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정소녀 인생 이야기

탤런트 정소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무시무시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 또 어떻게 해서 그런 악성 루머가 생겼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정소녀 전남편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죠.

또한 정소녀를 둘러싼 다른 사건 역시 궁금하네요.


정소녀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정소녀(본명 정애정)은 1954년 1월 21일 태어납니다.

올해 62살이죠(정소녀 나이).

(정소녀 키 몸무게) 163cm, 51kg

(정소녀 학력 학벌) 수도사대부속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정소녀 프로필 및 경력)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영화 돌아온 외다리, 이름모를 소녀 등에 출연했으며 1975년 TBC 연기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또한 1976년 TBC의 쇼쇼쇼 메인 MC를 맡으며 뛰어난 진행 솜씨를 보여줍니다.


# 목차

* 정소녀 아버지 직업

* 정소녀 과거 색달랐던

* 정소녀 전남편 이혼사유

* 정소녀 가봉대통령 루머

* 정소녀 흑인 아이 출산설

* 정소녀 루머의 진실

* 정소녀 재혼에 대한 생각

* 정소녀 간통죄

* 새로운 각오



* 정소녀 아버지 직업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소녀 집안은 보수적이었습니다.


정소녀 어머니: "돌아가신 남편이 헌병 대장 출신인데 얼마나 엄했는지 아는가. 애정(정소녀의 본명)이는 이 소문(밑에서 언급)을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연예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갑자기 심장병도 생기고 얼굴에 심하게 부기가 오르는 등 병도 많이 얻었다."


정소녀: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었다. 헌병 대장이었던 아버지가 굉장히 무서웠다. 내가 큰 딸이었는데 엄한 아버지 밑에서 예절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 회초리로 많이 맞았고 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혼난 적도 많았다."


정소녀: "내가 연예인이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무용가였던 어머니의 끼를 물려받았다. 전역 후 아버지가 스웨덴 대사관 근무로 외국 생활을 했는데 사고방식이 많이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정소녀 젊은시절 사진

정소녀 과거 사진


참고로 정소녀 어머니는 현대 무용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해외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한 것 같은데, 헌병대 장교 출신이었던 모양이네요.


정소녀: "나같은 행운아도 없을 것다. 데뷔 이래 탄탄대로를 걸었고 CF 출연 후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몸값도 다른 연예인들과 몇 배 차가 났다."


정소녀: "전성기 시절 CF 1회 출연료로 2~3천만원을 받았다. 다른 연예인들이 몇 십만원을 받은 것에 비하며 엄청나게 많은 액수였다.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집 10채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 한 편의 드라마 출연료가 겨우 몇 십만원하던 시절이었죠.


정소녀 리즈시절 사진


* 정소녀 과거 색달랐던


정소녀: "저도 정확하게 광고 출연료를 따져보지는 않았어요. 한 해 동안 CF 출연료로 3천7백만원 정도 받았던 거 같아요. 요즘 화폐가치로 따지면 한 80억~90억원이나 된다고 하네요. 덕분에 기네스북에 올랐고 피어리스 화장품 등의 광고도 ‘대박’이 났죠."


확실히 정소녀의 광고 출연료는 그 당시 여자 연예인들의 몇배가 넘었습니다.

정소녀는 왜 이렇게 높은 출연료를 받았을까요?


바로 정소녀가 연기자 출신 최초의 여자 전문 MC 영역을 개척하면서,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소녀: "당시 오락 프로그램 대명사였던 ‘쇼쇼쇼’로 진행자 데뷔를 했어요. 제가 자리를 잡은 몇 년 후부터 여성 MC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죠. 저한테는 큰 행운이었어요. 연기도 그렇지만, 진행이 적성에 더 잘 맞았거든요."



여자 MC가 되면서 정소녀는 사실상 만능 엔터테이너의 원조가 됩니다.

연기자, MC는 물론 1977년 최병걸과 함께 '그 사람'을 불러서 가수로도 활동을 했지만, 정소녀가 가장 각광을 받는 분야는 진행이었습니다.


정소녀: "당시는 사회자는 무조건 아나운서가 하는 줄 알던 시절이었어요. 젊고 겁 없는 20대 초반이었으니까 MC가 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했어요. 일이 좋아서 마냥 행복했지요. 세상에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던 때였어요."


허참 정소녀 사진


* 정소녀 전남편 이혼사유


그러다가 정소녀는 1979년 4월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정소녀 남편은 정소녀의 대학 동문 문 모씨였습니다.

(정소녀 배우자 신랑)


정소녀: "전성기 시절 바쁜 스케줄 탓에 이성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당시 몇 년 만에 찾아온 학교 동창과 만나게 됐고 2,3 번 만난 동창에게 프러포즈를 받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결혼을 하게 됐다."


정소녀 전남편 직업은 사업가(여의도에서 의류수출업체를 경영)였고, 고향은 제주도였습니다. 원래 제주도 병원 원장의 아들이었죠(정소녀 남편 집안).


정소녀는 딸을 낳게 됩니다

(정소녀 자녀 자식)(정소녀 가족관계)(정소녀 아들은 없음)



정소녀는 결혼 이후 잠정 은퇴를 합니다.

이 기간중 약 4개월간 제주도에서 시집살이도 하고, 이후 서울에서 신혼 생활을 하게 되죠.

하지만 5년 후 정소녀는 이혼을 하게 됩니다.


정소녀: "남편이 빚 때문에 외국으로 나가게 됐고 5년 동안 방송 활동을 하며 남편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 서류였다."(정소녀 이혼사유, 정소녀 이혼이유)


정소녀: "사업에 실패한 남편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결국 돌아오지 않았어요. 버림받은 거죠. 많이 힘들었어요."


이후 정소녀는 딸을 키우며 친정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됩니다.


정소녀 딸은 외국 유학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정소녀: "연예인을 시키려고 딸에게 발레 등을 가르쳐보았지만 본인이 흥미를 갖지 않아 포기했다."



* 정소녀 가봉대통령 루머


이런 가정사와 별개로 정소녀는 루머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정소녀 루머 내용

- 정소녀가 흑인 아이를 낳았다(정소녀 흑인 아이 출산설).

정소녀가 가봉대통령의 딸을 낳았다(이름, 봉고 대통령).



이에 정소녀는 소문을 부인합니다.


정소녀: "본의 아니게 '가족오락관'에서 갑자기 하차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공격하고 댓글이 올라오지만, 당시에는 방송국으로 전화를 많이 했다. '왜 저런 여자를 가족들이 다같이 보는 가족오락관에서 MC로 쓰냐'고 항의했다더라.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제작진으로부터 여자 MC가 바뀌게 됐다고 들었다."


허참: "나와 함께  '가족오락관'을 7년이나 진행했던 정소녀가 갑자기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된 이유는 악성 루머 때문이었다."


정소녀 가봉대통령 봉고 사진


정소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나쁜 소문이 나 있었다. 흑인 아이를 낳았다는, 그것도 가봉 대통령의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었다."


참고로 정소녀 루머에 연루된 가봉대통령 봉고는 1975년 7월 처음 방한합니다.

(박정희가 봉고를 국빈으로 초대함)(참고로 봉고는 가봉 대통령에 40년 이상 집권했고, 150명이 넘는 자녀들을 가지고 있는 독재자임)



* 정소녀 흑인 아이 출산설


이후 봉고는 3번 더 한국에 오게 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제 3세력(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국가들)과 외교적으로 가깝게 지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죠.


이런 루머 뒤 정소녀는 거의 연예계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정소녀: "'가족오락관'은 본의 아니게 그렇게 하차했고, 다른 드라마도 하고 있었는데 다 제가 그만 두겠다고 했다. 출연할 수가 없었다. 당시 의욕이 없어졌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세상 사람들이 절 보는 눈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니 힘들었다."


정소녀: "해명을 했지만, 그래도 (루머를) 믿으려고 안하는 사람들을 제가 어떻게 붙잡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나가면 어떤 사람들은 '깜둥이 엄마'라고 그랬다. 너무 화가 나서 죽을 거 같았다."



현재까지도 정소녀 루머의 출처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이나 가봉에서도 정소녀의 핏줄이 나타나지 않고요.


가봉 교민들이나 혹은 가봉 권력층에 가까운 사람들(예를 들어서 1986년부터 가봉 봉고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역임한 박상철) 등은 정소녀의 흑인 아이 출산설을 전혀 믿지 않습니다.

가봉에서도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 정소녀 루머의 진실


또한 한국에서는 정소녀의 전 시누이가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정소녀 전 시누이(정소녀 시아버지인 병원장의 딸)

A씨: "내가 인터뷰하는 이유는 정소녀 가족 때문이다. 내가 해명해 줘야만 그 가족도 악몽 같은 소문에서 벗어나지 않겠느냐."


A씨: "세간에는 아직까지 '정소녀가 흑인을 출산해 그 남편(인터뷰하는 사람의 오빠)과 이혼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정소녀는 흑인을 낳지 않았다."(정소녀 시댁 집안)


A씨: "난 정소녀가 흑인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의 시기에 같이 살았다. 정소녀가 흑인을 낳았다면 내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정소녀가 오빠와 이혼했기에 이제 나와는 남이다. 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30년 넘게 악소문에 시달려온 정소녀가 너무 불쌍하다."



A씨: "우리 집안과 연관된 것이라 나도 그런 소문 때문에 힘들었다. 정소녀는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이제 실체도 없는 그 쾨쾨 묵은 소문은 자취를 감춰야 한다."



확실히 이제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전 시누이가 이런 인터뷰를 할 정도라면, 정소녀의 결백을 믿어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정소녀에게 왜 이런 악성 루머가 생긴 걸까요?

아마도 정소녀의 경쟁자쪽에서 정소녀가 차지했던 '여성 전문 MC'를 노렸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출연료가 수배, 수십배를 더 받을 수 있는 좋은 이미지 메이킹 자리였기 때문이죠.



당시 정소녀 후임 MC로 들어가기 위하여 굉장한 경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연예계의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 정소녀 재혼에 대한 생각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 당시 권력층의 부패와 '성 접대 문화'에 대하여 반감을 가진 일반 대중들이 '정소녀 루머'를 너무나 쉽게 믿었던 것이 아닐까 하네요.


결국,

-> 루머를 믿은 일부 대중이 방송국에 대한 항의 전화

"가족들이 다같이 보는 가족오락관에서 왜 그런 여자를 MC로 쓰냐?"


-> 방송 제작진의 정소녀 외면

-> 정소녀 하차

-> '이유없는 하차'에 대하여 대중들은 정소녀 루머를 사실로 받아들임


이런 프로세스로 진행된 것이 아닐까 하네요.



정소녀: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돼 화가 많이 났었다. 연예인이 돼 부모님을 기쁘게 해줬지만 루머 때문에 가슴을 아프게 했다."


당시 정소녀의 하차가 얼마나 갑자기 결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정소녀: "방송을 떠난 후 경기도 장흥유원지에 레스토랑을 차려 운영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쉬고 있다. 남편과 서른두살에 이혼한 뒤 딸을 키우며 살았다."


정소녀: "혼자 사는 게 너무 좋고,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살 생각이다."



* 정소녀 간통죄


참고로 정소녀가 남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살게된 데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죠.


1989년 1월 정소녀가 이혼한지 4~5년이 되었을 때, 정소녀는 간통사건으로 피소가 됩니다.


고소인 김씨: "정소녀가 지난해(1988년) 8월부터 10월말까지 남편 오 모씨가 경영하는 일본 동경 소재 한국 클럽에 찬조출연하면서 남편과 육체관계를 맺고, 한달뒤인 9월 22일 서울 강남구 ㅍ호텔에서 양가 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약혼식까지 올렸다."


이에 대해 정소녀는 반박합니다.

정소녀: "오 모씨가 부인과 합의 이혼이 이루어졌다고 해 결혼하기로 했었으나, 지난해(1988년) 11월 초 오모씨가 거짓말한 것을 알게 돼 파혼을 하고 예물로 받은 시계도 돌려주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영장을 기각합니다.


서울지검특수 1부 안대희 검사: "정소녀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염려가 없고, 약혼을 했다 스스로 파혼한 점으로 미루어 삳대방이 유부남이었던 점을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


확실히 외국 국적의 사람들과 결혼은 신중해야 합니다.

한국과 달리 쉽게 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참고로 이렇게 거짓말로 순진한 사람들을 농락하는 사람들은 좀 강력하게 처벌을 했으면 하네요.



* 새로운 각오


최근에 정소녀는 가끔씩 방송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정소녀: "거짓된 루머는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하는데,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정소녀: "이제는 예전 같은 일이 생겨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거예요. 더 이상 물러날 필요도 없고 피할 데도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뭐가 무서워서 그렇게 도망쳤는지. 앞으로는 악플이나 악의적인 기사 등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거예요."


정소녀: "제가 좀 말이 없는 편이라 가족이나 친척들조차 연예인 될 줄은 꿈에도 몰랐대요. 그런데 이 일(연예인) 하면서 성격이 많이 밝아졌어요. 그래도 꽤나 얌전한 편이었는데 이제는(나이가 먹은 후에는) ‘대한민국 아줌마 스타일’로 변했어요(웃음). 어렸을 때는 모든 걸 참아야 되는 줄만 알았는데, 살다 보니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군요. ‘참는 게 능사가 아니구나, 인생을 살아 내야 변화란 게 있는 거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확실히 악성 루머에는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대하는 것이 필요하죠.

정소녀가 과거의 루머에서 벗어나서 다시 자신의 인생을 찾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 ..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