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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경 안현수 파벌 평가와 전이경 남편 의사와 결혼

전이경 안현수 파벌 평가

전이경은 예전 쇼트트랙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존재입니다. 비록 후에 진선유가 나타났고 현재 심석희가 그 명칭을 잇고 있지만, 김동성과 더불어 한국 쇼트트랙계의 전성기를 열었던 전설같은 존재죠.

 

그런데 그런 전이경은 현재 안현수 사태를 좀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네요. 비록 그녀의 말에 옳은 바가 없지 않지만, 아쉬운 대목도 많습니다.

 

 

쇼트트랙 선수 전이경은 197616일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습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39살이죠.

(전이경 학력 학벌) 숭의초등학교, 신반포중학교, 배화여자고등학교(배화여고),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연세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전이경 프로필 및 수상 경력)

1988년 초등학교 6학년 국가대표로 선발됩니다. 당시 최연소였고, 전이경의 천재성을 일찍부터 보여준 일화인 동시에, 당시 우리나라 빙상계의 저변이 얼마나 미약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후 1994년 릴레함메르 1000미터와 30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2관왕에 등극합니다. 그리고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다시 1000미터와 3000미터 계주 금메달, 500미터 동메달을 획득합니다.

역대 쇼트트랙 최고선수 중의 한명입니다.

 

(일각에서는 전이경을 진선유보다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진선유가 토리노 올림픽 3관왕의 업적을 달성했다면, 전이경은 2회 대회 연속 2관왕의 위업을 달성합니다. 게다가 전이경의 주종목인 1500미터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전의 결과였죠. 아마 1500미터가 좀 더 빨리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 같네요.)

 

 

참고로 전이경은 나가노 올림픽때 발내밀기 신공(?)을 사용해서 금메달을 땁니다. 정말 대단한 근성이었죠.

 

전이경 발내밀기 동영상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여자 1000m 결승 A 전이경 선수 .

 

당시 중국의 양양A1위로 달리고 있었고, 한국의 원혜경 선수가 양양A와 엎치락뒤치락 거렸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전이경이 스퍼트를 내고, 결승전 통과할 때 발을 내밀었죠. 이때 1등으로 통과했다고 믿었던 양양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김동성도 그렇고 전이경 역시 대단한 근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래 당시에는 이런 발내밀기(발밀어넣기) 기술을 막는 규정이 없었기에 규칙 위반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후에 스케이트 날이 선채로 밀면 실격이 되도록 규칙이 개정되었죠.

 

 

 

전이경은 금메달 총 4, 동메달 1개를 딴, 당시 한국 선수로는 최다 메달 수상자였습니다.(그후 김수녕이 2000년 시드니 양궁 단체전에 금메달과 개인전에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최다 타이틀을 가져가게 됩니다.)

 

여자 쇼트트랙 1세대의 중심이었고, 쇼트트랙의 여왕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위업입니다. 그외에 1989년부터 1998년까지 올림픽을 포함하여 아시안 게임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전이경이 획득한 메달은 모두 46개였습니다.

 

이런 좋은 성적은 연금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전이경은 연금을 일시불로 수령했는데, 350625000원의 연금을 받은 것이죠(전이경 재산 재력).

 

 

하지만 전이경은 1998년 올림픽 직후의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후, 23살의 어린 나이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당시 부상도 있었지만, 본인이 다른 진로를 모색하기 위하여 은퇴를 결정한 것이죠. 아마 쇼트트랙의 스파르타식 훈련에 길게 할 수는 없는 운동이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결국 진이경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면서 골프선수로의 진로를 모색하게 됩니다.

 

전이경: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골프하시는 것을 보고 줄곧 해보고 싶었다. 지난해 초 처음 취미삼아 골프채를 잡았다가 이젠 아예 프로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전이경은 골프선수로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세미프로 자격을 얻음),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기간 중에 IOC 선수위원 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하고 선수분과위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후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 대한체육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쇼트트랙 코치와 스포츠 해설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전이경은 2010529일 안과의사 박효순과 결혼식을 올립니다(전이경 남편 직업과 이름). 나이는 전이경보다 8살 연상이고, 부산 토박이이죠. 전이경이 성당에 처음 다니기 시작할 때 신랑될 사람이 신앙적인 면에 도움을 주면서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전이경: "평소 무뚝뚝한 부산 사나이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부산 연고의 남자와) 결혼하게 됐다. 좋은 매너와 바쁜 나를 이해해주는 배려심에 반했다."

(전이경 러브스토리)

 

전이경 남편 박효순 결혼 사진(웨딩 화보)

 

 

 

그런 전이경이 이번 안현수 사건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안현수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이다. 역대 쇼트트랙 선수 가운데 제일 잘 탄다."

 

그리고 안현수 귀화사건에서 '안현수는 선()이자 피해자, 빙상경기연맹은 악과 부조리'라는 이분법적 해석을 전이경은 경계합니다.

 

전이경: "2008년 초에 안현수가 다친 상황을 보면 당시 연맹에서 그의 치료나 재활에 무신경했던 면이 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뒤를 받치고 있었고 실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남자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안현수 공백은 크지 않았다."

 

전이경: "예전에는 선수 부모들끼리 친소 관계나 '한국체대-단국대' 정도의 출신을 따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전명규 연맹 부회장이 2002년 올림픽 이후 한국체대로 옮기면서 '한체대-비한체대' 파벌 갈등이 심화되었다."

 

 

, 국가대표 감독을 오래 지낸 전 부회장이 한국체대로 가면서 그가 가진 권력과 파워를 한국체대 출신을 챙기는 데 주로 썼다는 지적과 함께 비한체대파로부터 '공공의 적'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전이경: "다만 전 부회장이 한국체대로 가면서 그 학교에 운동하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고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을 보면 지도자로서 능력이 대단한 분이다."

 

전이경을 굳이 따지자면 비한체대파 출신입니다. 전명규의 반대파에 속해 있던 사람이죠. 그런 사람의 입에서 전명규를 인정하는 발언을 나오니, 나름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전이경의 발언처럼 현재의 사건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죠.

 

(예전 글 한국 쇼트트랙 파벌 문제 정리 - 새창열기)

2014/02/15 - 안현수 사건정리, 빙상연맹 전명규와 혐한 이유

2014/02/18 - 조해리 진선유 안현수 파벌 피해-3가지 다른경우

   

 

다만 전이경의 발언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의식이 숨어 있네요.

전이경: "2008년 초에 안현수가 다친 상황을 보면 당시 연맹에서 그의 치료나 재활에 무신경했던 면이 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뒤를 받치고 있었고 실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도 남자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등 안현수 공백은 크지 않았다."

 

이 발언을 다시 살펴보면, 2010년 벤쿠버 올림픽때 남자 쇼트트랙이 금메달을 땄기에, 당시 부상당했던 안현수는 크게 필요치 않았다는 해석입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부상당한 선수 개개인은 상관없고, 국가적으로 금메달만 따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생각은 전이경뿐만 아니라 한국 쇼트트랙 지도자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좋은 선수들이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일까요? 쇼트트랙 감독들은 선수들을 혹사시켜서 스파르타식 훈련을 강요합니다. 선수 생명이 짧아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성적 지상주의적인 생각과 행동이었죠.

 

남자쪽은 김동성과 안현수가 그렇게 잠깐 빛났다가 은퇴했고, 여자들도 전이경과 진선유가 불과 23살의 어린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됩니다.

(안현수 역시 한국에 계속 머물렀다면, 다시 선수로 활동할 수 없었겠죠. 이런 레전드들의 선수 생명이 너무 짧네요.)

전명규로 상징되는 쇼트트랙 강국의 슬픈 이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상황이 바뀌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선수를 부품처럼 사용하다가 버리지 말고, 또 안현수처럼 부상을 당한 선수도 버리지 말고 잘 치료해서 함께 가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바라는 것이죠.

 

하지만 1990년대에 활약했기 때문일까요? 전이경의 생각은 이런 시대적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네요.

선수 출신이고 본인 역시 어린 나이에 은퇴했던 전이경이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으면 하는 바램은 너무 큰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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