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경험과 지난날의 성장 환경이 그대로 녹아들어간 소설이다.
술을 좋아하는 형 때문에 풍비박산이 난 화자의 집은, 화자의 노력으로 거의 이십년이 지나야 겨우 안정을 되찾는다. 노인(화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그렇게 부른다)은 화자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지붕 개량을 결코 정면에서 말하지 못하고, 화자 역시 형을 제어하지 못한 노인에 대한 원망으로 자신은 노인에게 빚이 없다는 말을 뇌까리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런 둘 사이에서 조금이나마 가교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화자의 아내(노인의 며느리)이다.
이 집에는 옷궤가 있다. 옛날에 잘 살았을 때를 추억하는 마지막 남은 물건이다. 그처럼 화자에게도 하나의 추억이 있다. 예전의 집을 팔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집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다. 노인이 아들에게 마지막 밥을 먹이고 마지막으로 재우려고 새로 들어올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어렵게 마련한 자리였다.
다른 도시에서 공부하던 고등학교 일학년인 화자가 급하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골목에서 서성거리기만 한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인은 당당하게 나무란다.
"여기가 어디냐. 네가 누군디 내 집 앞 골목을 이렇게 서성대고 있어야 하더란 말이냐."
(201p)
노인은 화자에게 집이 팔릴 정도로 어려워졌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고 다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 화자 역시 아무 말도 묻지 않고 하룻밤을 잘 쉰 다음 새벽에 다시 유학중인 도시로 떠난다. 화자는 자신을 바래다준 노인의 그 뒷일이 궁금하지만 끝내 노인에게 묻지 않는다. 그걸 가교 역할을 하는 아내에 의해서 거의 이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노인의 심정을 듣게 된다.
바로 화자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제 집을 잃은 노인의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 아니라 "맑은 아침 햇살에 대한 부끄러움"(아마 큰아들의 잘못으로 집과 선산을 잃은 것에 대한 죄의식)이었다는 사실을.
전편의 [다시 태어나는 말]에서 언급한 대로 화자는 결코 알지 못했던 노인의 심정을 이때서야 비로서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노인 역시 화자의 말하지 못했던 심정을 알게 된다.
바로 마지막으로 밥을 먹었을 때 집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화자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로 들어올 집주인에게 부탁을 했으므로 이미 살림살이는 처분한 뒤였고, 화자는 그걸 눈치챘던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이처럼 모든 사실을 다 알지 못한다. 그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이러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고, 그것은 대개 틀리지만 알 수가 없기에 그냥저냥 살아갈 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화자(사실은 이청준이라고 해야 옳다. 오롯이 그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니까.) 역시 자신은 노인에게 빚진 것이 없다며 뇌까리지만, 실상 그의 마음 깊숙이에는 노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어려 있었는지 모른다. 완전한 어른은 아니지만(고등학교 일학년), 어느 정도 자랐기에 집 잃고 갈 곳이 없는 노인을 버려두고 그저 말없이 뒤돌아 갔던 자신을 쉽사리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노인이 그후 어떻게 길을 되돌아갔는지는 나로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었다. 노인을 길가에 혼자 남겨두고 차로 올라서 버린 그 순간부터 나는 차마 그 노인을 생각하기가 싫었고, 노인도 오늘까지 그 날의 뒷 얘기는 들려 준 일이 없었다.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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