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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는 말]은 [남도 사람5]이지만, 서편제의 오누이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야기되어질 뿐이다.

 

김석호는 이조 말엽의 고승 초의대사의 글을 번역한 사람이었고, 지욱은 초의대사의 다도에 대해서 배우기 위해 그를 찾아간 사람이었다. 지욱의 물음에 김석호는 별다른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초의대사가 열반에 들었던 일지암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김석호는 일지암에서 초의대사의 다도를 '용서'라고 정의한다. 바로 스스로의 삶에서 용서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우연히 만났던 [서편제]의 씨다른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든다.

김석호의 해석에 의하면 오빠는 의붓아비를 용서할까 두려워 그 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오빠가 여동생을 우연히 만난 일과 자신을 밝히지 못한 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바로 [소리의 빛]의 내용)
바로 새삼 용서를 말하고 후회를 말한들 오누이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기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내가 화해와 용서를 구하고 여동생이 그걸 받아준다고 하더라도, 둘은 여전히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이 이야기는 크게 하나의 주제를 이어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 이유가 바로 이청준의 작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이 [다시 태어나는 말]은 [서편제]의 연작소설임과 동시에 [언어사회학서설]의 연작소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로 두개의 커다란 이야기를 무리하게 하나로 묶다가 보니까 이런 지경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청준은 하나의 사건, 한 인물에 대하여 여러 가지 관점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이런 이야기 형태를 사용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음에 이야기할 [눈길]처럼 간단하게 언급되거나, 아니면 서로 다른 시각이나 오해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서술방식이었을 것이다.
[서편제]라는 좋은 작품이 계속 더럽혀지는 듯한 느낌이다. 3편에서 그쳤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작품외적으로 이청준은 원래 다산과 추사, 초의, 소치라는 이조 말기의 네 거인에 대한 소설을 꿈꾸다가 포기했다. 그들의 생애를 다루려면 유불선 삼교와 기독교, 그림, 다도에 대해서까지 두루 알아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역량을 깨닫고 포기한 것이다. 그때의 초의대사가 바로 여기 나온 인물과 동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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