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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는 이런 정보를 얻고는 동생들과 함께 집안의 땅을 재빨리 팝니다. 

그리고 당시 진주보다 더 큰 부산으로 진출을 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5년 뒤인 1950년에 실제로 농지개혁법이 실시가 되었고, 지주들은 정부로부터 땅 대신에 지가 증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때문에 지가 증권은 곧이어 휴지 조각으로 변하게 되었지만, 구인회는 이미 땅을 다 처분한 뒤였기 이런 피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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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해방 이후의 어서선한 시기에, 갑자기 사돈 집안의 허만정이 아들 허준구를 데리고 찾아옵니다.

(참고로 허만정은 구인회의 장인 허만식의 6촌이고, 동시에 허준구 역시 구인회 동생 구철회의 맏사위로, 구씨와 허씨 집안은 여러차례 겹사돈을 맺음)


GS 회장 허창수 가계도 - 허만정의 아들 허준구, 그리고 허준구의 아들 허창수로 이어지는 GS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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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허만정은 "내가 사돈의 사업역량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내 청을 들어 주소. 내 아들을 맡기고 갈 터이니 밑에 두고 사람 좀 만들어 주소. 사돈이 하는 사업에 내가 출자도 좀 할 생각이오."

(당시 허준구는 허만정의 셋째아들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엘리트였음)


(이 사건이 구씨와 허씨의 본격적인 동업의 시작임)

(참고로 허만정의 큰아들 허정구는 이미 삼성의 이병철과 함께 사업을 하고 있었음. 당시 삼성의 이병철, 효성의 조홍제 등과 함께 사업을 했고, 훗날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창업의 주역이 됨. 나중에는 삼성을 나와서 삼양통상을 창업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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