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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김수미 아들 딸 차별한후- 김수미 시어머니 일본여자처럼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영화배우 김수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지만, 한때 '김수미 아들과 딸' 차별로 심한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또한 김수미가 시어머니에 대하여 일본여자 같았다는 감상이 무척 흥미롭네요.


특히 김수미는 시어머니를 보고 결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죠.

김수미에 대한 여러가지 비하인드 스토리와 개인적인 생각이 흥미롭네요.


김수미 아들 사진


탤런트 김수미(본명 김영옥)은 1949년 9월 3일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납니다(김수미 고향). 올해 67살이죠(김수미 나이).

(김수미 학력 학벌) 서울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

(비학위 수료)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정보과학대학원 최고지도자과정 수료


(김수미 프로필 및 경력)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데뷔작은 드라마 아다다이고, 대표작으로 드라마 전원일기, 안녕 프란체스카, 전설의 마녀 등과 영화 마파도, 가문의 영광 2, 맨발의 기봉이 등이 있습니다.


* 어린 시절

* 김수미 남편 정창규 첫만남에서 실망한

* 김수미 시어머니를 존경하는 이유

* 김수미 남편의 바람기에도 유머로

* 김수미 시어머니 재산을 며느리에게

* 김수미 이혼 위기와 깨달음

* 김수미 아들을 구박하면서



* 어린 시절


김수미(이하 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지게꾼이셨지만,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김: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원래 제 꿈이 소설가였고, 고등학교 3학년때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합격을 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등록금을 마련할 수가 없었어요."


김: "결국 등록금 25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서,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가 눈물을 흘렸죠. ‘이 세상에 나에게 25만 원을 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라고 생각하면서요."


이후 김수미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로 방송국에 들어갔다가, 연기자가 됩니다.


김수미 과거 사진을 보면 대단한 미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수미 젊은시절 사진


김수미 리즈 시절 사진


김수미 박시연 닮은꼴 사진

그런데 묘하게도 아주 젊었을때부터 나이가 든 배역을 많이 맡았죠.

(참고로 전원일기에서 60세 노인인 일용 엄니 역을 처음 맡았을 때, 그녀가 32살이었는데, 그 이전부터 나이가 든 역할을 맡이 맡았음)


김: "내가 예전에 무뚝뚝한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 해봤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신인 때 여우짓을 못해서 드라마 피디들한테 좋은 배역을 못 땄지(웃음). 맨날 할머니 역만 하고 말이야."



어쨌든 김수미는 분장과 좋은 연기력으로 나이 든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고, 연기자로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김수미 남편 정창규(이름)'를 만나게 되죠.



* 김수미 남편 정창규 첫만남에서 실망한


정창규는 김수미보다 3살 연상이고, 직업은 사업가였습니다.


김: "남편이 2년 동안 방송국에 찾아와서 죽자사자 매달렸지만, 난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 내 이상형이 차분하고 성실한 스타일인데, 남편은 그 정반대의 사람이었거든. 방송국에 올 때도 항상 빨간 오픈카를 타고 왔고, 남자가 외모에 유독 신경 쓰는 날라리 스타일이었지."


김: "그러다가 그쪽 어머니를 만난 뒤 교제를 결심했어. 어머님이 사업을 하셨는데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셨거든. 원래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인텔리로, 친정 집안도 매우 윤택하고 일본여자처럼 예의도 바르셨지."


김: "또, 내 남편을 유복자로 키우면서 사업을 하셨는데,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셨어."


김수미의 시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밑에서 언급되는 일상 생활에서도 잘 드러났죠.


이후 김수미는 정창규와 연인관계가 됩니다.



* 김수미 시어머니를 존경하는 이유


김: "하루는 남편하고 데이트를 하다 과음을 했는데, 눈을 떠보니 남편 집이었어. 다 큰 처녀가 공복에 술을 마시고 외간 남자 집에 업혀왔던 것이지. 그런 상황이기에 시어머니께서 당황하거나 역정을 내실 법도 한데, 오히려 손수 아침밥까지 차려주시더라고. 사실 그날 아무 일도 없었기에 남편에 대한 믿음도 커졌지만, 남편보다 시어머니께 더 많은 감동을 받아 결혼을 결심했다."


확실히 김수미 시어머니는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시 여자 연예인이라면, 천하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는데도, 김수미에게 인간적으로 잘 대해줬네요.


또한, 김수미 남편 역시 평범한 남자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보통 젊은 여자, 특히 예쁜 여자가 취하면 여관이나 모텔로 데려가는데, 자기 집을 선택한 정창규에게도 괜찮은 구석이 있었던 것 같네요.


김: "남편이 나에게 프러포즈를 해야 하는데, 너무 쑥스러워해서 자기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어느날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는데, 나는 '어머님하고 차 마실 정도로 가깝진 않다'라고 거절을 했어."


김: "그러자 열흘이 있다가 (남편의) 누나가 전화가 하더라. 시누이가 "우리 동생이 아직 어머니 회사에 있고 크게 철은 안 들었다. 그래도 참 애는 착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 철은 안들었어요'가 겸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결혼해 보니 진짜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수미는 시어미니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남편에 대한 괜찮은 구석을 발견하고 결혼하게 됩니다.

1974년에 결혼식을 올렸죠(김수미 배우자 신랑 정창규).


(참고로 여자 연예인중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결혼까지 연결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톱탤런트 이유리가 그러한 경우죠.)


(이유리 새창보기) 

2014/10/20 - 이유리 남편 조계현 교회 전도사 결혼 이유- 철학 고민에


김수미는 아들과 딸을 한명씩 낳게 됩니다.

(김수미 자녀 자식) (김수미 가족관계)

김수미 딸 사진(왼쪽은 과거 사진)


* 김수미 남편의 바람기에도 유머로


그런데 김수미가 아들을 임신하고 있을 때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죠.


김: "내가 임신 3개월째인 8월달에 남편이 수영장에서 다른 여자들과 수영하고 있는 모습을 내 친구가 목격했다. 그 사실을 안 나는 임신중이었는데, (남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 "남편을 보자마자 파리채로 등짝을 때리면서 캐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내일도 수영하러 가야 하니까 자국 안 보이게 아래쪽을 때려달라'고 부탁하더라.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더라."


김: "남편의 재치에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그 후로는 남편을 그냥 포기하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 웃음으로 넘기는 남편의 낙천적인 성격이 매력이라는 생각이 되더라."


하지만 남편의 수영장 사건은 새발에 피였습니다.

김수미 남편이 본격적인 바람을 피우기도 했기 때문이죠.


김: "첫아이가 네살 때였고, 둘째 딸아이를 임신(8개월)한 상태였는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아이를) 출산을 한 이후에 이혼을 하려고 결심했다."

* 김수미 시어머니 재산을 며느리에게


김: "그런데 그 사실을 시어머니께서 알게 되셨다. "유복자라고 오냐오냐, 키운 내가 잘못이다."라고 하시면서, 살고 계시던 아파트와 신사동 네거리에 있는 3층짜리 작은 건물의 명의를 내 앞으로 옮기셨다. 당시 하시는 말씀이 혈압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


김: "또 시어머니께서 이런 말씀도 하셨다. "너는 내 아들과 살기에는 과분하다, 좋은 남자 만나서 보란 듯이 잘 살아라."라고요."


김수미 시어머니의 '혈압' 이유는 그냥 명분일 뿐이고, 김수미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 같네요.


보통 아무리 아들이나 자식이 잘못을 해도 팔이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확실히 김수미 시어머니(이름은 김옥환)의 행동은 전혀 달랐네요.


이런 강단이 있는 행동이라면, 제 아무리 천하의 개망나니 아들이라도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습니다.


이랬기에 천하의 김수미도 시어머니를 지극히 존경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김: "결국 시어머니의 말씀에 이혼은 좀 더 미뤄다. 그러자 결국 바람 피던 남편이 제자리로 돌아오더라."


이것이 김수미가 삼십대에 겪었던 이혼 위기였습니다. 이렇게 김수미는 시어머니를 지극히 존경하는데, 훗날 어이없는 사건으로 시어머니를 잃게 되죠(김수미 시어머니 사망 사건, 또한 김수미는 아들에 대하여 크게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김수미 부부의 이혼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사십 전후에도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죠.


* 김수미 이혼 위기와 깨달음


김: "30대 후반에 남편이 가정을 겉돌면서 갈등이 심각했다. 난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돈 잘 벌어, 살림 잘해, 그 바쁜 와중에 철마다 갖은 김치 만들어 시댁 식구들 챙기면서 열심히 사는데 뭐가 불만일까 싶었다."


김: "결국 이혼을 결심했고, 그날 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지금 내게 무슨 말을 할까? 라는 생각에 당신께서 생전에 읽으시던 '명심보감'을 꺼내서 폈다."


김: "그런데 갑자기 '내 두레박 끈이 짧은 것은 모르고 남의 집 우물 깊은 것만 탓하지 마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내 잘못을 곰곰히 생각해 봤다. 그러자 내 두레박 끈이 엄청 짧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 "예를 들어 남편은 합방을 원했는데, 나는 그동안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많이 거절했다. "내일 새벽에 촬영 있어서 나가봐야 한다."라면서... 아마 그때마다 남편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결국 김수미는 이때에도 자기 잘못을 깨닫고 남편을 포용하는 쪽으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녀는 훗날 좀 더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었죠.



김: "내가 일과 살림을 병행하면서 완벽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또, 남편에게는 애교가 없었고, 내 음식솜씨가 다른 사람들부터 찬사를 받을 정도였지만, 정작 남편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김: "여행을 가서 남편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에게 '왜 이렇게 젊었을 때 말을 안 들었냐'고 물었더니, '넌(김수미) 늘 명령조였다. 선생님 같아 싫었다'고 하더라. 그걸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더라. 시어머니는 그렇게 안했다."


확실히 김수미의 깨달음은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보통 부부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는, 한 사람만의 잘못만이 아니라 쌍방이 잘못한 경우가 많죠. 그러면서도 대개 본인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배우자탓만을 하게 되죠.



* 김수미 아들을 구박하면서


그리고 이런 부부간의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김수미는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김: "딸과 나는 잘 맞는다. 서로 숨기는 이야기도 없이 다 하는 편이다. 반면에 아들은 나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아들 때문에 속이 상해서 점집까지 찾아간 일도 있다."


김: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내 잘못이었다. 평생 딸과 아들을 차별해 왔던 것 같다. 지난 35년간 아들에게 단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었다. 항상 혼내기만 했는데, 돌이켜보니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아들에게 화풀이한 것 같다."


김: "아들을 항상 혼내기만 했고, 아들의 마음은 너무 몰라준 것 같다."


참고로 김수미 아들 직업은 외주 제작사 PD입니다.

김수미와 동종업계에서 일한다고 할 수 있죠.



보통 아들을 귀하게, 딸은 천하게 차별 대우하는 경우도 있는데, 김수미의 경우는 아들에게 남편을 투영시켰던 것 같네요.


어린 나이에 '가장 친해야 할 어머니'로부터의 구박은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 마련이죠.


김수미가 뒤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행동을 바로잡은 것은 다행인 것 같습니다.




김: "다이아몬드나 밍크코트? 과거에는 그런 것을 가졌을 때 행복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다 부질없는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에 우리 네 식구가 전복을 삶아서 먹은 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복 하나가 남았는데, 남편과 아들, 딸애가 서로 먹겠다고 하다가 끝내는 가위바위보를 하더라. 그렇게 식구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밥 먹는 모습을 보다가, '아,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라고 느꼈다."


김수미가 위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이런 행복을 얻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수미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새창보기) 김수미 남편 정창규 이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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