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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입점은 성공했지만, 화장품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어서, 결국 구인회는 낙담한 뒤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죠.


하지만 겨울이 되면서 구인회의 크림은 엄청나게 팔리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폰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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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구인회의 '아마쓰크리무'의 가격이 굉장히 쌌고, 두번째는 당시 해방이 되면서 일제 시대때의 '억압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여성들이 화장품을 바르는 것이 유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태평양 전쟁때는 물자 부족으로 화장품 등이 굉장한 고가였음)



이런 분위기속에서 신규 제품이면서 값이 싼 제품인 구인회의 '아마쓰크리무'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이죠.


이에 구인회는 크림 제조 기술자인 김준환의 실력을 믿게 되었고, 그와 함께 공장을 설립하여 자체 크림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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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LG그룹 초창기 양대 산맥중의 하나인 '락희화학공업사'였죠. (락희란  ‘즐거울 락(樂)’에 ‘기쁠 희(喜)’자의 뜻이 있는데, 영어로는 럭키로 사용함)


(참고로 당시 구인회는 한국 최초로 서양 모델 사진을 사용함)


"우리도 한 번 외국 여자 사진을 써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양 여자는 어딘지 모르게 이목구비가 균형이 잡혀 있고, 또 영리하고 예뻐 보입니다."


이런 측근의 제안을 받아들인 구인회는 당시 미국 여배우 디아나 다빈'의 사진을 표지 모델로 사용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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