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은 [서편제]와 더불어 이청준의 대표작중의 하나이다. 주인공인 육군 대령이자 소록도 병원장인 조백헌은 실존 인물인 의사 조창원을 모델로 했다. 이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소록도와 강원도 정선, 대전 등지에서 평생토록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당신들의 천국]은 이청준 작품의 특징인 복합 시선으로 서술될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사상에 대한 관념적인 철학이 녹아 있어, 해석하기에 약간 난해한 점이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단계적으로 나누어 평해 본다.
첫째로 소록도 병원의 원장으로 상징되는 지배자들의 '동상'이 있다. 일제 시대의 원장인 주정수와 그의 심복 사토로 상징되는 그들은 환자들에게 천국을 만들어 준다고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새로 부임한 병원장 조백헌은 환자들을 위해서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조백헌이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닌지 색안경을 끼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환자, 혹은 피지배층의 지배층에 대한 시각, 즉, '당신들의 천국'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배층들이 아무리 감언이설로 피지배층을 위한다고 포장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뿐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하면 이 작품의 1/3을 이해한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의 천국'은 단면적으로만 해석될 수 없다. 피지배층이 지배층을 바라보았듯이, 건강인으로 상징되는 지배층의 피지배층에 대한 시각 역시 엿볼 수 있다.
환자들은 '자학'과 '피해망상'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조백헌이 아무리 그들을 진정으로 위한 일을 추진해도 항상 삐딱하게 바라본다. 환자들과 그들의 후예를 위한 대규모 간척 사업 역시 그들은 의심부터 하고 일을 하면서도 조백헌을 여러 번 '배반'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두 번째의 '당신들의 천국'은 무(無)와 절망이다. 실제로 작품 전체를 통틀어 환자를 상징하는 황희백 장로, 한민, 윤해원 등은 한 번도 자신들의 '천국'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주정수 혹은 조백헌 등에 의해서 그려지는 '천국'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뿐이다. 그들은 오직 절망적이고 암울한 무리들이다.
원생들은 원래부터 교육 수준이 낮았고 유랑과 무위도식의 악습에 물들어 있던 무리였다. 절망하기 잘하고, 까닭 없이 반항하고, 원망과 질투가 강한 병적 심리의 소유자들이었다.
(122p)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위정자가 우리를 속였고 원장들이 속였고 병원 직원들이 우리를 속였소. 거짓 얼굴을 한 자선가들이 우리를 속였고 육지의 약장수들이 우리를 속였고 심지어는 고향의 육친들과 교회의 형제들마저 우리를 속이거나 버리고 돌아서기 일쑤였소. 그리고 마지막에 문둥이 자신들이 자신을 속이고 자신을 배반했소.
(182p)
또한, 환자들은 환자임과 동시에 '인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환자'들의 천국을 만들어 준다는 지배층의 말에 그토록 쉽게 속아 넘어가고 자신의 몸까지 바쳐가며 헌신적으로 일하다가 이용만 당하고 끝내는 버림받는다. 그들은 '환자'로 살아가다가 자신이 인간임을 자각하면서 정당하게 나갈 수 있는 섬을 온갖 고난을 무릎 쓰고 직접 헤엄쳐서 빠져나가려고 한다.
여기까지 이해하면 이 작품의 2/3을 이해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상욱 보건과장으로 대변되는 지식인이다. 조백헌이 이상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이상욱은 진심으로 조백헌을 돕지 않는다. 그리고 조백헌이 최후의 위기에 몰렸을 때, 마치 환자인 것처럼 섬을 헤엄쳐서 탈출하면서 다른 환자들을 각성시킨다. 미감아였던 그는 처음부터 '배반의 씨앗'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그가 꿈꾸는 낙원에다 자신의 동상을 걸게 해서는 안 되었다. 그를 조심스럽게 실패시켜야 했다. 그래서 끝끝내 그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동상을 고집할 수 없게 해줘야 했다.
(78p)
이상욱은 위의 구절처럼 '혹시 모르는' 가능성으로 항상 조백헌에게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었던 서미연의 연정을 일체 모른척하고, 위에 언급한 대로 섬을 탈출해 버림으로써 조백헌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가 버린다.
그렇다면 이상욱의 '천국'은 무엇일까? 끝까지 조백헌의 기대를 저버린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천국은 결코 지배자에게 속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피지배자들의 천국을 제시하거나 자신만의 이상향을 형상화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그는 환자들과는 거리를 둔다. 병원 직원용 숙사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미감아였던 그의 과거를 알게 되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는 이 점에서 오락가락하는데, 결국 자신의 과거를 밝히는 것에 적극성을 띄지는 않는다.)
그가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서 방안에서 주례사를 연습하는 조백헌의 목소리를 몰래 엿듣는데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천국'은 끝까지 감시자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서는 방안에서 주례사를 연습하는 조백헌, 이제는 병원장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그의 목소리를 몰래 엿들을 정도로 '감시'하는 자신의 임무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원래 이상욱은 '배반의 씨앗'으로 태어나 자랐다. 비록 글에 명확하게 언급된 것은 아니지만, 한민의 극중 소설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종합해볼 때, 이상욱은 배반자 이순구의 아들이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괴로워하면서 지배층을 끊임없이 감시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상욱 과장이란 사람 모든 일을 그 자유로만 행하고 싶어 했고, 또 오로지 자유로만 행할 줄은 알았어도 거기서 익혀진 몹쓸 버릇들, 일테면 덮어놓고 남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따위의 심성에 대해서는 미처 눈을 뜨지 못했던 게야. 남을 용서할 줄을 몰랐지.
(336p)
즉, 이상욱은 자신을 용서할 줄 몰랐기에, 남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하면 책의 나머지 1/3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1/3씩 세번을 이해했다고 합해서 1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청준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작품 전체에 걸쳐 자유와 사랑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정치에서 사랑 없는 자유와 자유 없는 사랑은 둘 다 배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둘을 오롯이 연결하는 것은 바로 '믿음'이라고 설파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음성 환자 출신인 윤해원과 미감아 출신(이지만 정상인으로 알려진) 서미연의 결혼식 주례사로, 더구나 정상인인 조백헌의 입으로 말하게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벽을 허물어뜨리고 그 벽 대신 따뜻한 인정이 넘나들 믿음과 사랑의 다리가 놓여야 할 곳은 많습니다. 다리의 이쪽과 저쪽이 한 동네 한 마을로 섞이고 화목해야 할 자리는 많습니다.
(4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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