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총 3개의 글중 두번째 글
영화배우 신영균 부인 김선희와는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처음 만나게 됩니다.
신영균 아내 김선희 말대로 신영균이 스캔들이나 루머가 별로 없었지만,
과거 홍콩 인기 여배우가 자살하는 안 좋은 사건도 있었죠.
신영균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3)
(스폰서 링크)
# 목차
* 신영균 부인 김선희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 신영균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된 계기
* 신영균 홍콩 여배우 린 다이 사건
* 신영균이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이유
* 신영균 재산 형성 과정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신영균 부인 김선희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신영균: "아내는 해군 군의관 시절에 만났고 1년 뒤에 결혼했다."
참고로 신영균 부인 김선희 직업은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이었습니다.
(나이는 신영균보다 7살 연하)
김선희: "남편이 영화계로 뛰어들 당시에 제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난 당신이 치과의사여서 결혼했지, 소위 말하는 딴따라(영화배우)였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거에요."라고."
이것이 훗날 신영균이 치과의사를 하다가 영화배우로 다시 활동하게 될 때의 부인 김선희의 말이었죠.(신영균 배우자 와이프 김선희)
신영균 부인 김선희 사진(신영균 가족 사진)
이후 신영균은 아들 신언식(이름)과 딸 신혜진을 낳게 됩니다.
(신영균 자녀(자식))(신영균 가족관계)
(신영균 딸 신혜진과 아들에 대해서는 밑에서 추가 설명)
* 신영균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된 계기
신영균은 해군 군복무를 마친 다음에 치과의사 면허자격을 따고 1958년 동대문구 회현동에 '동남치과'를 개원하게 됩니다.
신영균: "최무룡, 윤일봉, 허장강 등의 사람들과 원래 연극을 같이 했었다. 내가 치과를 개원했다니까 우리 병원을 많이 찾아왔다. 또한 변기종 선생이 이가 나빠서 내가 치료를 많이 해드렸다. 그분이 원래 연극단장이셨는데, 나를 볼때마다 다시 연극을 하라고 성화이셨다."
결국 신영균은 주변 연극계 지인들의 권유로 다시 연극 및 영화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신영균 아내 김선희 사진
김선희: "남편에게 "연극배우를 하더라도 평생 가족을 위해 살겠다는 약속만큼은 꼭 지켜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절대로 당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스캔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했죠. 그 이후 저도 남편을 하늘처럼 모시고 살았어요. 사실 (대중중에는) 남편이 영화배우로 활동하면서 여자 문제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제까지 단연코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어요."
김선희: "원래 그나마 연극은 몰라도 영화는 안된다고 반대를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대본을 받아와 하루만에 다 외우고, 또한 대본 연습을 하면서도 눈물을 자연스럽게 흘리는 모습을 보니, 남편의 천부적 재능을 막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이런 우여곡절끝에 신영균은 다시 연기를 재개하게 됩니다.
(참고로 '신영균 이혼', '신영균 재혼' 등의 루머가 있는데, 이는 사실무근입니다.)
신영균 제주도 집 사진
* 신영균 홍콩 여배우 린 다이 사건
그런데 김선희의 말처럼 신영균이 한국 여배우들과는 스캔들이나 루머가 거의 나지 않았지만, 홍콩 여배우 린 다이와는 스캔들이 한번 터집니다.
당시 한국 홍콩 합작 영화를 찍으러 홍콩으로 갔을 때 홍콩에서 스캔들이 터졌죠.
아무튼 그 일이 있은 후인 1964년 린 다이는 자살(집에서 가스를 틀어놓음)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죠.
(당시 홍콩 언론에서는 린 다이가 신영균과의 불륜(외도)로 괴로워서 자살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음.)
* 신영균이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이유
신영균은 영화배우로 큰 인기를 모았지만, 재산을 모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신영균: "영화 '연산군' 찍을 때 말 타는 장면이 유독 많았는데, 그 당시 말들은 요즘처럼 훈련된 말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촬영할 때는 목숨을 내놓고 임해야했죠(웃음). 한번은 아스팔트 내리막길에서 카메라를 실은 지프차를 따라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무조건 뛰어가는 바람에 떨어질 뻔도 했어요. 그래도 그 장면만 스무 번 넘게 촬영해야 했죠."
신영균: "당시 한국영화는 이렇다 할 효과 장치가 없다 보니, 영화의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로 실탄을 쐈어요. 배우들이 달여가면 그 옆으로 총을 마구 쐈죠."
신영균: "영화 '빨간 마후라'를 찍을 때는 전투기의 조종간을 잡고 죽는 라스트 신을 찍는데, (영화상) 유리를 뚫을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군에서 1등 사격수를 직접 데리고와서 내 머리 뒤에서 총을 쏘도록 했어요. 제 바로 뒤에서 총을 쏘면 그나마 낫는데, 사람이 겹쳐서 영화에 나오니 10m 뒤에서 총을 싸야 한다는 거에요. 그 당시에 불안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결국 신영균이 자신이 어떻게 되더라도 남은 가족만큼은 생활이 보장되도록 재테크에 노력하게 됩니다.
신영균: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를 꿈꾸며 성장했기 때문에 평생 연기를 하다가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것이(실제로 죽으면) 저에겐 큰 영광이지만, '뒤에 남겨진 내 식솔들은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가족을 위해 부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신영균 재산 형성 과정
먼저 친구와 동업을 해서 서울 금호동에 동시 상영을 할 수 있는 '금호극장'을 짓습니다. 당시 영화들은 많이 제작되지만, 실제로 영화를 볼 장소는 별로 없다는 현실을 감안해서 한 투자였죠.
당시 금호극장은 '사람을 비비고 들어갈 자리도 없다'고 할 정도로 돈을 끌어 모으게 됩니다.
이후에 신영균은 명보극장 바로 옆에 있는 명보제과를 인수했고, 이때 신영균 아내 김선희가 직접 빵을 굽고 사업을 한 결과 한때 명보제과는 태극당, 풍년제과, 뉴욕제과와 더부러 4대 제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신영균: "저는 촬영을 다니느라 바빴기에 주로 아내가 빵집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어요. 그러면서도 제 촬영 의상을 챙겨주고, 또 스케줄을 잡아 주는 등 요즘 매니저들이 하는 일까지 다했죠."
신영균: "당시 출연료로 70만원 정도를 받았어요. 요즘으로 치면 7억원 정도였죠."
결국 신영균은 출연료와 금호극장의 수익, 그리고 명보제과의 수익을 바탕으로 명보극장이 있는 빌딩까지 인수하게 됩니다.
신영균에 대한 이야기가 3편으로 이어집니다. (3편 새창보기,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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