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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50대 이상) 결혼 생활

원미경 스캔들, 원미경 남편 이창순-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면

원미경 이창순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여배우중의 한명이 바로 원미경입니다.

탤런트 원미경의 과거 여러 스캔들과 사연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흥미롭네요.


또한 스캔들에 대한 원미경 남편 이창순의 입장도 좀 독특한 것 같습니다.


원미경 리즈 시절(젊은 시절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원미경은 1960년 4월 24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납니다(원미경 고향). 올해 56살이죠(원미경 나이).

(원미경 혈액형) O형

(원미경 학력 학벌) 성정여자중학교, 서울여자고등학교 졸업

(원미경 프로필 및 경력) 1978년 미스 롯데 선발에 1위를 하면서 데뷔


TBC 공채 20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 이미숙, 정애리 등과 함께 80년대 여배우 신트로이카라고 불립니다.


드라마 대명, 간난이, 행복한 여자, 아파트, 은실이, 아줌마, 고백 등과 영화 청춘의 덫, 너는 내 운명, 갈채, 불새의 늪, 자녀목, 변강쇠, 신사동 제비, 화엄경 등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습니다.


# 목차

* 어린 시절

* 에로이카 설명

* 원미경 스캔들(원미경 드라마 연출자 스캔들)

* 원미경 스캔들기자(원미경 동거기자)

* 원미경 대입사기 사건

* 원미경 남편 직업 PD

* 원미경 잠정 은퇴

* 원미경 근황

* 원미경 이혼 위기



원미경 과거 사진


원미경 남편 사진


* 어린 시절


원미경 아버지는 이북 출신의 원형관(이름)으로 큰 재산을 모읍니다.

원미경은 부유한 집안에서 1남 3녀중 막내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성장하는데, 원미경이 초등학교 5학년때 아버지가 친구의 빚 보증을 잘못 선 탓에, 집안의 가세가 크게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후 고등학교 3학년때 장난삼아 친구들과 함께 미스 롯데에 지원했다가 1위로 뽑힌 다음부터, 소녀 가장이 됩니다.


이미숙: "78년 미스롯데선발대회 당시 1등을 예감했지만, 강력한 또 다른 후보(원미경)에게 1등을 내주고 인기상(5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미숙: "대회 참가자 대부분이 학생 신분으로 수수한 메이크업이었던 것과 달리 그 후보는 (학생이었음에도) 굉장히 화려하고 세련되었다. 그 후보가 1위가 되는데, 누구 하나의 이견도 없을 정도로 당당했다."


이미숙: "인생에서 첫 번째 큰 쇼크였다. 내 감이 항상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이 무너졌다. 이후에 원미경은 바로 연속극에 주연을 맡았다. 그 이후 원미경을 보며 '출발은 너보다 늦지만 더 우뚝 설 것이며 오래 할 거다' 라고 결심했다."


이미숙이 인정할 정도로 80년대 초중반까지는 원미경의 독무대가 이어집니다.




* 에로이카 설명


사실 위에서 원미경, 이미숙, 정애리를 신트로이카라고 설명을 했는데, 원래 60년대 트로이카는 윤정희, 문희, 남정임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70년대 '신트로이카'가 바로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를 가르키죠.


그리고 80년대의 트로이카가 나오는데, 정애리 대신에 이보희를 넣어서, 원미경, 이미숙, 이보희를 '에로이카'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80년대 신군부는 3S 정책을 펼쳤고, 영화 노출에 대하여 굉장히 '개방적 정책'을 취했기에, 원미경은 영화 변강쇠, 이미숙은 뽕, 이보희는 어우동으로 각각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죠.


당시 '에로이카'의 이미지, 특히 원미경의 이미지가 '섹스 어필', '에로 여왕'이었다는 점은 후에 그녀에게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대표작인 변강쇠가 1986년 작품이지만, 그 이전부터 '에로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정도로 섹스 심볼로 사랑을 받음)



* 원미경 스캔들(원미경 드라마 연출자 스캔들)


원미경은 80년대 초반에 14살 연상의 아이가 있는 남자와 열애에 빠집니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로 남자와 헤어지는데, 그 남자가 기자들에게 원미경에 대하여 폭로를 합니다(원미경 동거 스캔들).


결국 루머가 점점 커졌고, 원미경은 1982년 KBS 2TV에 출연하고 있었던 '순애'에서 강제 하차를 당하게 됩니다.

당시 원미경이 빠지고 신인 여배우 박준금이 대신 출연하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게 됩니다. 요즘에도 자주 없는, 드라마 도중의 배역 교체였기 때문이죠.


결국 원미경은 MBC '황진이'에 진출하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자신보다 한수 아래라고 평가받던 이미숙과 같이 출연하면서, '황진이'가 아닌 '옥청' 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KBS가 반발하고(자신이 내쫓은 연기자를 왜 출연시키느냐), KBS와 MBC 사이에 알력 싸움이 커지면서, 결국 원미경은 8회만에 하차하게 됩니다.


'순애'에 이어서 시청자들은 분노했지만, 당시 방송사의 권력이 대단히 컸기에, 어쩔 수가 없었죠.



그리고 업친데 덮친 격으로, 1984년 1월에는 피어리스 화장품과의 광고 계약도 해지가 됩니다. 소녀 가장 역할을 했던 원미경으로서는 진퇴양난에 처해진 것이죠.


원미경은 친한 기자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건 생활고뿐만 아니라 남자에 대한 배신감도 작용했던 것 같네요.



이후 원미경은 1983년 영화에만 주력합니다.

총 9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이중에서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가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으면서 원미경은 화려하게 재기합니다.


또한 때마침 문화공보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있던 연예인들의 출연금지를 해제하도록 방송국에 지시를 하면서, 원미경은 1984년부터 다시 드라마에 출연하게 됩니다.


원미경의 스캔들이 터질 당시에도 대다수의 여론은 원미경에게 우호적이었다는 점은 좀 특이합니다.

2000년대에 황수정이 비슷한 사건으로 여전히 재기하지 못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르죠.


(이전글 새창보기) 

2014/12/09 - 황수정 강정훈 히로뽕 최음제의 진실/황수정 성현아 성매매 루머 차이점




아마도 황수정은 굉장히 단아한 이미지였기에 대중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원미경의 경우는 섹시심볼이었기에 동거사건이나 스캔들에서도 너그러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원미경 스캔들기자(원미경 동거기자)


원미경의 또다른 스캔들로 기자와의 동거 스캔들이 있습니다.

L모 기자의 이니셜로 지칭이 되었는데, 당시 연예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이상벽이 주목을 받습니다.


이상벽: "80년대 최고 여배우로 인정받았던 원미경과 과거에 스캔들이 터졌다. 예전에 원미경이 창 잘 나갔을 때 L모 기자와 연애 중이란 소문이 났다. 나는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방송국 관계자들은 모두 나로 오해했다."


이상벽: "후에 원미경 씨가 다른 사람(이창순)과 결혼해서 스캔들은 사라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분 좋았던 스캔들이다."(원미경 연예기자)


그런데 이 스캔들은 위의 연출자와의 스캔들과 달리 단순 루머였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이후 원미경은 약 2년간의 연애끝에 1987년 현재의 남편 이창순(이름)과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이죠.



* 원미경 대입사기 사건


혹은 원미경 대입부정 사건이라고도 합니다.

1986년, 87년 원미경은 고졸이 컴플렉스가 되었는지, 대입 시험을 준비합니다.


원미경: "소녀시절 꿈이 화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때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고교 졸업 8년만에 대입에 도전하게 되었네요."


이후 원미경은 학력고사를 치지만, 성적이 예상보다 낮게 나옵니다.


성신여대 대학당국: "원미경의 실기시험 성적은 비교적 좋았으니, 학력고사 성적이 낮아 탈락했다."


그런데 87년 1월 대입 합격 발표가 난 이후, 경찰은 모 미술학원 원장과 모 미술잡지사 기자를 사기혐의로 구속합니다.


경찰: "이들(사기꾼들)은 성신여대학장을 잘 알고 있는데, "기부금 3천만원만 내면 합격시켜주겠다"면서 지난해(1986년) 12월말 원양에게 접근, 원양으로부터 3천만원을 받아 썼다."


결국 원미경은 소녀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망신만 당하고 맙니다.



* 원미경 남편 직업 PD


원래 이창순의 직업은 방송국 피디였습니다(원미경 재혼이 아니라 초혼임).


이창순: "내가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조연출 당시 아내의 출연료를 빠뜨린 것이 만남의 계기가 됐다. 그런데 아내가 (화려한 연예인임에도) 무척 가식없는 성격이어서 결혼 상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원미경: "월급장이인 보통 사람을 기다려왔다. 나의 수입보다 그이의 월급이 적어도 훨씬 가치있고 커보인다."


원미경 신랑 사진


참고로 이창순은 1959년생으로 원미경보다 1살 연상으로,

과거 작품으로 신데렐라, 추억, 안녕 내사랑, 장미의 전쟁, 가을에 만난 남자, 눈사람 등이 있습니다.


이창순은 부인될 원미경의 과거 스캔들에 대해서도 입장을 표명합니다.

이창순: "그녀를 둘러싼 그간의 스캔들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지 않냐"



둘은 약 2년간의 연애끝에 1987년 6월 결혼식을 올립니다.

(원미경 배우자 신랑 이창순)


그리고 딸 이예린과 이예은, 막내 아들 이상운을 낳게 됩니다.

(원미경 자녀 자식)(원미경 가족 관계)


원미경 가족 사진


* 원미경 잠정 은퇴


원미경은 1993년 잠정은퇴를 하기도 합니다.


원미경: "올해 드라마들이 끝나는 대로 미국 LA로 유학을 떠난 남편에게 갈 예정입니다. 결혼 이후 제대로 결혼 생활을 누려보지도 못했어요. 아이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보고 싶어요."


당시 이창순이 방송국 피디 일을 그만두고 연출 공부를 위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상태였죠. 결국 원미경도 미국으로 가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게 됩니다.


(오른쪽은 이계인)


이후 원미경은 가족들과 함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2002년 드라마 '고백'을 마지막으로 다시 아이들의 조기 유학을 위하여 미국으로 떠납니다.


원미경: "MBC 월화드라마 ‘고백’을 찍으면서 15년 남짓한 결혼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고요. 살면서 왜 우여곡절이 없었겠어요. 제가 봐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하루는 코디와 매니저(모두 아줌마다)랑 펑펑 울면서 찍었다니까."



남편인 이창순은 당시 '장미의 전쟁'을 연출하면서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게 되었죠.


이창순: "아내가 “그동안 연기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공부를 하고 싶다”며 세 아이와 함께 친언니가 살고 있는 미국 워싱턴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아이들만 보낸다고 했으면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아내가 떠맡을 수 있다고 해서 같이 가도록 했죠."


참고로 장미의 전쟁은 최수종과 고 최진실이 출연한 드라마입니다.


이창순: "최수종과 최진실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아이들을 둔 아빠 엄마라는 점 때문이에요. 저는 아이가 없는 부부의 결혼생활은 동거나 다름없다고 봐요."


이창순: "(또한 드라마 주요 출연진의) 나이대를 30대 후반으로 잡은 건 그 무렵 남자들에게 많은 변화가 생기거든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가족에 대한 책임감, 거기에 업무 스트레스까지 심해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섹스리스 부부가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오히려 단순 육체노동을 하는 남자들은 부부생활에 그다지 문제가 없어요."



* 원미경 근황


최근에도 원미경은 아이들과 함께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미경 딸(큰딸)이 미국의 미술대회에 작품 2점을 출품했다가 1등과 2등을 모두 차지하기도 했죠(미국 버지니아주 프린스 윌리엄 카운티 2007 문학.미술대회).


원미경: "지금도 국내 방송계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당분간 아이들의 교육에 전념하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는데 행복을 느낀다."


원미경: "교회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바로 옆집에 친언니가 살고 있어 외로움을 적게 겪고 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장성하게 되면, 이미연도 복귀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원미경 최근 사진


* 원미경 이혼 위기


그런데 이창순은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 대하여 매우 독특한 견해를 드러냅니다.


이창순: "저는 워낙 게을러서 누군가와 사랑하고 싶다거나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와이프는 늘 이런 얘기를 해요. 자기는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면 갈 거라고. 제가 봐도 그럴 수 있는 사람 같아요."


이창순: "(아내가) 열정이 식지 않는 사람이라 항상 사랑을 갈구해요. 제가 아내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도 있고, 그래서 더 잘하라는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떠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고 봐요. 저는 아내와 연애하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은 못할 것 같아요."




원미경이 단순히 협박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남편에게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면 갈 거다.'라는 이야기까지 한다는 것을 보니 굉장하네요.


물론 이창순 역시 아내에 대해서 불만인 것은 아닙니다.


이창순: "아내는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갖고 연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그러면서도 아이들 육아와 일이 동시에 걸려 있을 때는 일을 포기해요. 아내의 강점은 무엇보다 마음이 열려 있다는 거예요. 또 아이들이나 저한테도 최선을 다하고요."


이창순: "결혼해서 살다 보면 많은 갈등을 겪게 되지만 그것을 극복하느냐, 포기하느냐는 결국 본인들의 노력 여하에 달렸어요. 저도 아내와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아이 낳고 살다 보니 예기치 않은 일들로 서로 힘들어할 때가 있었어요. 남녀관계가 바뀌는 건 아닌데도 연애시절에 느꼈던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차츰 패밀리로서의 감정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제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어요."


확실히 행복한 부부란 노력에 의해서만 누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 최진실 역시 원미경을 롤모델로 삼을 정도였죠.

최진실: "원미경 선배는 내 인생의 롤모델이다. 결혼 후에도 가정주부와 배우로서의 일을 모두 완벽히 해내는 프로의식을 보고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창순: "저희는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저는 아내의 프로다운 면을, 아내는 저의 인간적인 면을 높이 사거든요. 부부간에 서로 존중하고 아끼지 않으면 사랑을 지속하기가 힘들어요. 또 경제적인 여유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고요."


이창순: "와이프를 생각하면 앞으로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요. 정말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와이프를 만나지 못했다면 과연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싶어요. 사실 제가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와이프 덕분이죠. 부부가 서로 상대를 조금만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상대가 흔들릴 때 잘 견뎌주면 극단(이혼 등)으로 치닫는 일은 없어요.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워가던 연애시절처럼 아낌없이 마음을 주고받는다면요."


확실히 서로가 서로를 위한다면 극단으로 치닫는 일이 없죠.

게다가 앤애시절 초심을 항상 기억하고 그때처럼 노력한다면, 세상에 불행하게 될 부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인간이기에 항상 초심은 잊고, 이기주의적인 마음이 나타나게 되죠.

어쩌면 부부 생활의 불행은 상대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나의 초심을 잃은 마음'이나 '나의 노력 부족'을 탓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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