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총 3개의 글중 두번째 글
은수미 고문 성폭행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은수미 국회의원의 과거 이야기들을 짚어봅니다.
은수미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3)
(스폰서 링크)
# 목차
* 은수미 노동 운동 당시
* 은수미 1차 검거 이유
* 은수미의 요구는 과했던가?
* 은수미 국보법 위반으로
* 은수미 전남편의 충고
* 은수미 국회의원 고문 이야기
* 은수미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 은수미 가족들의 도움으로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은수미 노동 운동 당시
이후 은수미는 노동 운동을 시작합니다.
은수미: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1년 6개월 정도 일을 했어요. 당시 사용했던 이름은 봉희였어요. 공장에서는 항상 싸움이 벌어져요. 불량이 나오면 (여자 공원들끼리) "네가 불량을 냈다"라며 머리채를 잡고 싸워요. 이게 봉급과 연결된 거여서 무척 민감했죠."
은수미: "게다가 회사가 이걸 이용하기도 했어요. 누구는 급여를 더 주고, 누구는 급여를 덜 주고 그렇게요."
은수미: "당시 제 시다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온 아이인데, 하루는 무단결근을 했어요. 그 다음날 그 아이가 출근하자 (남자 사원들이) 그냥 밟아버리더군요."
은수미: "그냥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구두발로 (여자아이를) 마구 밟아 버렸어요. 저는 (공장에) 나름대로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왔는데, 그냥 옆에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나서 다시 일을 해야 했어요. 저도 해야 했고, 엉망으로 두들겨 맞은 그 아이도 퉁퉁 부어서 다시 일을 해야했죠."
은수미: "하루는 기계식 미싱에 바늘이 제 손톱을 관통했어요. 그러자 반장이 뛰어오면서 "야, 이 멍청아, 옷감에 피 묻잖아!"라고 질책을 했어요."
은수미 사진
* 은수미 1차 검거 이유
은수미: "당시 여름에는 공장내부가 무척 더웠고 겨울에는 무척 추웠어요. 그런데 선풍기나 난로도 없었어요. 여름에 열두시간 작업하면 작업복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고, 겨울에는 난로가 없어서 다리미로 손을 덥혀서 일을 했어요."
은수미: "또한 당시 아홉시가 작업 시작 시간인데, 여덟시부터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켰어요. 그리고 그 한시간 노임을 떼 먹는 거죠."
은수미: "그래서 유인물을 썼어요. 여름에는 선풍기를, 겨울에는 난로를 설치해 달라고 하고, 또 1시간 임금 역시 제대로 달라로 유인물을 써서 뿌렸죠. 결국 그게 걸려서 작업복을 입은 채로 바로 구속이 되었어요."
사실 공장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역인데, 그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 '일한 만큼 보상을 받는 합리적인 대우'도 못 받은 것 같습니다.
자본의 본성이란 무척 탐욕적이기 때문에, 선풍기와 난로는 물론이고, '일을 시키고도 돈을 주지 않는 불법'이 비일비재하죠.
* 은수미의 요구는 과했던가?
은수미: "6개월 뒤에 출소를 해서 다시 공장에 갔어요. 그러니까 당시 공장에서 난리가 났어요. 왜나햐면 제가 체포될 때 "특급 빨갱이여서 평생 감옥에서 못 나올거다"라는 소문이 퍼졌거든요. 그런데 6개월만에 출소해서 공장에 다시 인사하러 나타난 거에요."
은수미: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는데, 한명이 눈치 빠르게 살짝 얘기해줬어요. "너 평생 교도소에서 못 나온다며, 못 나올 줄 알았는데 나왔네"라고요."
은수미: "게다가 "네 덕분에 우리가 좋아졌어."라는 말도 들었어요. 회사에서 선풍기와 난로도 설치하고, 또 한시간 임금 역시 지불하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은수미의 요구사항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은수미의 행동 덕분에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혜택을 보게 되었네요.
* 은수미 국보법 위반으로
이후 은수미는 사노맹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992년 은수미와 사노맹 조직원들은 일망타진되는데,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정권의 과민반응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은수미: "생각을 해 보면, (사노맹 활동 당시에) 말을 굉장히 강경하고 살벌하게 했지만, 그 내용은 별 게 없었어요. 우리 목표는 지금 얘기하면 좀 우습지만, '복지국가'였던 것 같아요. 목표를 최대한으로 나가 봤자 기껏해야 유럽 사민주의 정도죠."
은수미: "우리가 말을 그렇게 강경하게 했던 것은 그래야 언론이 받아 써주고, 또한 사회가 우리 말에 듣는 척이라도 했으니까요."
은수미: "(사노맹 당시의 주장은) 지금 제가 의원으로서 하는 얘기와 별로 다르지 않아요.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얘기와도 거의 같은 수준이죠."
또한 당시 은수미와 사노맹 조직원들은 사상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 은수미 전남편의 충고
은수미: "제가 안기부에 잡혀 들어가기 전에 구 소련이 붕괴했어요. 그게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냐면, 제가 학질이 걸릴 정도였어요. 오한이 심하게 왔고, 몸도 심하게 아팠고요. 그걸 수배중에 겪었어요."
은수미: "결국 (소련의 붕괴로) 제가 바라보고 있던 사회주의적 이상이 현실에서 완전히 박살이 난 거죠."
은수미: "지금은 이혼한 전남편이 되었는데, 아무튼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는 저에게 조직(사노맹)을 포기하라고 권했어요."
(은수미 의원 전남편)(은수미 이혼 사유는 공개되지 않음)
은수미: "(전남편에게) 제가 말했어요. "배가 침몰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배를 떠날 수는 없다."라고요. 사실 우리가 믿었던 이상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나는 당국에 잡히게 된다면 잡히겠다고 결심했어요."
사실 당시 사노맹을 비롯한 운동권들은 소련과 중국, 그리고 북한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사회주의 이상론'에 심취한 상태였죠.
은수미가 노동운동을 통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킨 것과는 별개로 이 부분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게다가 은수미에게는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때 행동을 고치는 용기'도 없었네요.
자신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바로 고치는 사람이 진정으로 용기있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 은수미 알몸이 되자
아무튼 은수미와 사노맹 조직원들은 그렇게 공산권의 붕괴로 사상적으로 흔들리는 상태에서 당국에 검거됩니다.
그리고 안기부의 고문을 받게 되었죠(은수미 국보법 위반 검거)(은수미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은수미: "안기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한 20일 받았어요. 원래 우리끼리 사전에 약속한 것은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는데, 결국 일주일 정도만에 무너졌어요."
은수미: "고문은 사람을 밟고...굴리면서 밟던가 물고문에 손가락 꺾기... 결국 그때 허리를 다쳐서 허리를 내내 못 썼어요."
은수미: "21명이 3교대로 들어와서 잠을 안 재우면서 취조를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그 21명이 갑자기 다 철수를 하고는 낯모르는 남자 3명이 들어왔어요."
은수미: "그 세 남자는 술에 취해 있었는데, 제 머리채를 끌고 벽에다 (나를) 치면서 단추가 뜯기고... 알몸이 드러났어요. (성폭행을 하려는 행동에) 너무 무서웠어요. 결국 나는 거기서... 무너졌어요(자백했어요)."
(훗날 국정원 불법 해킹 사건 당시 은수미의 글)
(은수미 국정원 비판 글)
* 은수미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은수미: "결국 나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아서 괴로웠어요. '은수미, 너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죽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성폭행이 두려워서 입을 여는구나(자백을 하는구나)... 라고."
결국 이렇게 고문을 당하면서 은수미는 폐렴, 폐결핵, 종양, 후두염, 협심증 등 각종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소장과 대장을 잘라내는 수술도 2번이나 받게 되었죠.
사실 은수미가 수술을 받게 된 데에는 국제 엠네스티(국제 사면위원회)의 도움이 컸습니다.
당시 엠네스티가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서 수술을 받게 한 것이죠.
만약 엠네스티가 아니었다면, 아마 은수미는 현재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 같네요.
아무리 죄인이라도, '수술'을 비롯한 의학적인 치료는 제대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이 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민낯이었죠.
(사실 멀쩡한 사람을 그렇게 고문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죠.)
* 은수미 가족들의 도움으로
아무튼 이후 은수미는 겨우 수술을 받게 되지만, 수술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은수미: "폐결핵과 폐외결핵을 같이 앓게 되는데, 제 머리카락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 부위에서 결핵이 생겼어요. 결국 내장에 종양까지 생겨서 소장하고 대장 주변 수십 센티미터를 잘라냈어요."
은수미: "그런데 그걸로 쓰러져 병원에 가니까 맹장인줄 알았다는 거에요. 그래서 병원에서는 맹장수술을 하려고 제 배를 열었는데, 내장 부위에 있는 종양을 보고는 그냥 다시 덮었어요."
은수미: "그러는 와중에 제 가족들이 왔어요. 제 오빠가 의사, 삼촌도 의사, 병원을 완전히 발칵 뒤집어 놓은 거죠. 제 가족들이 "개 돼지도 이런 식으로 수술 안 한다"라고 난리를 치니까, 병원에서는 의사인 오빠를 중환자실로 들여보내줬어요."
은수미: "사실 가족들과도 사이가 나빴어요. 내가 (민주주의) 운동을 못하면 괴로워서 죽을 것 같았는데, 집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죠. (사이가 많이 나빴다가) 우리 가족 관계가 다시 회복된 것은 제 (사노맹) 재판때였어요."
은수미: "가족들이 제 재판의 전과정을 지켜보고는 오빠가 "내 동생이 참으로 정의롭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더군요."
은수미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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