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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가 피츠제럴드 최고의 장편이라면 [다시 찾아온 바빌론]은 최고의 단편입니다.
전자가 야심만만한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향한 구애의 과정이었다면, 후자는 서로 결혼한 남자와 여자의 파멸 이후를 묘사합니다. 1931년에 발표되었기에 대공황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물론 1931년의 다른 사람들처럼 피츠제럴드 역시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대공황이라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미국이 세계 최대채권국이 되고 구매력이 대폭 향상된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마치 왕과 귀족처럼 흥청망청 생활합니다. 마치 오늘날 선진국 사람들이 동남아시아에 가서 돈을 뿌리며 즐기는 것처럼 환율차이로 큰 부자가 된 그들 앞에 거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거품을 유럽으로 옮기는 것이었고, 그것은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피츠제럴드 단편선피츠제럴드 단편선, 민음사

거품이 사라지고 공황이 닥쳤을 때, 호텔업 등의 서비스업이 제일 먼저 몰락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공황이 곧 끝나리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손님을 기다리는 웨이터와 지배인의 모습에서 인간의 씁쓸한 낙관주의를 엿볼 수 있다면, 아직도 전성기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하고 술친구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로레인과 덩컨으로부터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항상성을 느낄 수 있네요.

 

'바벨탑'과 '공중정원'의 전설을 남긴 바빌론은 서양인의 의식 속에 화려한 지상천국이었다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한 죄악의 소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파리를 바빌론에 비유함으로써 공황이 휩쓸고 있는 당시의 상황을 아주 효과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런 쓸쓸한 바빌론을 찰리는 딸을 찾기 위하여 되돌아옵니다. 아내와의 추억이 곳곳에 서려 있고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파리를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찰리는 힘이 듭니다. 더구나 과거의 잘못으로 현재 딸아이와 헤어져 지내야 하는 그였기에 파리에서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딸과 함께 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참아내는 그에게 파멸을 선사한 것은 그의 '원죄'였고, 결국 딸과 함께 살겠다는 그의 꿈은 무너져 내립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딸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죽은 아내 역시 자신의 뜻을 지지해 주리란 것을 믿고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젤다의 외도는 [위대한 개츠비]를 쓰기 전에 발각되지만, 피츠제럴드는 특별히 작품 내에서 그녀를 탓하지 않습니다. 여기의 [다시 찾아온 바빌론]에서 역시 그저 죽은 아내로 나오고, 서로간의 감정싸움으로 인한 잘못된 처신으로 아내를 눈보라 속에서 걷게 한 자신에 대해서 자책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아내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젤다가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해서 그런 걸까요?

호황 이후의 파리의 쓸쓸한 분위기와 그에 못지않은주인공의 적막한 심정을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한 피츠제럴드의 능력이 실로 놀랍습니다.

 

1.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1- 위대한 개츠비
2.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2- 위대한 개츠비(영화)
3.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3- 다시 찾아온 바빌론
4.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4- 해외여행
5.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5- 해변의 해적
6.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6- 버니스 단발머리가 되다
7.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7- 광란의 일요일
8. 피츠제럴드의 인생과 작품 8-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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