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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총 3개의 글중 첫번째 글


작가 공지영 남편들과의 결혼 생활이 흥미롭네요.

공지영 전남편들이 위기철, 오병철, 이해영 등인데, 하나같이 직업과 성격이 달랐던 사람들입니다.


이들과의 결혼과 이혼 과정을 살펴보면, 공지영이 얼마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것 같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은 세번의 이혼끝에 더 이상 재혼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공지영 백지연)

백지연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백지연 전남편 이혼사유와 간통피소의 진실


(스폰서 링크)


# 목차

* 공지영 어린 시절

* 공지영 운동권에 대한 갈망으로

* 공지영 프락치 사건

* 공지영 첫번째 남편 위기철 이혼사유

* 공지영 전남편 위기철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소설가 공지영(본명)은 1963년 1월 31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공지영 고향 서울). 올해 54살이죠(공지영 나이).

(공지영 종교) 천주교

(공지영 키 몸무게 혈액형) 163cm, 47kg, O형

(공지영 학력 학벌) 서울여자중학교, 중앙여자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학사

(공지영 프로필 및 경력) 1988년 창작과비평 '동트는 새벽'으로 문단에 등단


이후 대표작으로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 도가니, 의자놀이, 딸에게 주는 레시피 등이 있습니다.


공지영 전남편 사진(작가 위기철)


* 공지영 어린 시절


공지영은 어린 시절에 아주 유복하게 성장했습니다(공지영 집안).


공지영: "아버지는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에 유학을 다녀왔어요. 제가 어린 시절에 차와 기사가 있을 정도였죠. 아버지는 1970년대에 이미 주 5일제를 시행하는 외국계 회사에 다녔어요."


공지영: "주말이면 손수 운전하는 외제 승용차에 우리 가족들을 태우고 나들이를 다녔어요. 또한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다닐때까지 매일 아침 저를 승용차로 등교시켰을 정도이셨죠."


공지영: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전 성질 드러운 것까지 아버지를 꼭 빼다닮았대요. 예를 들어서, 무슨 일을 할 때 머리 나쁜 거는 절대 못 참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어요. 애교는 기본이고, 영특하기까지 한 데다(웃음), 아버지와 저는 서로를 너무 잘 이해했으니까."


공지영 사진


하지만 공지영은 대학에 들어간 후 당시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을 접하게 되면서, '본인의 부유한 어린 시절'에 대하여 죄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공지영: "당시에는 학생 식당에서 밥 사먹을 돈이 없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운동을 하는) 선배들은 곱게 자란 나에게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먹고 싶은대로 먹고 싶은대로 먹으면서 자랐는데, 주변 친구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대학 졸업 이후에 공지영은 일반적이지 않은 길을 가게 됩니다.



* 공지영 운동권에 대한 갈망으로


공지영: "대학교 졸업하면서 전 최소한 전두환 정권에 도움 되는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기업체) 취업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 만들어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전화받을 사람이 필요하단 얘기를 듣고 거기로 갔어요. 어찌 보면 집안 생계에 대한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공지영: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일하면서 채광석 형(1948~87, 문학평론가 겸 시인)한테 무지 구박당했어요. 노동운동 안 한다고 말이죠. 당시에 저말고도 현준만(번역가), 위기철(작가), 김사인(시인), 김정환(시인) 등도 저랑 같이 야단 맞았어요."


공지영: "어쩌다가 사무실에 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찾아오면, (채광석 형이) 그렇게 극진하게 잘 해줬어요. 자신은 노동운동 안 하면서 말이죠(웃음). 아무튼 우리들은 그 구박을 고스란히 받아냈어요. 그 당시에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이때 공지영이 언급한 위기철 작가가 바로 공지영 남편입니다.

공지영이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85년 결혼했다가 1991년 이혼을 했죠.

(위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당시에는 공지영 위기철은 부부사이였음.)


(공지영 첫번째 남편 위기철 직업 작가)

(1961년생으로 공지영보다 2살 연상 대표작으로 아홉살 인생, 반갑다 논리야 등이 잇음)


(공지영 배우자 신랑 위기철)

이후 공지영은 딸 위운녕을 낳게 됩니다.

(공지영 자녀(자식)(공지영 가족관계)



* 공지영 프락치 사건


결혼 이후 공지영은 출판사와 대학원에 잠시 다니다가 노동운동을 시작합니다.


공지영: "대학원을 1학기만에 그만두고 노동운동 조직에 들어갔어요. 그걸 하지 않으면, (운동권) 사회에 발붙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어디 가서 '가오' 잡을 수가 없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주변 압력에) 못 견뎌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공지영: "공장에 나가면서 소위 '떡볶이 모임'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어요. 여공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친분을 쌓아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여공 몇명과 분식집에 가서 만두를 시켰는데, 도무지 그 만두를 삼킬 수가 없었어요. 몇 번을 삼키려고 해도 욱욱 토할 것만 같았어요. 다른 애들 접시는 다 비어가는데..."


공지영: "제가 공장에 취업하고 난 뒤 열흘 만에 새 여공이 들어왔어요. 금세 다른 여공들과 친해지는 모습이 분명 다른 (노동) 조직에서 들어온 사람같았어요. 어느날 걔가 오더니 같이 '술한잔 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속으로 '드디어 노선 투쟁이 시작되는구나' 싶어서, 각오를 단단히 했죠."



공지영: "소주를 마시는데, 걔가 "63년생이구나. 82학번이지?"라고 묻는 거에요. 전 얼떨결에 "아니, 나 81이야."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62년생이면 너도 81이야?"라고 물었는데, 걔는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공지영: "그런데 그 다음날 회사 직원이 입사서류를 던지면서 "너 위장 취업한 거 다 안다!"라고 호통을 쳤어요. 그 여공이 프락치였던 것이죠. 당시에 분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오기가 생겼죠."(공지영 프락치 사건)


공지영: "어쨌든 그렇게 회사에서 (한달만에) 쫓겨난 어느 날, 여자후배가 소주 한잔 같이 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면서 하는 말이, "글쎄 어떤 멍청한 여자가 "(공장에서) 나 81학번이야" 해서 회사에서 잘렸다는 거예요. 제가 그랬어요. "걔가 나야."라고."



이상과 현실이 얼만큼 다른지, 공지영이 잘 보여주네요.



* 공지영 첫번째 남편 위기철 이혼사유


이후 공지영은 1987년 부정개표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구치소에 1주일간 수감됩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장편 소설 '동트는 새벽'을 집필하고, 작가로 등단하게 되었죠.



그리고 공지영은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인간에 대한 예의' 3권이 동시에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는 소위 '공지영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대표적인 한국 여성 작가중의 한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1994년)



하지만 1991년에 공지영은 전남편 위기철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공지영 전남편 위기철)(공지영 이혼사유)


공지영: "결혼생활하면서 저는 (가사분담을) 하고 싶었어요. 너-무 하고 싶었죠. 저는 (민주화) 운동을 하고 또 좌파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랑 결혼하면, 당연히 (결혼생활은) 평등하게 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직접 살아보니... 그래서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나온 거예요. 너무 황당해서."


즉, 공지영의 첫번째 결혼은 가사 분담 문제, 남녀 차별 문제 등으로 실패합니다.

이런 당시의 공지영의 심정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잘 나타나죠.


공지영 사진


* 공지영 전남편 위기철


공지영: "예전에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어떤 분이 저에게 물었어요. "왜 페미니스트냐?"라고요. 그래서 대답했어요. "만약 제가 남성작가면 이 정도 열심히 글 쓰고, 돈 벌면 마누라가 매일 맛난 밥 싸들고 작업실에 찾아 왔을 거예요"라고요."


공지영: "여자가 잘나고 돈을 많이 벌수록 죄인이 되어야 하는 우리 사회 현실이 뭔가 싶었죠. 사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가사 책임을 지는 것도 화가 났고요. 때때로 인격적 모독까지 참으면서 그 이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어요."


공지영: "물론 제 인간적 약점도 많겠지만,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졌다고 봤을 때 이유는 하나뿐이었어요. 내가 여자라는 것, 그리고 결혼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공지영은 첫번째 이혼을 하게 됩니다.


공지영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3)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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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김삿갓 글이 용두사미 2017.08.14 05:07
  • 프로필사진 공지영? 운동권에서 가오잡고 싶어 노동운동했고
    남편에게 대접받고 싶어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그게 당신의 한계
    2018.07.30 17:40
  • 프로필사진 최연이 솔직히 그나이 남자들 다 가사분담 전~혀 안합니다... 공지영씨는 귀하게 커서 그걸 못참은거고 다른여자들은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장사하면서 집안살림까지 다하고도 그렇게 살아냈어요.. 2018.09.0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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