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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커플 러브스토리

남진의 인생이 정말 파란만장하네요. 어렸을 때 큰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았고 젊었을 때는 가수로 데뷔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군대에 입대한뒤 베트남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그리고 윤복희와의 가짜 결혼뒤에 다시 현재의 아내 강정연과 결혼하게 되고, 그러다가 법을 어긴 아내 강정연은 구속되고 맙니다.

정말 책을 써도 열권을 넘게 쓸 수 있을 거 같네요.

 

남진과 딸 사진

 

남진(본명 김남진)1946927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납니다(고향). 올해 나이가 69살이죠.

남진의 아버지 김문옥은 목포일보의 발행인(사장) 겸 목포의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목포 최고의 부자 집안이라고 불릴 정도였죠.

 

(남진 학력) 목포북교초등학교, 경복중학교, 목포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남진 프로필) 1965년 정규 1집 앨범 서울 풀레이 보이를 발표하고 데뷔하지만, 별다른 히트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울려고 내가 왔나가 처음으로 히트하자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고, 1967년 가슴아프게가 대중들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게 됩니다.

또한 동명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서 영화배우로도 활약하게 되고, 그리움은 가슴마다에도 출연해서 큰 인기를 모으게 됩니다. 남진의 원래 꿈이 가수가 아니라 영화배우였었죠.

그러다가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해병 2여단 2대대 5중대 2소대)에 입대해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제대후 재기에 성공했고, 나훈아와 가요계의 쌍벽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라이벌 구도였지만 실질적인 1위는 남진이었고, 음악성은 나훈아가 좀 더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남진은 1976년 가수 윤복희와 결혼을 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불과 37개월만인 197939일 이혼하게 됩니다.(제일 먼저 알려진 기간. 실질적으로는 6개월)

당시 "남진이 윤복희를 내쫓고 폭행했다."는 루머가 돌면서 남진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윤복희가 진실을 고백하죠.

"4~5년 남편(유주용)과 결혼 생활을 하다 75년도에 한국에 들어와 '윤복희 특집쇼'를 하게 됐다.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니 남편이 신문을 들고 공항에 마중나와 있었다. 그 신문에는 한국에서 누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사가 게재돼 있었고 그 주인공이 남진이었다."

(당시 윤복희는 첫번째 남편 유주용(직업 가수)과 결혼한 상태였음)

 

윤복희 젊었을때  리즈 시절 과거 사진

 

윤복희: "(남진의 사랑을) 우리 남편 보라고 이용했다.

고백한 사람의 순정을 이용했다. 사랑한 게 아니니 이용이었다

그분(남진)에게 '미안하다 없던일로 하자'고 한 후 결혼 반지를 돌려주고 집도 다 가지라고 했다. 새벽 4시에 통행금지가 해제되자 집에서 나왔다."

 

, 윤복희는 여전히 유주용을 사랑하고 있었고, 당시 남진을 당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서 당시 남진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윤복희를 이용했다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연약한 여자를 때리냐까지 온갖 욕을 다 먹었죠.

하지만 남진은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비난을 뒤집어 씁니다.

 

 

그리고 윤복희가 무릎팍도사와 나와서 위의 고백을 하자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측근을 통해서 반응을 보입니다.

남진 측근: "남진씨는 워낙 남자답고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라 당시 인기스타로서 리스크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로서 윤복희를 최대한 배려해 줘야 된다 생각하고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지금에 와서 가타부타 말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더욱 수모를 안기는 일일 것이다."

 

어쨌든 남진은 남자다운 모습을 보였네요.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남진과 윤복희는 처음부터 결혼한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이죠.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결혼은 합법적인 결혼이 아니었습니다.

 

 

윤복희: "그런데 오빠 일 문제로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저희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분(남진)이 약혼을 하자며 다이아 반지를 가져왔어요. 그러면 안 됐는데, 제가 그 반지를 받았고 그 자리에서 약혼을 하게 됐죠. 이 소식은 곧장 신문에 보도됐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결혼도 진짜가 아니었어요. 남편이랑 이혼도 안 했는데, 무슨 결혼이요?"

 

윤복희: "나는 유부녀였다. 남편(유주용)과는 1985년에 이혼했다."

윤복희: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했고, 죽을 고비를 넘겼어요. 그때 느낀 게 내가 정말 큰 실수를 했다는 거였죠. 그분(남진)에게 집까지 모두 주고, 30만 원만 주머니에 넣고 나왔어요."

 

 

, 윤복희는 전남편 유주용과 1985년까지 결혼 관계를 유지했기에, 중간에 한 남진과의 결혼은 중혼으로 원천 무효가 되는 셈이죠.

(중혼의 의미: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이중으로 혼인함.)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네요.

 

 

남진 역시 충격을 받았는지 곧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남진과 나훈아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음. 둘 다 결혼과 이혼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조용필 등의 실력파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으며, 남진의 경우 신군부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었음.)

 

남진 아내 강정연 현재 사진

 

남진은 1980년 두번째 결혼(? 실질적으로는 첫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진 부인 강정연은 재미교포였고, 미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남진: "그때 미국에 공연을 가서 선배 소개로 처음 집사람을 만났다."

 

남진: "재미교포 집사람은 솔직하고 성격도 강하다. 인연이 돼 한국에 왔는데 어머니가 전라도에서 제일 유명한 점집 10군데에서 점을 보고 다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직접 혼인신고를 해버렸다."

 

어머니 역시 아들이 윤복희의 그늘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원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남진과 강정연 부부가 계속 딸만 낳자 문제가 생겼죠.

 

남진: "딸만 계속 낳으니까 목포에 있는 어머니께서 반가워하지 않으셨다. 또 언제 낳았느냐 하니까 아내도 부담이 됐다. 셋째를 낳을 때는 아내가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또 낳으면 되지 않냐고 몸만 건강하면 되지'라고 말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아들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남진 부부는 자녀를 총 13녀를 두게 됩니다.

남진: "어머니가 생전 내가 가수왕 상을 받고 인기가 있어도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한번도 안했는데 넷째 아들을 낳으니까 그제서야 성공했다고 하셨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아들 낳지 못한다고 부인 강정연이 시집살이를 많이 당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남진은 다시 1970년대와 같은 전성기를 되찾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두터운 팬층에 힘입어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합니다. 콘서트도 열고 음반활동을 하죠. (1980년대는 조용필의 시대였고, 1990년대는 서태지의 시대였죠. 가요계가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돌연 남진의 배우자 강정연이 구속되는 사건일 발생합니다.

 

구속될 당시의 강정연 사진

 

12개대 54명 부정입학학부모등 10명구속

2001-01-11

 

(기사 발췌)

가수 남진(본명 김남진)씨 부인 강정연씨가 얼굴을 가린채 11일 구속되고 있다

 

재외국민 부정입학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특수2(이덕선.李德善 부장검사)11일 초..12년간 해외이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외국민 특별전형제를 악용, 서울대 등 서울시내 12개 대학에 부정입학한 학생54명을 적발, 조사한 결과 이중 K외국인학교 출신 36명이 이 학교 재단이사 조건희(趙健姬.53.)씨와 위조전문 브로커 2명의 도움으로 부정입학한 것으로 드러났다고밝혔다.

 

http://news.donga.com/3/all/20010111/7633740/1

 

바로 딸 세명의 대학 입학을 위해서 강정연이 브로커를 동원해다는 혐의였습니다.

대학 부정 입학으로 2001년 새해 벽두를 뜨겁게 달구던 사건이었죠.

남진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아내가 하는 행동에 묵인 정도는 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십여년이 지난 사건이고, 현재는 현재는 딸들도 시집을 잘 가서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남진은 이제까지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었죠. 윤복희가 자신을 이용했다가 버릴 때에도 아무 말하지 않는 남자다움을 보여주었고, 베트남에서는 목숨이 달린 전투를 치루기도 했죠.

 

 

하지만 자녀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아버지네요.

문득 생각해 봅니다.

한국의 어느 부모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버리면 법마저도 위반하게 됩니다.

 

옛말에 너무 과한 것은 모자람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자식 사랑하는 마음도 스스로 절제를 할 수 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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