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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결코 정주영의 공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런 다음, 정주영의 두번째 업적은 현대조선소 건설인데, 사실 이 일화는 워낙에 유명하기에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의미로 다시 한번 제대로 짚을 필요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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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시 정주영은 조선소도 없는 상황에서 배를 발주받습니다.

1971년 9월 정주영은 사업계획서 한장과 조선소 건설 부지인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을 들고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은행들을 만나서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기술력을 믿지 못했던 것이죠.


(실제로 당시까지 우리나라는 대한조선공사가 건조한 1만7000톤급 선박이 최고였는데, 현대가 갑자기 26만톤의 배를 건조하겠다고 나섰고, 게다가 조선소도 없었으니 믿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죠.)


그래서 은행들은 유럽의 조선소들의 기술 보증을 현대에 요구했고, 정주영은 다시 유럽의 조선소 사장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조선업계에서는 하나같이 현대의 조선 기술력에 대하여 난색을 표했던 상황에서, 정주영은 롱바톰 회장 (영국 조선회사인 A&P애플도어의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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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여기를 보십시오. 한국 돈에 그려진 것은 거북선이라는 배입니다. 철로 만든 함선이지요.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에요. 우리나라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철로 된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전쟁(임진왜란)에서 일본을 물리쳤습니다."


정주영: "비록 (우리나라가) 산업화는 늦어졌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충분합니다."


이런 정주영의 열정에 롱바콤 회장의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그의 주선으로 영국의 버클레이 은행의 부총재를 만나서 자금을 요청하게 됩니다. (참고로 영국으로부터 26만톤급 선박의 설계도도 빌림)


하지만 버클레이 은행 부총재 역시 정주영의 사업계획서를 믿지 못했고, 우선 현대에게 '배를 발주한 선주'를 찾으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아마 속으로는 '조선소도 없는 현대가 만든 배를 사줄 선주가 있을까?'라는 계산을 했는지도 모르죠.


이럴 때 산너머 산이라는 말을 써야 할까요?

아니면 일이 하나씩 착착 진행되어 간다는 말을 써야 할까요?


아마 정주영은 후자였을 겁니다.

당장 자신과 계약할 선주들을 찾아 헤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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