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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정주영은 후자였을 겁니다.

당장 자신과 계약할 선주들을 찾아 헤맸으니까요.


물론 대다수의 선주들은 정주영의 제안을 거절했고,

그 와중에 정주영은 그리스의 선박왕 리바노스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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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다른 조선소보다 싼 값에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만든 선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이런 정주영의 파격적인 제안과 열정에 리바노스 역시 감동을 받아서 결국 26만톤의 배를 2척이나 주문하게 됩니다.


결국 정주영은 이 계약서를 갖고 영국의 버클레이 은행으로 되돌아가서 자금을 지원받고 조선소를 만들면서 동시에 육지에서는 배를 건조하게 됩니다.

(나중에 25만톤짜리 배는 어느 정도 만든 후에 도크에 넣음)


여기까지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정주영의 신화입니다.

그런데 이 일화에는 각색되거나 혹은 숨겨진 부분들이 있죠.


우선, 정주영은 영국의조선회사인 A&P애플도어의 회장이 롱바톰을 만났을 때부터 결정적인 무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빚보증'이었죠.


아마 롱바톰 회장이 거북선에 흥미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빚보증'이란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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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국 정부의 빚보증'은 버클레이 은행은 물론이고 그리스의 리바노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정부의 빚보증'이라는 탄탄한 방패막이가 없었다면, 정주영의 열정만 믿고 차관을 빌려주거나 계약을 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 같네요.


게다가 그리스의 리바노스 역시 당시 선박왕이 아니라, 그리스 선박왕의 상속자였습니다. 당시 40대의 나이에 한창 사업을 확장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런 사람에게 정주영이 '싼 가격과 더불어 한국 정부의 빚보증'을 들이댄 것이죠.


물론 정주영의 업적을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소가 없는 백사장 사진 하나 들고 가서 차관을 얻고 계약을 땄고, 실제로 그 계약대로 배를 건조하는데 성공했으니까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사업은 우리나라 정부의 빚보증 덕분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현대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즉, 현대와 삼성을 비롯한 대부분의 재벌들은 이렇게 국가와 국민들의 '빚보증'을 바탕으로 70년대와 80년대 고도성장으로 오늘날의 재벌이 됩니다.

결국 현대와 삼성 등이 정주영과 이병철 집안의 것만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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