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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장손'인 구인회만은 '천한 장사치의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죠.


그런데 구인회 할아버지는 시대의 변화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고, 또한 구인회의 재능 (2년 전의 지수협동조합 일)을 그대로 썩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하게 됩니다.

결국 구인회 할아버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손자를 옹호했고, 이 덕분에 구인회는 비로서 장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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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구인회는 1931년 아버지로부터 자본금 2천원을 받고,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하던 동생 구철회의 자본금 1800원까지 합쳐서, 동생과 함께 '구인회상점'이라는 포목상을 시작합니다.

(참고로 1931년 당시 구인회 나이는 불과 25살이었지만, 이미 슬하에 장남 구자경을 비롯하여 4남매가 있었음)


LG구인회 가계도 - 구인회의 아들 구자경, 그리고 구자경의 아들 구본무로 이어지는 LG의 적통



그런데 포목점 사업을 하던 구인회는 곧이어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1936년 경남 지역에 큰홍수가 났는데, 이 때 남강의 강둑이 무너지는 바람에 구인회의 포목점에도 물이 2미터 이상이 차올랐고, 결국 가지고 있던 포목의 대부분을 버리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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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는 '괜히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잘 하고 있는 동생까지 끌여들여서 같이 망하게 생겼구나.'라고 큰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구인회는 문득 '장마가 진 해는 풍년이 든다'라는 옛말이 떠올리게 됩니다.


"장마가 가고 나면, 여름 후반에는 뙤약볕의 무더위가 이어진다. 그러면 대풍이 들고 농가 소득이 무척 높아지게 된다."


"농민들이 돈을 많이 벌면 그동안 미뤄뒀던 자식들을 혼인시키기 마련인데, 결혼을 할 때는 반드시 광목이나 비단이 필요하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구인회는 곧바로 큰 돈을 빌려서 모조리 광목을 사놓습니다. (이 당시 구인회가 사업을 몇년간 했기 때문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신용이 있었음)

결국 구인회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고, 그 해 가을에 구인회는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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