넓어지게 된 거죠. 차츰 히말라야 14좌, 16좌 도전까지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오르자’는 생각 하나만으로 어느새 직업이 된 거에요."


사실 엄홍길은 돈을 벌려고 산을 타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기업 등의 후원으로 겨우 경비를 마련했고, 그의 가족들 역시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죠.


지금이야 유명한 산악인이 되었지만, 80년대, 90년대에는 그런 롤모델도 전혀 없는 시대였죠.

즉,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오늘날의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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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과 입산의 차이점


참고로 일부의 전문 산악인들은 '등산'이라고 하지 않고 '입산'이라고 합니다.


엄홍길: "‘입산’이라고 하는 거예요. 입산하는 순간에는 구도자와 같은 마음가짐이 되죠."


엄홍길: "(입산할 때는) 절대 욕심 부리면 안 돼요. 그냥 산의 순리에 따라야 하죠. 산에 오르기 전 라마제(히말라야의 신에게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는데, 히말라야 대자연에 “받아주세요. 제발 사고 없이, 무사히.” 하고 정성껏 빌어죠."


엄홍길: "히말라야 대자연 앞에서는 개인의 존재는 진짜 하찮아요. 산이 아니고 신이 되는 거죠. 저절로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산'이라는 말에서 점 하나를 빼면, '신'이 됩니다.

그만큼 험악한 산과 자연은 인간의 의지를 벗어난 존재이죠.



실제로 엄홍길은 히말라야 등반 도중, 무수히 많은 생명의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엄홍길: "진정으로 죽음을 절감하며 유서 쓴 적은, 칸첸중가에 3번째로 도전했을 때였어요. 그때 정상을 단지 100여 미터 앞둔 상황에서 숨쉴 기력조차 잃었고, 결국 로프에만 매달린 채 10시간을 절벽에 매달려 있었죠."


엄홍길: "나도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유서를 작성했어요."


엄홍길 가족 사진(엄홍길 아들 딸 사진)

엄홍길 딸 사진

* 엄홍길 가족


엄홍길 유서 내용

-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앞으로 아버지 없이)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겠느냐, 그리고 얼마만큼 아빠를 원망하고 괴로워하겠느냐. 하지만 훗날 성인이 됐을 때 아빠의 도전을 이해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기 바란다


실제로 엄홍길에게 부인(아내)가 있고, 가정이 있습니다.

남편이 이런 위험한 일을 자주 하는 배우자의 속마음은 어떨까요?


엄홍길: " 아내는 (제 일에) 이해를 많이 해줘요. 속으로는 걱정도 되겠지만, 겉으로 내색을 안 해요.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죠."


엄홍길: "딸이나 아들은 아직 아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어른도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엄홍길: "가족과 같이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1년에 반 이상을 히말라야에서 살고,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원정 준비한다고 바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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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서 1주 뒤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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