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섭은 휴양을 하기 위하여 어릴 적 친구인 기태의 과수원으로 간다. 지섭이의 고향 근처에 위치한 그 과수원 별채에는 뼈가 잘 부러지는 기태의 조카인 훈과 그 아이를 돌봐주는 초등학교 선생, 은영이 같이 살고 있다.
오랫동안 고향의 의미를 잊었던 지섭은 훈의 물음에 답하면서 고향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떠올린다. 서울에서 자란 훈은 고향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다른 사람의 설명을 통해서 고향의 의미를 깨우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병이 바로 고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은영의 말을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은영 역시 고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그녀는 바다를 남자친구로부터 배웠기에, 더욱더 관념적이다. 기태는 그런 은영을 가짜라고 매도하면서, 그녀의 병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강간을 한다. 결국, 은영은 과수원 별채를 떠나게 된다.
불면증을 가지고 있는 지섭과 훈은 라디오를 들어야 잠을 청할 수 있는 체질이다. 하지만 지섭이가 라디오의 말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에 반해 훈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 각자 다른 것에 의해 다른 식으로 훈련받아온 결과이다.
시골의 좋은 공기 덕분인지, 지섭과 훈의 병은 날로 호전되어 간다. 오랫동안 훈의 뼈가 한 번도 부러지지 않았고, 지섭 역시 배앓이의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고, 누렇게 뜬 안색 역시 몰라보게 좋아진다.
훈이 물을 때마다 지섭은 어릴 적의 동화 같았던 고향에서 일어났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다가 훈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좋아요. 그 이야기가 다 진짜래도 좋아요. 하지만 아저씬 그럼 어째서 그렇게 좋은 고향 동네를 한 번도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으셔요? 여기까지 와 계시면서 고향 동네가 멀지도 않으시다면서 말예요."
(218p)
이날 밤 나는 다시 진짜 배앓이가 시작되고 말았다. 과수원을 찾아오고 나서 첫 번째로 기태와 술을 마셨던 날 밤 한번밖엔 배앓이다운 배앓이가 없었는데, 이날 밤은 증세가 진짜로 심했다.
(218p)
결국 지섭은 자신이 이야기한 고향은 그저 요술처럼 꾸며진 이야기였을 뿐임을 깨닫고 서울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악마구리 속이라도 할 수 없지. 나를 그토록 폐허로 만든 곳이 서울이라면 내 병도 아마 그 서울 쪽에 뿌리가 있을 테니까. 뿌리를 뽑고 싶으면 싫더라도 그 뿌리가 내려진 곳으로 돌아가는 게 정직한 태돌 테구."
(221p)
고향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 아니더라도 초등학교의 기억은 전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넓어 보이던 운동장이었지만, 어른이 되어서 찾은 운동장은 너무 좁고 볼품없어 보인다는 사실에 자못 놀라게 된다.
이처럼 고향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있기에 그렇게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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