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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조수미 러브스토리 및 인생이야기

홍명보는 참 특이한 인물입니다.

원래 수비수는 인기가 별로 없는데 그만은 슈퍼스타가 되었고, 성격이 강직하며 자기 관리가 철저한데, 인맥축구로 욕을 먹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실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기도 하죠.


그외에 홍명보와 아내 조수미와의 첫만남과 연애 시절, 결혼 생활이 재미있네요. 다만 홍명보의 책임감이 클수록, 아내 조수미는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홍명보 조수미 부부 사진


축구감독 홍명보는 1969년 2월 12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홍명보 고향).

올해 46살이죠(홍명보 나이).

(홍명보 종교 불교) (홍명보가 나중에 기독교(개신교)로 개종한 것 같습니다.)

(홍명보 학력 학벌) 광장초등학교, 광희중학교, 동북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홍명보 프로필 및 경력)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 입단하면서 프로 무대에 데뷔


1990 제14회 이탈리아 월드컵 국가대표

1994 제15회 미국 월드컵 국가대표

1997 ~ 1998 벨마레 히라쓰카 (일본)

1998 제16회 프랑스 월드컵 국가대표

1999 ~ 2002 일본 J리그 가시와 레이솔

2002 포항 스틸러스

2002 제17회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2 대한축구협회 이사

2003 ~ 2004.10 LA 갤럭시 (미국)

2005.09 ~ 2006.06 제18회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팀 코치

2006.07 ~ 2007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09.10 ~ 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3.06 ~ 현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고려대 재학시절 평범한 선수였지만, 당시 남대식 감독에 의해 스위퍼 재능이 발굴되면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후 국가대표팀과 여러 클럽 축구에서 활약을 했고, 은퇴 후에는 각급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 엘리트 코스를 밟습니다.



홍명보의 실제 성격은 조용하지만, 카리스마가 대단합니다.

일례로 홍명보는 일본 축구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출신 주장이 되기도 합니다.


홍명보: "우리 팀에는 실력 있고 유명한 외국 선수들이 많았어요. 대표적인 선수가 스토이코비치 선수와 카레카 선수였죠. 그 선수들에 비하면 저는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죠. 물론 잘하는 일본 선수들도 많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주장으로 선임한 것은 훈련자세와 경기에 임하는 태도, 동료들과의 친화력을 높이 인정해서였다고 나중에 니시노 감독이 그러더군요."


한일 감정이 있고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일본이었는데도, 홍명보는 일본 팬들과 구단 관계자는 물론이고, 일본 축구계로부터 인정을 받습니다. 그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실력, 동료들과의 친화력 덕분이었죠.


물론 일본이기에 홍명보가 더 열심히 한 것도 있습니다.



홍명보: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욕을 먹으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열심히 하다보니까 일본 선수들도 나를 받아들였고, 잘해주더라고요. 외국 선수가 잘하면 뒤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앞에서는 잘해주는 게 일본 스타일이잖아요."


이렇게 외국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본인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공정하지 않으면 안되죠. 아마 일본 선수들은 물론이고 당시의 외국 선수들에게 모두 잘해주었기에, 모두의 존경받는 주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홍명보는 이런 지도력을 일찍부터 발휘했는데,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이후에는 '홍명보 인맥축구, 홍명보 의리 축구'라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 형평성을 잃고 스스로 정한 원칙을 훼손했기 때문이죠.


원래 홍명보가 감독이 된 후에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우선하겠다'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거의 없는 선수들을 선발합니다.


그리고 인맥과 의리에 치중하게 됩니다. 23명의 선발 인원중 런던올림픽에서 함께 한 인원이 12명이나 되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주영을 선발하면서 스스로 정한 원칙을 완전히 내팽개칩니다.



혹자는 국가대표팀 감독이 모든 권한을 갖고 선수 선발을 하고, 또 그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그동안 축협의 파벌싸움이 이런 형태로 진행되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고려대와 연세대 파벌싸움이 유명한데, 고려대 감독이 선임되면 연세대 출신 선수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일반 국민들과 두 학교 출신이 아닌 선수들이었고요.


아직 한국 축구 시스템은 후진적입니다.

각 포지션별로 선수들끼리 정당하게 경쟁을 시키고, 그 결과로 선수를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큰 권한을 가진 곳은 기술위원회가 되어야 하죠.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에, 한국에서는 그냥 감독에게 모든 권한을 주어 버립니다.

이번 홍명보의 선수 인선은 그동안 한국 축구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홍명보 자신이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스스로는 다른 방법을 모를지도 모릅니다.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정당한 경쟁을 통해서 선수가 선발되는 시스템이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홍명보는 감정 표현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홍명보의 '감정 퍼레이드 사진'을 보면 4강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얼굴들이네요.



이런 홍명보이지만 아내 조수미를 만났을 때는 먼저 대시를 하게 됩니다(홍명보 연애시절)(성악가 소프라노 조수미와는 동명이인임. 조수미는 1962년생으로 올해 53살이지만, 아직 미혼입니다. 뭐, 음악과 결혼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조수미: "94년 월드컵을 앞둔 시기였을 거예요. 명보씨가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왔을 때였죠. 제가 아는 분께서 ‘한국대표팀이 LA에서 친선경기를 하는데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명보씨를 잘 알고 계시다고 하시면서 말이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따라나섰어요. 그때 운동장에서 처음 소개받았어요."


홍명보 아내 조수미는 원래 재미교포로 당시 UCLA 대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었습니다(홍명보 부인 조수미 직업). 나이는 홍명보보다 4살 연하였죠.

당시 홍명보는 대표팀의 젊은 수비수였고, 94년 월드컵을 몇달 앞두고 미국에서 전지훈련 겸 평가전을 하고 있을 때였죠.


홍명보: "처음 집사람을 보는 순간 첫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바로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때는 월드컵 준비중이어서 바빴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마음에만 두고 운동에 전념했어요. 모든 걸 월드컵 이후로 일단 미루었죠."



조수미: "처음 명보씨를 만났을 때는 갓 대학에 들어간 때라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어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만난 후에 한참동안 잊고 살았죠. 그런데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잘 지내?’ 이러면서요. 뜻밖의 전화여서 처음에는 당황했죠. 워낙 무뚝뚝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몇 마디 안하고 그냥 끊더라고요."


홍명보 아내 사진



하지만 이것은 홍명보의 작전이었네요.

홍명보: "모두 다 작전이었어요. 여자는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름대로 했었거든요. 그래서 가끔 한번씩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던 거예요."


그리고 한국 국가대표팀은 94년 미국월드컵때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지만, 16강 진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월드컵이 끝난 후 홍명보는 본격적으로 조수미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국제전화 통화료가 월 백만원 정도였다고 하니, 정말 대단했네요. 하긴 당시 국제 전화비가 좀 비싸긴 했죠.


조수미: "95년이었을 거예요. 느닷없이 ‘된장찌개 만들 줄 알아?’ 이러면서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자기한테 시집오라고 하더군요. 미국생활을 오래해서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한참을 생각한 다음에야 그 얘기가 결혼하자는 얘기라는 것을 알았어요. 정말 무드 없죠. 남들은 예쁘게도 프로포즈하고 그런다는데…."


홍명보 부인 사진


홍명보가 좀 무뚝뚝하긴 하죠.

그래도 조수미는 기뻤을 것 같네요.

그렇게 장거리 연애를 하던 두 사람은 1997년 3월 결혼식을 올립니다(홍명보 배우자 조수미).


이후 홍명보 조수미 부부는 아들만 2명 낳습니다. (이름은 홍성민, 홍정민) (홍명보 자녀 자식)



홍명보 가족 사진


둘은 맨처음 한국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2개월 후에 홍명보가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면서 일본 생활을 시작합니다.


조수미: "운동선수는 집에서의 뒷바라지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어요. 살림을 안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다행히 어머님께서 많이 도와 주셨죠. 만약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명보씨 불만이 만만치 않았을 거예요."


조수미: "(일본에서) 명보씨가 원정시합을 가면 저는 매일 집안에만 있었어요. 말도 안 통했지만 갈 곳도 없었죠. 집에서 음악 듣고 책 보고 집안 청소하는 일의 반복이었어요. 정말 외로웠죠. 아는 사람도 없을 때였고요."


사실 조수미에게 한국도 낯설지만, 일본은 더 낯선 외국이었죠.

우을증이 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네요.

하지만 그런 어려움과 외로움을 잘 견디며 남편을 내조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홍명보는 무척 책임감이 강한 성격입니다.

그래서 팀동료들이나 일반 대중들중에서 그를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죠. 다만 함께 생활하는 아내 조수미로서는 좀 서운한 점도 많았을 것 같네요.


조수미: "남편은 극장에 1년에 딱 한번만 가거나, 백화점에 가도 따로따로 다녀요.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그렇죠."


게다가 조수미는 첫아이를 유산으로 잃기도 하고, 그 다음 임신했을 때 길거리에서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팀 관계자가 홍명보에게 즉시 병원에 가라고 권유하지만, 홍명보는 경기를 다 치른 다음에 병원에 나타납니다.

홍명보의 책임감은 대단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좀 서운한 면이 있을 것 같네요.

(한때 홍명보 이혼 등의 루머가 퍼지기도 했는데, 이는 사실무근임)

홍명보: "아내가 첫아이 가졌을 때 많이 고생했어요. 입덧을 너무 심하게 해서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죠. 정말 미안했어요. 나중에는 저까지 같이 입덧을 하게 되더라고요. 밖에서는 인정받으면서 생활했지만 집에서는 0점 짜리 가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홍명보는 책임감이 강하기에 그만큼 더 외로운 길을 걷지 않았나 합니다. 그리고 그런 남편을 내조하기 위하여 아내 역시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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