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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6- 버니스 단발머리가 되다

 

이 작품 역시 [해변의 해적]처럼 1920년에 나온 작품입니다. 또한 젊고 야심만만한 젊은 남자와 부유하고 예쁜 젊은 여자가 주축을 이루는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두명의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마저리와 버니스는 사촌지간이지만 성격은 극과 극으로 다릅니다. 마저리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여러 남자들을 잘 관리하는 여우라고 한다면, 버니스는 자신이 왜 인기가 없는지조차 모르는 곰 같은 여자입니다. 결국 버니스는 마저리의 충고를 받아들여 남자들을 다루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마저리의 충고에 따라 버니스는 인기 없는 남자들에게도 관심을 쏟으면서 요즘 말로 '어장관리'를 충실히 합니다. 그리고 간혹 재치 있는 말을 던지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단발머리'가 어울리는지와 같은 충격적인 말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튀는 발언으로 버니스는 남자들로부터 주목받는 여자가 됩니다.

 

 

말괄량이와 철학자들말괄량이와 철학자들, 보물창고


[위대한 개츠비]가 1920년대 전체를 상징하는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막 끝난 직후의 짧은 시기, 특히 여성들이 가열차게 권리 향상을 주장하던 시기를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교육받은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크게 증가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깁슨걸'이라고 불리며 집안일보다는 스포츠 활동으로 삶을 즐겼고, 동시에 사회적 약자나 도시 빈민들을 돌보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새로운 여성상으로 사회적으로 큰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수녀와도 비슷한 활동이었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달랐습니다. 술과 담배, 파티를 즐기며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의사표현이 똑 부러지는 새로운 '플래퍼'들이 제1차 세계대전 전후로 출현했고, 이들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남자들도 경악했지만, 그보다 그들의 어머니세대인 '깁슨걸'들이 격분을 참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생각해왔던 가치 추구와 전혀 동떨어진 형태를 보였으니까요.

 

당시 사회적으로 여자들의 두 가지 패션이 큰 문제로 부각되었는데요, 첫 번째가 '무릎 위 6인치(약 15센티미터)'였고, 두 번째가 바로 단발머리였습니다.

무릎위 6인치는 기존의 땅에 끌리다시피한 긴 치마가 아니라 복숭아 뼈가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1967년에 가수 윤복희씨가 입었던 미니스커트와 비견될만한 파장이었죠.
단발머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시대를 나타내는 사회적인 이슈를 피츠제럴드는 당시의 인물상과 함께 버무려내는 재능이 누구보다도 탁월했습니다.

예를 들어 버니스가 남자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마침내 마저리의 남자친구까지 마음이 흔들리자, 그녀를 도와주었던 마저리는 마음을 바꾸고 맙니다.
그것을 모르고 원래처럼 '단발머리'에 대해서 도발적인 말을 하는 버니스의 말꼬리를 붙잡고는, 그녀가 머리를 자르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합니다.


결국 버니스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자르게 되지만, 너무나 볼품없게 변한 모습에 모두들 눈을 돌립니다. 밤에 몰래 사촌 집을 뛰쳐나가는 버니스는 사촌인 마저리에게 똑같은 복수를 해줍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말을 남기죠.

"이기적인 것들은 머리 가죽을 벗겨 버려야 해!"
239p


이렇게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단발머리'였지만, 젊은 여자들 위주로 곧 광범위하게 유행을 하게 됩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보면 대부분의 여자들이 단발머리인 것을, 그리고 전쟁 중의 회상씬에서는 모두 긴 머리이고 치마마저 땅에 끌리게 풍성했던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피츠제럴드는 누구보다도 1920년대의 시대성을 잘 표현하는 작가였습니다. 그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성공에 대한 열망이 컸고, 여러 번의 우여곡절 끝에 당시 최고의 '플래퍼'로 인기를 끌었던 젤다와 결혼하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그의 재능은 너무 1920년대에 최적화가 되었던 것일까요? 같은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인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이어 '노인과 바다'로 특정 시대를 뛰어넘는 작가로 성장하고 노벨문학상도 받은 반면에 피츠제럴드는 끝내 재기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피츠제럴드가 44세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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