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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조선희 남편은 송경섭입니다. 사진작가와 축구계 인사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흥미로운 부분이네요.


또한 조선희 작가가 아들을 낳은 다음에, 그녀의 작가 인생에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과연 그 위기란 무엇인지, 그리고 조선희는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조선희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조선희 사진작가 성공 요인과 조성희 신민아 탕웨이 관계


(스폰서 링크)


# 목차

* 조선희 남편 송경섭 감독

* 조선희 송경섭 동거를 시작하면서

* 조선희 아들 출산 후에

* 조선희의 잘못으로

* 조선희가 바뀐 이유

* 조선희 남편과의 어려움 토로

* 조선희의 깨달음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조선희 남편 송경섭 감독


사진작가 조선희 남편 송경섭 직업은 축구 코치입니다.

송경섭은 1971년 2월 25일 태어나서, 올해 45살이죠(송경섭 나이).

(조선희 송경섭 나이차이 - 동갑내기)


(송경섭 학력 및 학벌) 단국대학교 졸업

(송경섭 프로필 및 경력) 1994년 드래프트 10순위로 대우 로얄즈에 입단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거친 다음에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함

1999년 최연소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함


2001~02: U-13 대표팀 코치

2002~12: U-16, U-17 및 U-22 대표팀 코치

2013~15 : KFA 지도자 전임 강사 겸 유소년 전임 지도자

(조선희 남편 송경섭 감독)


조선희: "후배한테서 남편을 소개받았다. 사실 그 후배는 늘 나에게 "누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 한 번 만나보라."라고 졸랐는데, 그 대상이 바로 남편이었다."


조선희: "어느날 갑자기 첫만남을 가졌는데, 나는 다음날 제주도 출장이 잡혀 있었고,  청소년 축구 감독인 그 사람 역시 선수 선발을 위해 제주도 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조선희: "제주도에서 만남을 가졌는데 나는 촬영중 선물받은 오렌지를 들고 나갔고, 그 사람은 숲에서 발견한 네잎 클로버를 나에게 선물로 주더라. 그렇게 2주 정도 매일 만났다."


조선희 남편 사진


* 조선희 송경섭 동거를 시작하면서


아마 숲에서 직접 발견한 네잎 클로버에 조선희가 크게 감동한 것 같습니다.


조선희: "결국 2주만에 먼저 동거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 사람이 "생각해보겠다"라고 대답하기에, "그럼 관계를 끝내자."라고 말했다."


확실히 일할 때도 그렇지만, 조선희가 상당히 직설적이네요.

결국 두 사람은 다음날부터 약 2년동안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당시가 2002년 무렵으로 조선희가 어느 정도 경제적인 궁핍을 모면했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2년 후인 둘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2004년).

(조선희 배우자 신랑 송경섭 감독)


조선희: "남편은 이 세상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고, 두 번째로 나를 사랑한다고 했어요. 결국 그 말이 제가 결혼한 이유가 되었죠. 그 정도로 자기 일을 사랑하는 남자의 열정이 멋있고 신뢰가 갔거든요. 사실 저 역시 사진이 제일 좋고 그 다음이 남편이에요."


확실히 이들 부부는 일이 먼저인 것 같네요.


조선희 남편 송경섭 사진


* 조선희 아들 출산 후에


그리고 2년뒤인 2006년경, 조선희는 아들 송기휘(이름)를 낳게 됩니다.

이때 조선희의 사진 경력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죠.


조선희: "아들을 2006년에 낳고 난뒤에 한 10개월 정도 쉬었어요. 이왕 쉴 거 공부도 좀 하고 세상 구경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뉴욕에 갔었고요. 그러니까 한국의 사진 관계자들은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렇게 정말로 쉬어버렸던 거에요."


조선희: "당시가 사진업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던 시기였어요. 아날로그에서 완전히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였고, 신인작가 5~6명이 크게 부상했으며, 잡지 기자들도 많이 바뀐 때였죠. 그래서 복귀를 했는데, 3개월동안은 정말 일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조선희가 크게 당황했을 것 같네요.


조선희 아들 사진


조선희 가족사진


조선희: "결국 당시에 약간의 우울증까지 생겼어요. 그래도 디지털 카메라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계속 준비를 했죠. 이후에 일이 하나, 둘씩 들어왔을 때 저는 과거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어요. 열정적으로 일에 달라붙었죠. 아마 그 시간이 없었다면, 제가 오만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조선희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꾼 것 같네요.


사실 조선희 정도의 위치와 명성을 가진 작가라면 매너리즘에 빠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이 오히려 좋은 약이 되어서, 후에도 '열정적인 조선희'가 될 수 있었네요.


조선희 남편과 아들 사진


* 조선희의 잘못으로


물론 '조선희의 열정'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조선희: "과거에는 남들도 나랑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좋은 사진 한 장 찍겠다고 경주마처럼 막 달려갔어요."


위에서 언급한 이정재의 말처럼 12시간씩 사진을 찍고, 조선희는 3일씩 앓아누웠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조선희: "한번은 모 배우의 헤어와 메이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어떻게 찍어도 원하는 사진이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그 배우의 담당자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더 잘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섭외해서 촬영을 했어요."


조선희: "그 촬영은 무사히 끝났지만, 그 배우는 두번 다시 저와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나중에 건너 들은 이야기인데, 자신의 스태프에게 상처를 줬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조선희: "사실 그 말도 맞아요.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안되죠. 그분(담당 스태프)에게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어요."



이 사건으로 조선희가 한단계 더 성장하게 되었네요.



* 조선희가 바뀐 이유


또한, 아들을 낳은 다음에 조선희의 예전의 강렬하고 남성적인 분위기에서 좀 더 여성적인 분위기로 바뀌게 됩니다.


조선희: "출산을 한 다음에는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화를 내면서 고치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조선희: "또한 상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옛날에는 ‘나만 옳다’는 식이었지만, 아이가 생긴 다음에는 제 3자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생긴 것 같아요."


조선희: "이전에는 터프하고 남성적인 사진을 했다면, 지금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여성적인 경향도 늘어난 것 같아요. 저에게 길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죠. 좀 더 둥글고 부드러우면서 더 아름다운... 선택의 폭이 넓어진 거죠."


확실히 여성들에게는 남성이 절대 가질 수 없는 무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조선희 남편과의 어려움 토로


조선희: "엄마와 아내, 사진작가라는 역할 중 가장 힘든 것을 꼽으라면, 아마 아내 역할인 것 같다. 엄마 노릇은 진심만 있으면 아직은 문제될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내 노릇은 다르더라. 몇 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남녀가 한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선희: "부부간에 진심이 있어도 같이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하거나 하면 부부 간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또 아무것도 아닌 말 한마디로 싸우기도 한다."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불화로 이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조선희는 이혼 위기를 잘 넘기는 지혜를 가진 것 같네요.


조선희: "우리 부부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또 내가 원래 애교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남편과 통화하는 내 모습을 본 지인들이 놀라기도 한다. "너, 평소와 달리 나긋나긋한 스타일로 변하더라"라고. 사실 남편 앞이면, 나도 모르게 없던 애교가 생긴다."


확실히 부부가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진외에는 별다른 경험이 없는 조선희가 어떻게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까요?



* 조선희의 깨달음


아마 조선희가 무명이었을 때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면서 얻었던 좋은 영향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희: "제가 무명이었을 때,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인터뷰를 많이 따라다녔어요. 그때 같이 간 기자가 인터뷰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렸어요. 결국 그때 특별한 분들의 인생과 열정, 슬픔, 성공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알게 모르게 제 사고의 폭이 넓어졌던 것 같아요."


조선희: "또한, 가장 기억에 남는 분들은 바로 서정주 시인 부부였어요. 그 당시에 그분이 83세였는데, 아기처럼 사모님의 손을 잡고는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죠."


아마 이런 특별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선희도 부부간에는 '배려와 이해'가 중요하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닌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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