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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총 3개의 글중 두번째 글


영화배우 이대근 미국 이민 생활,

그리고 이대근 변강쇠, 이대근 뽕의 세간의 인식에 대하여 반발하는 이유를 짚어봅니다.


# 목차

* 이대근 미국 이민 생활

* 이대근 기러기 아빠의 때늦은 후회

* 이대근 변강쇠에 대한 해석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이대근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3)

* 이대근 미국 이민 생활


이대근: "처음 미국으로 이민간 다음에 너무 막막해서 와이프랑 같이 울었다. 후회도 엄청 했고."


이대근: "미국에 갔을 때 내가 출연한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시라소니'의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갔었다. 그래서 막막한 기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미국 워싱턴의 도미니언 뱅크에 찾아가서, 나를 "한국의 톱스타"라고 소개하면서 신용대출을 요구했다."


이대근: "당시 미국 교포 사회에서는 나의 그른 행동을 만용이라고 비웃었지만, 은행측은 영화를 보고 나에게 5만 달러를 융자해 주었다. 미국에서는 영화인들의 신용도를 제일로 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대근은 YMCA 회관 매점 역시 같은 방법을 써서 10년 장기 계약을 하는데 성공했고, 이 매점을 아내가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돈을 벌게 됩니다.(이대근진)


이후 이대근은 연기를 위하여 다시 한국으로 귀국했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게 되었죠.

이대근: "미국에는 아내가 사는 집이 있고, 한국에도 나 혼자 살기에 불편함이 없는 아파트가 있어서 감사하다."


이대근: "우리 배우들이 감성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아침에 문득 가족이 생각나면 바로 미국에 가기도 했다. 그동안 (2007년까지) 미국을 240번 다녔어요. 미국에 가면 일주일, 길어야 보름 머물었다. 어쩔 때는 하룻밤만에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고. 번 돈의 대부분을 길바닥에 뿌렸지만 아깝지 않다."


이대근: "난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한다. (2012년 기준으로) 31년을 떨어져 살고 있지만, 지금도 내가 간다고 하면 아내는 내가 먹고 싶은 거 쫙 차려놓고 기다린다."


영화배우 이대근 사진

* 이대근 기러기 아빠의 때늦은 후회


이대근: "원래는 딸들을 미국에서 공부시킨 다음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좋은 일을 하라고 보냈는데, (딸들이) 공부를 마치고 나니 한국 하면 남산, 구멍가게, 집, 학교밖에 몰라서 (다시 한국으로) 못 오겠다고 하더라."


이대근: "그러고보니 내가 그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한국에 한번 오면 명동 가서 떡볶이나 먹였으니까."


이대근: "그래서 (시간을 내서) 아내와 딸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부터 시작해서 부산, 대구, 대전을 다 돌아다녔다. 그랬더니 딸들이 '악' 하고 소리를 지르더라. 한국이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였느냐고."


이대근: "하지만 지금이 되어서야 비로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참고로 이대근은 원로 배우이지만, 변강쇠, 뽕 등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죠.

이대근: "변강쇠 이미지가 굉장히 오래 가는 것이 웃긴다. 사실 변강쇠를 문학이 아니라 에로티시즘으로 보는 한국 사회가 정말 무식한거니까."


이대근: "변강쇠는 판소리 열두마당 중 하나로, 당대의 권력자들과 양반계층들의 위선과 문란한 성문화를 비판한 풍자 해학극이다. 변강쇠의 아랫도리가 유난히 큰 것은 일종의 불구를 상징하고.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인권이야(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 이대근 변강쇠에 대한 해석


이대근: "옹녀 역시 제도권에서 버림받은 여자다. 그 둘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가족을 일구려고 발버둥을 치지. 마지막 장면에 변강쇠가 장승을 붙들고 막 싸우다가 장승을 도끼로 찍어내서 불태운다. 장승은 곧 제도를 의미하지."


이대근: "그런데 (그런 에로물인 변강쇠인데도) 당시 감독이 안기부에 끌려갔다. 원래는 마지막 장면인 장승에 사또가 오버랩되어서 나오는데, 당시 (전두환) 정부에서 '현정부에 대한 저항이냐?'라고 해서 그것도 잘라냈지."


이대근: "뽕 역시 나도향의 원작을 가지고 만들었다. 김동리 등 당시는 모두 한(恨)의 작품이다. 그런데 무식한 사람들이 뽕도 에로티시즘이라는 거지. 명작(소설)이라고는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야. (당시 뽕은) 저항하면 병신 되던 일제 시대의 한을 담은 작품이다."


이대근: "(변강쇠에 출연한 다음에) 봉변을 얼마나 당했는지... 목욕탕에만 가면, 사람들이 아랫도리를 훔쳐보기 바빴다. 사람들이 고층 아파트에 살고, 또 더운 물 펑펑 쓰기는 하지만, 문화 인식 수준이 그 정도다. 딱 전국노래자랑 수준이지."


사실 이대근이 현재에 와서는 이렇게 해석을 하지만, 변강쇠는 에로물이 맞습니다.

영화 내용을 보면 치명적인 문제점(?)을 가진 여자 옹녀가 자신에게 맞는 남자 변강쇠의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죠.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영화는 졸속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에로티시즘과 더불어 변강쇠가 폭포같은 오줌을 누고, 여자들은 그 오줌발을 맞으면서도 놀라고 즐거워하는 등,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에로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죠.


실제로 이대근 본인부터 변강쇠에 출연했을 당시에 감독의 연출력을 탓하기도 했죠.

이대근: "(감독의) 연출력은 개판이었다. 영화를 끝내고 나서도 감독한테 이걸 작품이라고 만들었느냐고 막 화를 냈다. 그게 뭐 대박이 난 셈이긴 하지만."

원로배우 이대근 사진

물론 뽕은 이대근의 말처럼 나도향 원작의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물론 영화에서 갑자기 독립운동가를 비하하는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 들어가기는 함), 작품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결국 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하게 되었죠.


아무튼 이대근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상당히 억울해하는 부분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미국 이민 이유도 그렇고 전적으로 그의 말을 신뢰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하긴 이대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미화'의 동물이기도 하죠.


이대근에 대한 이야기가 3편으로 이어집니다. (3편 새창보기, 3/3)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1주일 후에 발행됩니다)

이대근 근황과 가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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