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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총 3개의 글중 첫번째 글


은수미 국회의원

은수미의원 전남편과 은수미 과거 어린 시절들을 살펴봅니다.


또한 은수미 전남편과 어떤 관계였는지도 흥미롭네요(은수미 국회의원 전남편 첫만남).


(은수미 표창원)

표창원에 대한 포스팅 (새창보기)

표창원 부인 러브스토리와 딸 아들 이야기


(스폰서 링크)


# 목차

* 은수미 집안 재산

* 은수미 가난한 친구들을 보고

* 은수미가 괴로워한 이유

* 은수미 운동권으로 변신

* 은수미 국회의원 전남편 첫만남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국회의원 은수미는 1963년 12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은수미 고향 서울, 하지만 은수미 진짜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임). 올해 54살이죠(은수미 나이).

(은수미 종교) 기독교(성공회)

(은수미 학력 학벌) 서울 신림초등학교, 신림여자중학교, 미림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

(은수미 프로필 및 경력) 사노맹 정책국장(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2012년 제 19대 국회의원(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번)

2013년 민주당 노동 담당 원내부대표


(은수미 지역구 - 19대 비례대표, 20대 총선에서 성남 중원에 출마)


은수미 사진


* 은수미 집안 재산


어렸을 때 은수미 집안은 꽤나 부유한 편이었습니다.


은수미: "아버지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중령까지 지내셨어요. 월남전에도 참전했던 보급장교였는데, 수입이 좋으셨어요. 제가 어릴 때에 집에 티비,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도 많았죠."


은수미: "아버지가 결국 중령으로 제대하셨는데, 그 이유는 정치적인 불이익때문이었어요."."

(그외에 은수미 오빠와 삼촌 역시 의사입니다. 밑에서 설명)(은수미 재산 많은 이유)



은수미: "제가 서울에서 태어난 셈이지만 정확하게는 배가 부르신 어머니께서 친정이신 (전라도) 정읍으로 내려가서 저를 낳으셨어요. 하지만 어려서부터 계속 서울에서 살았죠."


은수미: "당시 같은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도 생활 수준의 격차가 심한 편이었어요. 제가 집에서 싸간 도시락에는 햄과 계란말이, 땅콩 잼 등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반에서는 난리가 났었죠."


(참고로 국회의원이 된 다음에 현재 은수미 재산은 4억 9천 5백여만원 정도(2015년 3월 기준))


* 은수미 가난한 친구들을 보고


은수미: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장난치다가 벽에 부딪혔는데, 벽이 무너졌어요. 판자집이었던 거죠. 당시 저는 그런 생활 수준의 격차를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은수미: "중학교 때 짝꿍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장례를 치르는 친구집에 찾아갔는데, 흙집에 세들어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 집을 처음 보고) 너무 당황한 나머지 친구 어머니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는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어요."


은수미: "그리고 내 짝꿍은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못했어요. 아마 공장에 갔겠죠. 그런 것이 참 용납이 되지 않았어요. 같이 놀던 친구들인데 나는 흰 구두에 원피스 입고, 짝궁은 학교도 못 다닐 정도이고..."


이처럼 은수미는 가난한 친구들을 통하여 '빈부 격차', '사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서울대에 진학한 이후에 학생운동에 투신하는데, 처음에는 '비겁하고 무능'했습니다.



* 은수미가 괴로워한 이유


은수미: "전 지식인은 양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양심을 제가 주장하기에는 너무 무서웠죠. 입학 후 5월달에 김상진 열사 기일이었어요. 검은 상장을 달고 집회에 참여했는데, 전경이 최루탄을 쏘니까 너무 무서워서 혼자서 대운동장까지 도망을 갔어요."


은수미: "그 일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날 밤 일기에 "내 평생 이 부끄러움과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하여 내 영혼에) 영원히 검은 상장을 달고 다니겠다'라고 썼어요."


은수미: "또 한번은 도서관에서 선배가 투신을 한 적이 있었어요. 사람이 떨어졌으면 응급조치라도 해야 했지만, 저는 역시나 전경이 달려들자 겁이 나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쏜살같이 도망가 버렸어요. 그 때의 제 심정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은수미: "저 스스로 너무나 비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은수미는 본인의 약한 점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네요.



* 은수미 운동권으로 변신


은수미: "급기야 (운동권) 선배들을 따라 다니면서 저 좀 끼워 달라고 하소연을 하게 될 정도였어요. 그리고 그 시절에 선배들이 백태웅을 소개해 주었어요. 이후 백태웅이 백태웅이 4학년이고 제가 3학년일 때 백태웅은 학도호국단 단장, 그리고 저는 학도호국단 여학생부이 되어서 학자추라고 총학생회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리고 은수미는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추적인 인물로 부상하게 됩니다.

(사노맹 정책국장을 맡았는데, 1992년 안기부와 경찰에 의하여 사노맹 조직이 일망타진될 때에까지도 당국에서는 은수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음.

이 이유로는 은수미의 연약해보이는 동안 외모와 사노맹 조직원들이 조직의 핵심을 숨기려는 노력 때문이었음)



그리고 은수미는 서울대 3학년 시절에 제적을 당하게 됩니다.

(후에 다시 복학하여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게 됨.)


* 은수미 국회의원 전남편 첫만남


참고로 은수미 남편은 은수미가 대학 1학년때 만났던 동기였습니다(은수미의원 남편 이름은 공개하지 않음).

둘은 원래 친구로 지내다가 1999년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은수미 의원 배우자 신랑)(은수미의원 전남편)


은수미 남편 역시 사노맹의 조직원이었는데, 은수미처럼 중책은 맡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에 조직이 흔들릴때 은수미에게 흥미로운 충고를 했네요(밑에서 추가 설명).

(은수미 국회의원 전남편)


아무튼 후에 은수미는 이혼을 했는데, 은수미에게 자녀(자식)은 없습니다.

(은수미 재혼은 잘못된 루머임)


아이를 낳지 못한 것에는 은수미가 고문을 받으면서 몸이 망가진 것 역시 큰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또한, 이 부분이 은수미 이혼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은수미에 대한 이야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 새창보기, 2/2)

은수미 고문-알몸이 되자 무너져,은수미 사노맹 사건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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