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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결혼 생활

주병진 재산 사업 매각 대금 270억원으로

(2/3) 총 3개의 글중 두번째 글


주병진 재산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알려진 때가 1번 있었습니다.

바로 주병진 사업 매각 대금을 받을 때였죠.


주병진 사업 성공 이유와 더불어, 사업 매각 후에 그가 어떤 진로를 잡았는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네요.


주병진에 대한 이야기가 1편에서 이어집니다. (1편 새창보기 1/3)

주병진 이경규 노사연 관계, 과거 데뷔시켜준


(스폰서 링크)


# 목차

* 주병진 사업에 대한 재능

* 주병진 사업 성공 이유

* 주병진 속옷브랜드 광고 전략

* 주병진 광고의 원천

* 주병진 재산(재력) 매각 대금 270억원으로

* 주병진 좋은사람들 매각 이후의 행보



유라준의 특별한 이야기


* 주병진 사업에 대한 재능


주병진: "처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서 카페를 열었는데, 결국 6개월만에 모든 빚을 갚게 되었다."


주병진: "(1990년에) '제임스딘'이라는 이름으로 의류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91년에 '속옷도 패션이 될 수 있다'라는 생각에 '보디가드'(남성 속옷)을 출시했다."


주병진: "당시 업계를 주름잡는 언더웨어(속옷) 회사는 쌍방울 태창 BYC 등 단 3개였다. 그래서 한 두 장만 팔아도 업계 4위인 거다."


주병진: "당시에 포장이 모두 사각형인데, 나는 원통형 포장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진열을 하면 (원통형이기 때문에) 바닥에 떨어지니까 가게 주인들이 판매 거부를 하려고 하더라."


주병진: "포기를 하려고 생각했는데, 어떤 조그마한 중소 언더웨어 회사 영업부 직원들이 같이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당시에 남성 전용 브랜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이 여성을 겨냥한 꽃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속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병진 사업 성공 이유


주병진: "결국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물건을 만들었더니 (영업부 직원들이 ) 이틀 만에 다 팔고 수금까지 해왔더라. 이 사람들이 도대체 정체가 뭘까, 이해를 못하겠더라."


주병진: "하지만 이 친구들을 믿을만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에 돈(회사 자금)을 만들기 위하여 야간 업소를 뛰었다. 서울보다 지방이 1.5배를 더 주기 때문에 주로 지방을 돌면서 행사를 해서 자금을 모았다. 안양 평택을 돌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2시였고, 아침 9시에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이렇게 주병진은 속옷회사의 발판을 다지게 됩니다.

주병진이 성공한 데는 먼저 좋은 인재들이 주변에 모여들었고,

또한 주병진 역시 그들을 신뢰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 주병진 속옷브랜드 광고 전략


그리고 주병진은 기상천외한 광고 전략으로 큰 주목을 끌게 됩니다.


- (신문의 지면광고에 출연해서) 1995년 2월 21일에 옷을 벗겠습니다.


(2월 21일 신문광고에서) 실제로 겉옷을 모두 벗고 속옷차림으로 광고에 출연함.

그러면서 다시 광고를 함

- 2월 24일에는 속옷까지 모두 벗겠습니다.



이 광고가 나간 다음에 상당히 큰 논란이 벌어지게 됩니다.


주병진: "경찰에서 (올 누드) 광고가 나가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전화가 왔다. 또한 광고 선정성이 짙다는 이유로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주병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선정성, 호기심 덕에 광고 효과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주병진 속옷 광고


그리고 실제로 2월 24일에 주병진의 올누드 광고가 나가는데, 누드상태의 주병진이 본인의 돌사진으로 중요 부위를 가린 광고였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주병진의 기상천외한 광고 전략을 웃음으로 넘겼고, 주병진은 큰 광고 효과를 보게 됩니다.



주병진: "그날만 속옷 브랜드 전문점 100개 이상을 모집할 수 있었다."



* 주병진 광고의 원천


사실 주병진의 광고는 다른 나라의 광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1994년 프랑스 선거에서 모 정당이 사용했던 홍보 비법이었죠.


- (1단계) 미모의 여성 모델이 날짜를 정해놓고 한번에 하나씩 옷을 벗겠다고 광고함


- (2단계) 실제로 상의를 완전히 탈의한 사진을 보여주고, 다음에는 전라 사진이 등장한다고 예고함


- (3단계) 마지막으로 여성 모델의 전라 누드가 등장하는데, 뒷모습만 '전라'로 보여줌



주병진의 광고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나라의 기발한 소식을 빠르게 접했던 것'과 더불어

'그것을 한국 사정에 맞게 잘 변환'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이후 주병진은 사업가로 전념하게 되는데,

2000년 '주병진 꽃뱀 사건(주병진 성폭행 누명)'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은 밑에서 추가 설명)



* 주병진 재산(재력) 매각 대금 270억원으로


주병진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벌이는 와중에, 그리고 나중에 누명을 벗은 다음에도 계속 사업에 전념합니다.


결국 그의 사업체는 한때 매출액 1600억원까지 달성합니다.


주병진: "속옷사업을 하면서 연 매출 1600억원까지 도달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람이 꿈만 같았다. 내가 목표했던 게 이뤄지고, 또 그 과정을 달리고 있고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었는가. 그래서 더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다."


그러다가 주병진은 2008년 6월 자신이 보유했던 (주)좋은사람들의 주식 30%와 경영권을 이스트스타어패럴에게 270억원에 매도합니다.



* 주병진 좋은사람들 매각 이후의 행보


현재는 서울 홍대에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2년 전부터 복귀를 준비하며 담배를 끊고 운동


주병진: "(주)좋은사람들은 더 이상 개인의 아이디어와 크리에이티브로 키워 가기에는 어려운 회사가 되었다. 더 큰 성장,세계 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시스템화한 경영이 필요했다."


사실 주병진은 2007년에 개성공장에도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힌 것 같습니다. 규모가 커지게 되면 회사는 CEO의 개인 능력보다는 시스템이 더 중요해지게 되니까요.


아무튼 주병진 재산(재력)은 이때의 매각 대금 270억원외에 그동안 벌었던 돈을 합치면 500억원 이상은 될 것 같네요.



이후 주병진은 서울 홍대에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면서 연예계 컴백을 합니다.


그런데 2011년 12월부터 시자된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시청률 부진으로 결국 조기종영이 되고 말았고, 이후 근대가요사 방자전, 개밥 주는 남자 등에 출연하게 됩니다.


주병진에 대한 이야기가 3편으로 이어집니다. (3편 새창보기, 3/3)

주병진 꽃뱀 강민지 사진 근황,주병진 결혼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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