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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이야기/구인회

구인회 회장 부인 허을수와의 결혼으로

구씨와 허씨는 겹사돈도 많이 맺었고, 그 전부터 인연이 굉장히 깊었습니다.


(아무튼 결혼 당시 구인회 나이는 14살, 구인회 부인 허을수 나이는 16살로 조혼이었음)

(그리고 구인회 큰아들 구자경이 1925년에 태어나는데, 아버지 구인회와는 나이차이가 불과 18살밖에 나지 않았음.

당시 시대상으로 이것은 굉장히 평범한 일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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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구인회는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2학년을 수료하고 20살이 되던 1926년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당시 구인회의 고향 마을에는 일본인 무라카미가 잡화점으로 큰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승산리 일대에서 유일한 잡화점을 운영하면서, 잡화류와 문구류, 석유 등을 완전히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당시 구인회는 "마을 주민들이 너무 비싼 돈으로 무라카미 잡화점의 물건을 사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지수협동조합을 만들게 됩니다. (1929년)

마을에서 광목과 비누, 석유 등을 공동구매를 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훨씬 싼 값에 공급하기 위해서였죠.


이 때 구인회는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그 혜택이 전부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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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인회는 동아일보 진주 지국장을 맡아서 잠깐 언론계에서도 종사를 하는데, 곧이어 1931년 본격적인 사업을 결심하게 됩니다.


사실 당시 구씨 집안은 조금씩 쇠락하는 기미가 있었는데, 장손인 구인회는 여기에 대한 책임감이 무척 컸고, 장사를 통하여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죠.


하지만 유교적인 가풍이 강한 집안의 '장남'이 장사를 한다고 집안의 반대는 컸습니다.

실제로 당시 구인회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는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집안의 장손'인 구인회만은 '천한 장사치의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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