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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현대건설 내부에서는 대부분이 정주영의 결정에 반대를 합니다.

특히, 50년대부터 현대건설에서 일을 했고, 당시에는 현대건설의 해외건설담당 부사장을 맡고 있었던 정인영 (정주영의 친아우)이 적극적으로 반대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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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아우 정인영이 형 정주영을 부르는 호칭, 정주영의 아우나 아내도 정주영을 보통 회장이라고 불렀음), 저희는 반대입니다. 그건 회사를 망하게 하는 욕심입니다."


하지만 정주영은 그런 아우와 주변 임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중동 진출을 추진하게 되었죠.


(결국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정주영과 정인영이 갈라서게 되고, 정인영은 한라그룹을 창건하게 됨)

당시 중동 건설 시장은 선진국들의 대표적인 건설, 토목, 엔지니어링 회사들의 독무대였고, 정인영을 비롯한 수많은 현대건설 임직원들은 여기에서 실패를 하면, 현대건설이 부도가 날 것이라고 반대를 했습니다.


정인영: "중동은 태국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오늘 신문 보셨죠? 내놓으라고 하는 경제학자들도 중동 진출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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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정주영은 1974년 중동에 진출하게 되었고,

1976년에는 20세기 최대의 공사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지역 항만공사를 따내게 됩니다. (당시 9억3천만달러 규모의 사업이었는데, 우리나라 1년 예산의 25%에 달하는 액수였음. 당시 우리나라의 외환 부족이 현대 건설덕분에 상당 부분 해소가 됨)

(정인영은 현대건설의 중동진출 및 이후의 주베일 항만 공사 수주를 모두 반대했음)


특히, 주베일 항만공사의 경우 예비 입찰에 일본의 대형건설사들도 끼지 못했기에, 규모가 작고 이름도 없는 현대건설이 입찰에 성공했고, 또한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불가사의하게 여겼죠.


그런데 이 공사에 성공한 것에는, 정주영 특유의 '창조적인 사고방식'이 작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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