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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2년 정주영은 정계에 진출하게 됩니다.

김동길과 함께 통일국민당을 창당했고,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이 되었죠.


정주영: "5공화국 (전두환 정권) 아래서 힘들지 않았던 기업이 없었겠지만, 아우 인영이가 옥고까지 치르면서 창원중공업을 강탈당했던 기막힌 사건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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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주영은 정치권의 압박때문에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는데, 당시 대놓고 금권선거를 자행합니다.

(원래 정주영 역시 국보위때문에 자동차와 중공업중에서 하나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받았음)


현대그룹 임직원들과 가족들을 노골적으로 동원했기 때문에, 당시 통일국민당 당원 수가 1200만명이나 될 정도였죠.


하지만 사람들은 금권 선거 및 재벌 정주영에 대한 반발감이 있었고, 대통령 선거에서 최종 특표수는 380여만표 정도를 획득하는데 그칩니다.


통일국민당의 당원들조차도 정주영을 뽑지 않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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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 대선에서 민자당과 노태우 정권은 김기춘의 '우리가 남이가' 등의  대놓고 지역감정을 유발하기도 했음)


아무튼 대통령 선거 낙선 이후에 김영삼 정권은 대놓고 현대그룹을 압박했고, 세무조사와 대출규제로 현대는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정주영도 정계를 은퇴하게 됩니다.


정주영과 이병철을 보면 좀 묘한 것이 많습니다.

아마 이병철이 초년에 사카린 밀수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그도 정계에 진출했을지도 모르고, 또한 일찍이 왕자의 난이 터지지 않았다면 나중에 정주영의 현대처럼 삼성도 삼등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서 정주영의 도덕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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