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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해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위대함'은 결코 없습니다. 이것을 찾다가는 자

칫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쓸 당시(1925년 출판)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막 끝난 후였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사라예보의 총탄이 그렇

게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오랜 대전의 시발점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세계 대전에서의 대량 살상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재즈시대'라고도 불리는 1920년대의 대호황도 정신적인 상처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무리 술과 음악으로 날밤을 새어도 공허함은 깊어만 갔을 뿐이죠. [위대한 개츠비]는 바로 이러한 시기에 쓰여 졌고, 나중에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우뚝 섰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위대한 개츠비, 혜원출판사

개츠비는 참으로 복잡다단한 인물입니다. 옛날 애인을 잊지 못하고 다시 나타났지만, 그녀 앞에 제대로 나서지 못합니다. 무료로 호화로운 파티를 벌여 그녀가 혹시 파티에 참석하지 않을까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용기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밀주나 불법적인 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개츠비의 모습에서 미국이 투영되더군요. 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강대국 및 세계 최고의 공업생산국으로 우뚝 섰지만(사실 1890년대부터 미국의 공업생산량은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여전히 문화적인 후진국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미국인들이었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힘든 찌질한 과거는, 꼭 과거에 무언가 대단했었던 것 같은 루머와 환상을 만들어 내기도 하죠.

 

원래 개츠비 역시 어릴 적부터 스스로 만든 허황되고 아름다운 환상에 사로잡혀 살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부호의 눈에 띄면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의 인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어릴 적의 환상은 개츠비가 어른이 된 후에도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항상 자신을 사랑했었고, 남편과의 결혼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 했습니다. 심지어 현실적인 존재인 데이지의 딸을 보고도 믿기 힘들어하기도 하죠. 한마디로 개츠비가 쫓던 완벽한 사랑이란 결국 환상일 수밖에 없고, 개츠비에게는 현실을 제대로 볼 용기가 없었던

'찌질한' 남자였습니다.


반면에 개츠비의 구애를 받는 데이지는 예쁘지만 허영기가 심한 여자입니다. 부자라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니죠. 스스로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사치를 누린다면, 누가 비난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데이지는 항상 수동적으로 부유한 남자들의 곁에 빌붙어 살아가는 존재지요.

그렇다면 데이지에게 현실을 박차고 스스로의 삶을 이룩할 용기가 없었던 여자였을까요? 아니, 데이지 스스로 자신의 한심함을 몰랐을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데이지의 말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지요. '좋아, 딸이라서 기쁘다. 저 아이는 바보였으면 좋겠다. 여자란 바보로 지내는 것이 최고니까. 예쁘고 귀여운 바보였으면 좋겠다.'
26p

 

이처럼 데이지는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하고 결코 그 선을 뛰어넘으려고 하지 않는 '비겁한' 여자였죠. 그리고 끝내는 자신의 죄를 뒤집어쓴 개츠비를 모른 척하고 맙니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외에도 그의 인생사를 잘 파악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래 피츠제럴드는 가난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 청년기때 젤다라는 미국에서 손 꼽히게 예쁜 여자를 만나 약혼을 합니다.

하지만 젤다는 피츠제럴드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그와의 약혼을 깨버립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와 무척 비슷하네요.


낙심한 피츠제럴드였지만, 하늘은 그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가 쓴 [낙원의 이쪽]이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결국 그는 젤다와 결혼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결혼이 결코 행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젤다는 아름다운 만큼 사치와 낭비가 심했고, 외도까지도 했으니까요.([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의 외도 모습이 안 보이지만, 사실 젤다의 외도는 바로 그 직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아마 피츠제럴드는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개츠비가 1920년대 시대의 상징이라면, 젤다를 모델로 한 데이지 역시 시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개츠비 만큼이나 현실을 외면하는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톰의 정부인 머틀 윌슨 부인입니다. 그녀는 정비사인 남편 윌슨을 무시하고, 부자인 톰과 놀아납니다. 가난한 자기 집의 현실을 외면하고 뉴욕에 얻은 아파트에서 부자인 척 살아가는 거죠.

데이지는 개츠비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데이지는 이미 남편인 톰의 배신감에 치를 떱는 상황입니다.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온 것도 남편의 바람기 때문이었고, 이곳 뉴욕에서도 남편의 잘못된 행동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개츠비의 부는 남편보다 더 커 보였습니다. 원래의 물질만을 밝히는 여자라면 충분히 새 남자를 선택할만한 상황인거죠. 하지만 그녀는 끝내 개츠비의 '자신만을 사랑했다'라고 강요하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개츠비의 환상)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야기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어떤 사람일까요? 처음에는 단순히 글의 전개를 위한 화자역할을 했습니다. 원래는 글에서 아무런 비중이 없지만, 차츰 개츠비와 데이지의 밀회를 돕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을 하죠. 그러다가 후반부에 가서 갑자기 개츠비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합니다.

 

"당신은 그런 쓰레기 같은 놈들을 한데 모아 놓은 것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오!"
186p


데이지를 사랑했던 개츠비가 피츠제럴드의 분신이었다면, 이렇게 개츠비를 돕고 그를 칭찬했던 닉 역시 피츠제럴드의 또 다른 분신이었습니다. 아니면 최소한 자신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타인이기를 피츠제럴드는 바랐던 거죠.
그랬기에 결코 '위대한'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만의 환상에 사로잡혀 사는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라는 칭호를 붙여준 겁니다.


이처럼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젤다와의 관계도 좀 더 나아지기를 염원했습니다. 아직까지는...

 

 

p.s
사실 1925년에 나온 [위대한 개츠비]는 크게 실패합니다. 대호황기로 한창 흥청망청하던 당시의 미국인들은 현재 이 작품을 접하는 보통의 한국인들처럼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결국 피츠제럴드는 [낙원의 이쪽]의 성공에 대한 명성을 바탕으로 거의 단편으로 먹고 삽니다. 그렇게 버려졌던 [위대한 개츠비]였지만, 1950년대가 되면서 갑자기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문화적인 코드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30년대의 대공황과 1940년대의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미국인들이 비로소, 예전의 [위대한 개츠비]가 파멸이 예정되어 있었던 1920년대를 상징하고, 그 시대를 묘하게 자극한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랬기에 그토록 결함 많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적인 목표를 가진 개츠비를 미국인들은 사랑하게 됩니다.


1.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1- 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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