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나무]는 [남도사람 4]로 서편제의 연작소설 중의 하나이지만, 전편에서 얘기했듯이 씨다른 오누이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과수원 주인이 지나가는 낯선 사내를 초청함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때 이 길손이 서편제의 씨다른 오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의 이야기는 없고 과수원 주인이 주로 자신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한 첫 번째 이야기는 자신의 어머니와 집나간 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비가 내리면 구슬프게 우는 빗새를 애달아했고, 마침내 집근처에 동백나무를 심어 빗새가 비를 피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빗새를 집나간 큰아들로 생각했는지 아침마다 씨좁살 말린 것을 새모이로 주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정성이 통했는지 마침내 큰아들은 삼십 년 만에 빈털털이로 돌아오고, 어머니는 그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큰아들은 과수원에 무질서하게 나무를 심으면서 일간 정착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방랑벽을 끝내 버릴 수 없었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유랑을 떠나고 만다.
여기서 과수원 주인은 지나가던 길손이었던 사내를 초대한 이유를 밝힌다. 바로 자신의 형처럼 그 또한 보자마자 빗새처럼 보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초대를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청준의 또 다른 소설인 [연](새와 어머니를 위한 변주 1), [빗새 이야기](새와 어머니를 위한 변주 2)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과수원 주인과 지나가던 길손의 술자리는 계속되고, 주인은 마침내 두 번째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에는 시장이(시인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 생활에 찌든 시장이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과수원 주인에게 조그마한 땅을 구입하도록 부탁하고 주인은 쾌히 승낙 한다.
하지만 시장이는 쉽게 돈을 마련하지 못하여 여러 번 약속을 어긴다. 그 동안에도 주인은 귀향할 시장이를 위해서 땅 대금을 치루기도 전에 땅주인의 허락을 받고 자신의 과수원에 있는 좋은 묘목들을 옮겨 심는다. 빗새처럼 시골을 찾아오는 시장이를 위해서 좋은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시장이는 끝내 돈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죽어 유골이 되어 강에 뿌려진다.
사실 여기서 나온 시장이에 대한 이야기의 원형은 이청준의 또 다른 소설 [여름의 추상]에 나오는 시인 이동주에 대한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또다시 우려먹는 이청준은 그리 좋은 작가는 아니다.
어쨌든 빗새의 동백나무와 과수원 주인의 형의 고향과 시장이의 시골이 꼭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빗새에게 -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새라고 할지라도 - 동백나무는 비가 올때 잠시 쉬어가는 장소일 뿐이다.
과수원 주인의 형에게 그 쉼터란 바로 어머니의 품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영원히 정착하기를 바랐지만, 아들은 곧 떠나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시장이에게는 바로 도시를 탈출하는 것 자체, 그런 상상만으로 그의 정신을 여유롭게 하고 시상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과수원 주인은 길손에게 시장이가 봐두었던 터를 권한다. 정착을 가장해서 중간에 놀고 있는 땅을 넘기려는 시골 사람의 고도의 마케팅 기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농담이다.) 어쨌든 길손은 주인의 권유를 거절하고 소리하는 집을 찾으러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런 그에게 과수원 주인은 이런 말을 건넨다.
"집터를 찾든 소리를 찾든 그야 노형 좋으실 대로 할 일이겠소마는, 글씨 내 보기로는 노형이 바로 그 소릿가락 같은디... 자기 잔등에다 소리를 짊어지고 어디로 또 소리를 찾아 댕긴다는 것인지..."
(138p)
결국 빗새의 동백나무처럼 길손에게는 소리가 그런 쉼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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