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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윤 아내(부인)줄리아윤- 미국에서 성공이유

자니윤 줄리아윤 러브스토리

왕년의 토크쇼 진행자였던 자니 윤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크게 갈립니다. 그의 삶의 궤적과 사고방식이 일방적으로 찬양받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일방적으로 비판받을 수도 없는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죠.

 

다만 과거에 그가 쌓은 업적을 제대로 살펴보고, 자니윤이라는 사람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며, 그가 우리에게 해준 조언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자니윤과 부인 줄리아윤 사진

 

한국인들에게 자니윤은 그냥 자니윤 토크쇼의 진행자,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코미디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소수민족 출신들은 미국 주류 사회, 특히 연예계에서 성공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니윤은 어떻게 미국에서 성공한 것일까요?

 

자니윤(본명 윤종승)1936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79살이죠.

(자니윤 학력 학벌) 성동고등학교, 웨슬리언대학교 성악과 학사

(자니윤 프로필 및 경력) 1973년 뉴욕시의 AVA(American Variety Artists)에서 주는 '최고 연예인상'을 수상

미국의 유명 토크쇼 주니 카슨쇼에 34회 출연(게스트중 역대 두번째로 많은 출연 횟수)

'러브보트', '매쉬' 등의 TV드라마에 출연

영화 They call me Bruce, They still call me Bruce 등의 영화에 주연과 제작을 맡음

 

그외에 동양인 최초로 미국의 '투나잇 쇼'에 출연했고, NBC에서 '자니윤 스페셜쇼'를 진행했습니다. 

(한국 연예계) 자니윤 쇼 진행(198938~ 199045일, 한국 최초의 진행자 이름을 건 정통 토크쇼)

자니윤 이야기쇼(199112~ 1992) 등을 진행

 

이런 방송 활동외에 쟈쉬 프리미움 아웃렛이라는 회사에서 중역(CMO)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쟈니윤의 인생은 파란만장합니다. 원래 해군에 복무하던중인 1959년 유학시험을 통해서 미해군사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다음에 귀국합니다.

미국 생활을 동경한 자니윤은 제대후 1968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웨슬리안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며 대학 졸업후 2년간 뉴욕의 리스트라스버그 액팅 스쿨에서 연기,루이지 재즈 스튜디오에서 춤과 모던재즈를 공부하다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다만 성악을 공부했던 자니윤은 오페라 가수로 활동을 조금 하다가, 나중에는 코미디언으로 전업합니다. 그의 정통 클래식이 미국인들에게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1970년대 초반 자니윤은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완성시킵니다. 바로 성악을 하면서 무술(태권도)을 하는 동양인 캐릭터죠.

마침 쿵후로 미국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이소룡이 1973년에 사망하게 되면서, 자니윤의 캐릭터는 더 크게 각광받게 됩니다.

(영화 그들은 나를 브루스라고 불렀다(They call me Bruce)는 그런 배경에서 나온 영화죠.)

 

일각에서는 자니윤을 단순히 브루스리(이소룡)의 아류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자니윤은 분명 태권도라는 다른 무술과 성악이라는 독창성을 가미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담 역시 미국인들의 정서에 잘 맞았죠.

(이 점은 밑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한 미국의 유명 토크쇼 주니 카슨쇼에 출연하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게 됩니다.

다만 일회 출연료가 2800만원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거의 후반기때의 일이고, 초창기때는 750달러 정도였습니다.

(, 거짓말은 아니죠. 사람은 항상 가장 화려했던 시절만을 말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렇게 자니윤은 1970년에 미국 주류 사회에 먹히는 캐릭터를 구축했고,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으며, 토크쇼를 비롯하여 영화와 라스베가스 공연쪽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힙니다.

 

 

그리고 이런 미국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한국으로도 진출합니다.

다만 청년기, 장년기를 미국에서 보냈기에, 자니윤은 미국식 유머(정치 풍자와 성적인 이야기)를 선보였고, 이것은 한국 사회에는 별로 먹히지 않습니다. 정치 풍자는 당시 권력층으로부터, 성적인 이야기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게 되죠.

 

쟈니윤: "외국에서는 성적인 이야기나 정치를 소재로한 이야기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나는 정치, 섹시 코미디를 즐겼는데 한국 정서에는 익숙치않아 제재를 많이 받았다. 내가 개그를 하면 제작진들은 시말서를 써야 했다."

 

자니윤: "열심히 방송을 해도 편집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방송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당시 한국에서 방송된 내용은 편집이 되어서 존재하지 않고, 자니윤이 미국에서 풍자했던 내용은 몇몇 개가 남아 있습니다.

 

자니윤: "미국에선 정치인이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는데, 한국에선 정치인이 죄를 지으면 미국으로 온다!"

(당시 한국 정치인들이 미국으로 도망치는 상황을 빗대어 풍자함)

결국 이 일로 자니윤은 청와대로부터 전화까지 받게 됩니다.

 

 

어쨌든 코미디언의 정치 풍자의 자유를 외치는 자니윤이지만, 정치적 이념은 좀 보수적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네요.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많은 돈을 벌었던 자니윤은 각종 스캔들과 루머를 몰고 다닙니다. 원래 오페라 가수와 결혼도 한번 하지만 곧 이혼을 하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죠(전처와 자니윤 사이에 아들이나 딸 등의 자녀는 없었음, 자니윤 전부인)(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미국에서는 결혼 1년 후 서류를 제출하면 결혼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두번째 결혼이 서류상으로 초혼이 됨)

   

그러다가 라스베가스 파티에서 현재의 부인 줄리아 리를 만나게 됩니다.(나중에 결혼 후에 줄리아 윤으로 성이 변경됨)

 

줄리아윤: "미국에서 섬유회사를 운영할 당시 섬유 박람회에 참여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했다가 한 파티장에서 자니윤을 만났다."

 

줄리아윤: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난 전혀 몰라봤다. 자니윤이 와인 한 잔을 하자고 했는데 난 게임 중 돈을 잃었다고 핑계대고 인사만 한 뒤 빠져나왔다. 첫인상이 너무 못생겼더라. 코도 너무 이상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당시 줄리아 윤은 LA의 한인타운에서 이브자리라는 이불가게를 하고 있었고, 전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습니다.

(자니윤 아내 직업, 줄리아윤은 자니윤보다 18살 연하 아내)

 

그런데 자니윤은 첫눈에 줄리아에게 반한 상태였고, 둘은 연말 파티때 다시 만나게 됩니다.

 

줄리아윤: "연말파티에서 친구가 별 생각 없이 자니윤에게 '줄리아를 위해 노래 한 곡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자니윤이 무대에 올라 부른 노래가 나훈아의 '사랑'이다. 다음 날 신문에 '자니윤 결혼할 여자 있다'고 기사들이 쏟아졌다. 정말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줄리아가 마음에 든 자니윤이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고백을 했고, 그것이 다음날 기사화가 된 것이죠.

그전까지 연인관계가 아니었던 두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사귀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1999년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자니윤의 나이는 64, 줄리아윤의 나이는 46살이었죠.(둘다 재혼이었음)

현재 둘 사이에 자녀(자식)은 없습니다. 너무 늦은 나이에 결혼했기 때문이죠.

 

 

자니윤의 미국 대저택 공개, (현재 사는 동네는 Rowland Heights CA) (자니윤 저택 집안 공개)

 

아마 60살이 넘은 다음에 자니윤 역시 한곳에 정착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도 젊은 시절의 버릇을 고치지 못하네요.

 

줄리아윤: "나는 귀가 굉장히 밝다. 하루는 2층에 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라. 평소에는 신경을 잘 안 쓰는데 그날따라 전화벨 소리가 신경이 쓰였다.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남편이 '지금은 안 돼. 이따가 전화해'라고 말했다. 1층으로 내려갔는데 이미 전화를 끊은 상태였다. 전화를 뺏어 재발신을 했더니 여자가 받았다."

 

줄리아윤: "'무슨 일로 전화하셨냐'고 묻자 그 쪽에서 '놀고 있네'라고 답했다. 너무 화가 나서 남편에게 물었더니 '15년 전에 알던 여자인데 처음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더 화가 나는 게 처음 전화가 왔다고 했지만 처음 전화를 받은 어조는 아니었다. 처음 전화를 했으면 '누구세요'라고 해야 하는데 '지금은 안 돼'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둘은 3주간 별거를 하게 됩니다.

물론 자니윤 역시 해명을 합니다.

자니윤: "그 여자는 15년 전에 나랑 일을 한 여자다.

비즈니스에 있던 사람인데 일 해달라고 전화가 왔었다."

 

그런데 줄리아윤의 말처럼 당시 전화를 받던 자니윤의 말투나, 이후 상대 여자의 반응으로 보아서는 자니윤의 해명보다는 줄리아윤의 의심이 좀 더 합리적인 거 같네요.

자니윤 역시 그 당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는지, 혈서까지 쓰면서 부인의 용서를 구합니다.

 

자니윤: "혈서는 동생네 집에서 자면서 썼다."

 

 

이렇게 자니윤은 일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배우자를 배신하는 등, 사생활면에서는 모범이라고 보기 어려운 거 같습니다.

다만 자니윤이 했던 말 "미국에선 코미디언이 대통령을 소재로 그 실명을 들어 코미디를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정치풍자 코미디가 대단히 인기다."는 말은 귀기울 필요가 있는 거 같습니다.

 

TV의 개그맨조차 마음놓고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비판하게 되면, 권력자들은 더더욱 나쁜 짓을 못하게 되니까요(공공의 이익).

   

다만 그렇게 코미디언의 정치 풍자의 자유를 외치는 자니윤이지만, 정치적인 이념은 보수적이고, 현재 한국 사회의 언론의 자유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은 굉장히 이율배반적이 아닐 수 없네요.

 

 

아마 자니윤은 공공의 이익(정치 권력에 대한 견제)보다는 자기 밥벌이(정치 풍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미워하는 거 같습니다.

뭐,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외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죠.

 

여담으로 자니윤이 얼마 전에 50년만에 대한민국 국적 회복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마 이중국적같네요. 원래 65세 이상 노인 교포들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는 법률이 있으니까요.

이런 부분은 언론이 좀 제대로 전달했으면 하네요.

언론의 자유를 외치기 전에, 사실 전달이라는 본연의 임무부터 제대로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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