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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의여자들,최원석회장 김혜정 과거와 삼성으로 시집간

(1/2) 총 2개의 글중 첫번째 글


동아건설 최원석의 여자들, 그리고 최원석 회장과 김혜정의 과거 사연들이 흥미롭네요.


(최원석 이미숙)

이미숙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이미숙 연하남 사건 재판결과와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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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동아건설의 역사

* 동아건설 부도 이유

* 최원석의여자들

* 최원석 김혜정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기업인 겸 학교법인인 최원석 회장은 1943년 4월 24일 대전에서 태어납니다(최원석 고향 대전). 올해 73살이죠(최원석 나이).

(최원석 학력 학벌)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최원석 프로필 및 경력) 1971년 1월 대한통운(주) 대표 이사 사장

1972년 1월 동아건설산업(주) 대표이사 사장

1977년 11월 동아그룹 회장

현 학교법인 공산학원 이사장(동아방송예술대학교,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


최원석은 충남토건(동아건설의 전신) 창업주인 최준문의 아들로 태어난 재벌 2세입니다. 서른살이 안 된 나이에 대한통운 및 동아건설 사장 자리에 올라서 경영 수업을 받게 되었죠.


기업인 최원석 회장 전부인들 사진


* 동아건설의 역사


원래 충남토건은 1945년 만들어진 다음에 창업주 최준문에 의하여 대전, 논산, 부여 등 충남 일댕서 교량 및 도로 사업을 비롯하여 농업토목 공사를 하던 중소 건설기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6.25전쟁 기간중에 수주했던 대천방조제 간척공사(1952∼1958)와 동진강 간척 공사 등으로 동아건설은 중소 기업에서 전국 규모의 건설회사로 발돋움하게 되었죠.


최원석은 아버지로부터 이런 상황의 회사를 물려받았고, 이후 그는 동아건설을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키우게 됩니다(최원석 집안).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리비아 대수로 공사이죠.


동아건설이 맡아서 성공시킨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1, 2단계 공사만해도 10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1983년 리비아 대수로 1단계 공사는 39억달러, 1990년 2단계 공사는 62억 달러)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1983년 세계 10대 뉴스에 뽑혔고, 단일 토목 공사로는 세계 최대 규로모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으며, 최원석 회장 역시 영국의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 사전에 실리게 될 정도죠.





* 동아건설 부도 이유


이런 해외 실적을 바탕으로 동아그룹은 한국 10대 그룹으로까지 성장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와 더불어 그룹이 해체되고, 최원석은 야인이 됩니다.



최원석: "우리 동아건설은 1975년 우리나라 건설업체로는 최초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진출해서 아부다비 교량공사를 따냈다. 그리고 1977년에는 아부다비 방파제축조 공사와 마프락 하수처리 공사를 수주해서 중동 건설시장의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최원석: "IMF사태(1997년)로 인하여 동아그룹이 자금 유동성에 다소 위기가 있었지만, (리비아를 비롯한) 해외 공사대금이 들어올 계획이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최원석: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가 끝날 무렵 우리 회사(동아건설)은 리비아로부터 매년 공사대금 10억 달러를 차질 없이 받고 있었다. 또한 1996년 9월 대수로 2단계 공사 트리폴리 통수식에서 자달라 장관(리비아 대수로청(GMRA))이 한국기자들에게 "리비아 대수로 3, 4단계 공사도 동아그룹과 협력관계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원석 카다피 사진


최원석: "실제로 두 달 후에 리비아 정부는 51억 달러(4조 3000억원) 규모의 대수로 3단계 공사에 관한 건설 낙찰의향서(Letter of Intent)를 회사(동아건설)에 발급했다."


최원석: "이런 상황에서 (일시적인 자금 유동성을 겪고 있던 동아그룹이) '재벌해체'의 표적이 되어서 (김대중 정권에 의하여) 공중분해당하고 말았다. 동아그룹의 첫 번째 매각 대상은 동아증권이었다. 내가 회장에서 물러난 후 2달 만에 동아증권은 '세종기술투자'라는 듣도보도 못한 조그만 회사에게 단돈 '21억원'에 넘어가고 말았다."


최원석: "또한 동아건설이 1300억원을 투입해 건설한 서원레저골프장은 1998년 11월에 현찰 20억원에 팔렸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헐값 처분이었다."


최원석: "동아그룹이 해체될 당시에 리비아 정부는 한국 정부에 동아그룹이 대수로 공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허사(虛事)였다. 결국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통해 거액(巨額)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다른 나라 경쟁업체에 돌아갔다."


이렇게 최원석은 동아그룹의 해체가 당시 김대중 정권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 최원석의여자들


아무튼 최원석이 부실 경영을 책임지고 동아그룹 회장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경영권과 700억원대의 재산을 내놓게 됩니다(모든 주식 포함).


이후에는 공산학원(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죠(최원석 회장 재산(재력)).



세간에는 최원석이 3번 결혼했고, 3번 이혼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최원서에게는 첫번째 결혼 전에 이미 혼외자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최원석이 20살일 때 모 여배우와 낳은 딸 최선희가 그 장본인이죠.

(최원석 딸 최선희)(최원석 혼외자)


이후 최선희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형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의 차남인 이재찬과 결혼하게 됩니다.




영화배우 김혜정 과거 사진(김혜정 리즈 시절)


* 최원석 김혜정


그리고 최원석은 196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육체파 여배우로 유명했던 김혜정과 첫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1969년 첫번째 결혼 최원석 김혜정).

(최원석 전처 김혜정이 최원석보다 2살 연상이었음)

(최원석 배우자 와이프 김혜정)


최원석 첫번째 아내 김혜정과는 1남 1녀를 두지만, 불과 5년만에 이혼하게 됩니다.

(최원석 자녀(자식))(최원석 가족관계)


최원석 장은영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최원석 장은영 결혼 전 최원석 배인순 과거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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