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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 김현주 러브스토리 및 인생이야기

이운재는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중의 한명입니다.

하지만 그의 골키퍼 발탁에 대해서 대중들은 여전히 많은 오해를 하고 있죠.


이운재와 아내 김현주와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이운재를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음과 동시에, 박주영, 기성용 문제와 비교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운재 김현주 부부 사진


골키퍼 출신의 축구코치 이운재는 1973년 4월 26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납니다(이운재 고향). 올해 42살이죠(이운재 나이).

(이운재 종교 기독교)

(이운재 학력 학벌) 청주청남초등학교, 대성중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이운재 프로필 및 경력)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로 국제무대 데뷔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국가대표 등을 거칩니다.


또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남 드래곤즈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활약과 달리 이운재는 큰 잘못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밑에서 추가 설명)



이운재 부인 김현주는 지난 1994년 6월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이운재: "당시 미국 월드컵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우연히 친구의 여자친구와 함께 자리했던 집사람을 만났는데, 처음부터 끌렸다. 이후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데이트를 즐겼다."


첫눈에 반했던 모양이네요. 그렇게 연애를 하던 두 사람은 1998년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실 1998년은 이운재가 매우 힘들어 하던 때였죠.


이운재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독일과의 경기에서 갑자기 등장합니다(실제 A매치 데뷔전은 그해 미국과의 친선경기였는데, 주로 대표팀 후보 골키퍼였음). 당시 대표팀 수문장이었던 최인영이 부진한 실력을 보이자(전반전에만 3실점), 당시 감독이었던 김호가 후반전때 과감하게 신인인 이운재를 발탁했고, 이운재는 후반전을 무실점으로 선방하게 됩니다(경기는 결국 3-2로 한국팀의 패배).


이렇게 대표팀의 젊은 피로 각광받던 이운재였지만, 1996년 무리한 다이어트가 결핵을 부르면서 약 2년동안 앓게 됩니다. 결국 프랑스 월드컵의 수문장 자리는 김병지에게 넘어가게 되었죠.

김현주는 이런 어려운 시기에 이운재의 옆을 지키면서 그가 재기에 성공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후 두 사람은 딸 2명과 아들 1명을 낳습니다(이운재 배우자, 이운재 자녀 자식, 이운재 딸).


이운재 가족 사진


이운재 은퇴식때 가족과 함께


그런데 이운재가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의 주전 자리로 발탁되는 사연이 재미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병지가 주전으로 발탁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01년 1월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김병지가 무리하게 공을 몰고 가다가 상대 공격수에게 공을 빼앗기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골키퍼로서 있을 수 없는 잘못을 한 것이죠.


그래서 대중들은 이때문에 거스 히딩크 감독이 김병지 대신에 이운재를 주전으로 발탁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릅니다.


히딩크: "그 사건 이후에 김병지는 성실한 자세를 보여서 다시 대표팀으로 발탁했다."(거스 히딩크 자서전)


히딩크: "월드컵 직전까지 김병지와 이운재의 실력이 비슷하여 월드컵 직전까지는 번갈아 기용하여 서로 경쟁시켰다. 다만 월드컵 첫경기인 폴란드전에서 이운재의 컨디션이 미세히 앞서서 그를 기용하였고, 이후 상태가 좋아 계속 기용하게 된 것 뿐이다."



실제로 김병지는 2001년 11월에 다시 대표팀으로 발탁이 되어서 평가전에 출전합니다. 김병지와 이운재는 마지막 순간까지 피말리는 경쟁을 했고, 이는 두 선수 모두 최고의 기량과 컨디션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즉, 이운재는 상대방의 실수로 대표팀 수문장이 된 것이 아니라, 둘다 최후까지 경쟁을 하다가 더 나은 컨디션과 기량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죠.)


그런 경쟁 체제를 만든 히딩크는 두 사람중에 약간 더 나은 이운재를 최종 발탁했고, 결국 이운재는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며 히딩크와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게 됩니다.(아마 김병지를 발탁했어도 이운재 못지 않는 활약을 했을 것 같네요.)


사실 히딩크는 골키퍼 자리뿐만 아니라 모든 포지션에 이렇게 경쟁 체제를 도입했고, 당시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최고 기량을 발휘했어야 했죠. 어디에게 지연이나 학연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죠.



그런데 거스 히딩크 이후에 한국 국가대표팀은 다시 지연과 학연의 구습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일례로 박주영을 발탁한 홍명보의 선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박주영은 클럽 무대에서도 뛰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기 감각이 형편없게 다운된 상태죠.

그런데 홍명보는 왜 박주영을 선택한 걸까요?



홍명보는 일반 사람들이 당연시 생각하는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며 박주영에게 손을 내밀었죠.


설령 이번 2014년 박주영이 반짝 활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축구 국가대표팀에 '공정'과 '경쟁'이라는 말이 사라질까 두렵네요.



다시 이운재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운재는 2007년 큰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아시안컵 대표팀으로 출전했다가 음주파동을 일으킨 것이죠.


당시 사건 개요 - 대회 도중 이운재가 이동국, 김상식, 우성용과 더불어 술을 마시러 숙소를 벗어남



결국 당시 이운재는 엄청난 비판을 받으면서 축구협회의 징계를 받습니다. 

1년간 A매치 출장 정지를 받는 중징계였죠.


이에 이운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를 하고 스스로 잘못을 뉘우칩니다.

그리고 이듬해(2008년)에는 K리그 MVP를 수상할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되죠.(골키퍼 사상 최초의 K리그 MVP였고, 최고령 MVP라는 기록도 같이 세움)


즉,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잘못을 했으면 따끔하게 벌을 받고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면, 전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죠. 그래서 이운재의 예전 잘못으로 다시 그를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기성용은 너무나도 좋은 백(아버지가 기영옥, 광주광역시 축구협회 회장)을 두고 있기 때문일까요.

잘못을 저질러도 전혀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가히 신의 아들 클라스네요.


기성용의 죄과들

- 팬 우롱 사건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지'

- 일본전에서 페널티킥 득점 이후 인종차별 원숭이 세레머니

- 욱일승천기에 대한 공개적인 거짓말

- 선민 의식 '우리(해외파)를 건들지 말았어야 됐고 다음부턴 그 오만한 모습 보이지 않길 바란다. 그러다 다친다.'

- 페이스북 최강희 감독 조롱 사건


기성용 원숭이 세레머니 사건(인종차별적인 행동)


기성용 왼손 경례 사건


기성용의 잘못중에 큰 것만 뽑아도 이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축협은 단지 최강희 비방 사건에 대해서만 '무징계 엄중경고' 조치를 내릴 뿐입니다. 어떤 징계도 없었죠.


이운재와 기성용의 차이는 단지 권력 있는 아버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정신 상태이기 때문일까요, 며칠 전에는 애국가가 나오는데 왼손 경례를 하기까지 합니다.

기성용이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을때, 제대로 벌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2002년의 국가 대표팀은 거스 히딩크의 지휘 아래 '공정'과 '경쟁'이라는 키워드로 최선을 다했다면, 2014년에는 지연에 의한 '발탁'과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신의 아들'에 대한 축협의 봐주기만 있을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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