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총 3개의 글중 두번째 글
전 국회의원 김부겸 지지율, 그리고 김부겸 한나라당 시절의 행적과 더불어 김부겸 탈당 경고를 한 이유를 짚어봅니다.
김부겸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3)
(스폰서 링크)
# 목차
* 김부겸 과거 고문당했던
* 김부겸 한나라당으로 간 이유
* 김부겸 한나라당내에서의 활동
* 김부겸에게 따라붙은 꼬리표
* 김부겸 지지율 김문수를 앞서지만
* 김부겸 탈당 경고(김부겸 홍의락 사건)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김부겸 과거 고문당했던
참고로 김부겸은 간첩사건(?)에도 연루됩니다.
김부겸: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지난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이선실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다. (간첩사건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끌려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한민국에서 간첩 사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잘못하면 집안 모두가 빨갱이로 몰려 완전히 풍비박산날 수도 있으니까."
김부겸: "(결국 간첩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가서는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나뿐만 아니라 장모님과 아내까지도 안기부 조사실에 연행됐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때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 무렵 김부겸은 본격적으로 정치 일선에 뛰어듭니다.
김부겸 사진
* 김부겸 한나라당으로 간 이유
김부겸: "1987년 대선에서 YS(김영삼)와 DJ(김대중)가 분열했고, 결국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후 1991년 이부영, 제정구, 유인태, 원혜영 등의 선배들과 함께 일명 '꼬마 민주당'에 입당하며 (처음으로)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다."
김부겸: "동년(1991년) 평화민주당과 꼬마 민주당, 일부 재야세력이 결합해서 '통합민주당'이 출범되었다. 하지만 1995년 DJ가 정계에 복귀하며 국민회의를 창당하게 되면서, 통합민주당은 다시 갈라지게 되었다."
김부겸: "1996년 총선에서 나는 민주당 후보로 과천의왕에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결국 총선에 참패하게 된 민주당은 동년(1996년)에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했다. 노무현, 김원기, 제정구, 유인태, 박석무, 김정길, 원혜영, 이철 선배 등이 참여했고, 나는 막내였다."
김부겸: "그때 바닥 인정도 접하고 재정에도 보태겠다고 모두 함께 출자해서 서울 역삼동에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음식점(고깃집)을 내고 약 2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들(통추 회원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을 위하여) 직접 고기를 구워주고 당번을 정해 손님을 접대했다."
김부겸: "그러다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조순 서울시장이 민주당 총재 겸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합당하고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을 출범시켰다. 이때 민주당 소속인 통추 회원들은 서로 가는 길이 엇갈리게 되었다."
김부겸: "당시 김원기 노무현 김정길 유인태 원혜영 선배들은 DJ 쪽에 합류하고, 나는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해 온 제정구 선배와 이부영 이철 박계동 등의 선배들과 함께 민주당에 남아 있다가 한나라당 창당 멤버가 되었다."
김부겸: "나는 서울대 정치학과 10년 선배이면서 동시에 정치인으로도 스승이 되어준 빈민운동가 제정구 의원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제정구가) 죽음을 앞둔 1998년 가을, 암투병중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국정을 챙기는 모습이 아직도 눈물겹게 다가온다. 그렇게 그분은 내 마음 깊이 상생 정치의 비전을 아로새겨주고 떠났다."
* 김부겸 한나라당내에서의 활동
이렇게 김부겸은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고, 제 16대 총선에서 경기 군포시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됩니다(200년).
그런데 한나라당내에서도 확실히 '색깔'이 많이 달렸죠.
김부겸: "2003년 2월 당시 다수당인 한나라당(후에 새누리당)이 대북송금특별검사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나는 그전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국회 차원의 진상 규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대북송금특별검사법을) 반대했다."
김부겸: "결국 소수 여당이던 민주당이 퇴장한 가운데 진행된 전자투표에서 재석 162명 의원 중 찬성은 158명, 반대 1명, 기권 3명이 나왔다. 그 반대 1명이 바로 나였다. 당시 어떤 (한나라당) 의원은 평양에서 고맙다고 전화 받았느고 야유를 하기도 했다."
결국 김부겸은 2003년 다른 소장파 의원들(일명 독수리 5형제)과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동년 말 민주당 탈당 의원들과 함께 '열린 우리당' 창당 멤버가 됩니다.
김부겸: "당론과 다른 의견이나 제안이 나오면 왕따를 시키거나 당을 떠나게 만드는 풍토가 우리의 정치 문화이다. 결국 나는 2003년 7월 이우재 이부영 김영춘 안영근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그해말 민주당 탈당 의원들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당시 창당대회 사회를 보면서, 우리 당이 한국 정치 역사상 첫 지역주의를 극복한 전국 정당으로 성공하자고 호소했다."
* 김부겸에게 따라붙은 꼬리표
하지만 김부겸은 열린우리당(후에 더민주당)내에서도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됩니다.
열린우리당의 열렬한 일부 추종자들은 김부겸에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았죠.
결국 김부겸이 자신의 책 제목을 '나는 민주당이다'라고 붙일 정도로 노력을 했지만, 그래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시선뿐이었습니다.
마침내 김부겸이 2012년 안정적인 지역구인 경기도 군포시를 떠나 대구 수성구갑에 출마를 하게 되면서, 이런 시선들이 사라지게 되었죠.
더 민주당(과거의 열린우리당) 일부 추종자들에게는 아마도 '순혈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순혈의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네요.
* 김부겸 지지율 김문수를 앞서지만
대구 지역 선거에 나선 김부겸은 2번 낙선하게 됩니다.
제 19대 총선(2012년)과 대구광역시장 선거(2014년)에 연달아 떨어졌지만, 득표율 40% 이상을 보이면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올해(2016년) 총선으로 3번째 도전에 나섰는데, 현재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김부겸 김문수 여론조사).
김부겸 지지율 40.9%
김문수 지지율 29.2%
(한길리서치, 95% 신뢰수준에 ±4.4%P 오차로, 응답률은 16.2%(표본크기 500명))
하지만 이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은 29.4%로 나타납니다(김부겸 여론조사).
대부분의 지역 여론 조사에서 김부겸이 김문수를 약 10% 앞서고 있지만, 관건은 바로 부동층입니다. 20~30%에 달하는 부동층의 향방(숨겨진 표심)이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죠.
* 김부겸 탈당 경고(김부겸 홍의락 사건)
참고로 김부겸은 최근에 탈당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더민주당에서 홍의락을 컷오프(공천 배제)시켰기 때문이죠.
(참고로 홍의락은 영남권 유일의 더민주당 현역 국회의원(비례대표)이고, 대구 북구을 출마 예정자임)
김부겸: "홍의락 의원은 험지 중 험지라는 대구에 출마한 예비후보이다. 그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한 우리 당의 소중한 자산이다. (중략) 그랬던 (홍의락) 후보를 당에서 공천 배제 한다고 하니, 대구 지역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더민주당은 대구를 진작 포기하는 것이냐?'라고 한다."
김부겸: "(당 지도부는) 면밀했어야 할 판단과정에 놓친 점이 있었다고 홍의락 의원에게 사과해 달라. (중략) 부디 저의 요청을 진지하게 들어 달라. (만약) 저의 요청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저 역시 중대결심을 할 수밖에 없음을 눈물로 호소 드린다."(2월 26일 김부겸 기자회견)(김부겸 홍의락)
결국 더민주당이 홍의락를 컷오프시켰고, 홍의락은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합니다. 이에 김부겸 역시 격분해서 더민주당 지도부에 '철회'를 요구한 것이죠.
(김부겸 탈당 시사한 이유)
아무튼 이런 복잡한 상황속에서 그 어느때보다 대구에서 김부겸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데,
만약 김부겸이 실제로 당선이 된다면 문제가 생길 것 같네요.
김부겸 윤세인에 대한 이야기가 3편으로 이어집니다. (3편 새창보기,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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