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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이야기/구인회

LG에서 구씨 집안과 허씨 집안과 지분 비율

아무튼 이 때 허만정이 출자한 돈은 구인회의 조선흥업사 자본금의 1/4에 해당할 정도로 큰 금액이었습니다.

(나중에 허씨 집안은 좀 더 투자를 해서 LG내의 구씨와 허씨 비율은 대략 65대 35의 비율로 나뉘게 됨)


아무튼 1945년 해방 직후 구인회는 부산에서 조선흥업사를 설립하지만 (미군정으로부터 허가받은 무역업 1호 업체), 당시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돈을 벌지는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재와 자금을 얻었는데, 구인회는 향한 곳은 어디였을까요?

바로 당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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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시대가 혼란스러워서, 마땅한 사업 아이템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시 구인회는 2명의 동생인 구철회와 구정회, 그리고 허준구 (구철회의 맏사위)와 함께 당구를 치면서 사업의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당구장에서 사귄 친구가 바로 김준환이라는 화장품 크림 기술자였죠. (흥아화학공업사 소속의 기술자)


구인회는 "그래, 이 세상에 여성이 있는 한 영원한 것은 화장품이다."라고 하면서, 화장품 판매 사업에 뛰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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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크림은 미제와 일제가 거의 시장을 장악한 상태에서, 국산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인회는 직접 화장품 500타를 사서 서울로 올라가서 판매를 합니다. 남동문 시장 등의 화장품 가게를 돌면서 제품을 홍보했지만, 상점 주인들은 미제와 일제만 취급했기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수였죠.


하지만 구인회는 당시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동생들인 구태호와 구평회의 도움으로 종로 가게 등의 개척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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