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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구인회는 광목에 독특한 문양을 넣었고, 이런 개성은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그의 경쟁자들이 평범한 광목을 만들 당시에, 구인회는 '부가가치'를 넣으면 '상품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 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죠.


이렇게 구인회는 포목으로 큰 돈을 벌게 되지만, 만주사변이 터지고, 1940년 일제는 생활필수품 통제령을 발동합니다. 이 때문에 구인회는 더 이상 포목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수산물 사업으로 전환을 했지만, 이 역시 태평양전쟁 터지게 되면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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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구인회는 1944년 트럭 30대로 운수업을 시작했지만, 전쟁의 여파로 이 분야에서도 돈은 그다지 벌지 못하고 1945년 광복을 맞게 됩니다.


참고로, 1945년 당시 구인회의 큰아들 구자경의 나이는 21살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제의 징병 대상이 되었죠.



원래 의사와 교사는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졌고, 구자경이 당시 교사로 일했기 때문에 일제로부터 징병을 피할 수가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가 되면서, 일제는 교사들까지 징병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구인회와 구씨 집안은 어떻게 해서든 구자경이 징병이 되지 안도록 계속 미루고 미뤘는데, 이는 해방 이후에 LG 집안의 아들들 대개가 병역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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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군대에서는 복무를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저항 정신의 발로, 그리고 당시 '징병으로 끌려가면 다 죽는다'라는 흉흉한 소문을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아무튼 포목점의 큰 성공 이후로, 만주 사변 등이 터지면서 몇년동안 구인회의 사업은 개점 휴업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광복이 되었고, 세상이 어수선해지게 됩니다.


"(조만간) 토지개혁을 한답니다.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나누어 준다는 말이 있으니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겁니다."


"새 나라에서는 보다 넓은 지역에 가서 새 사업을 벌이고 싶다."


구인회는 이런 정보를 얻고는 동생들과 함께 집안의 땅을 재빨리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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