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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공사에 성공한 것에는, 정주영 특유의 '창조적인 사고방식'이 작용하게 됩니다. (아산 정주영 공법 사건)


정주영: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자재를 빨리 수송하는 방법밖에 없다. 울산에서 철구조물들을 전부 제작해서 해상으로 운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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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현대는 당시 울산에서 89개의 철 구조물 '자켓'을 미리 제작해서 해상으로 수송을 하게 됩니다.

(자켓 하나의 무게가 550톤이고 높이는 36미터로 10층짜리 빌딩과 맞먹음)

(당시 현대는 바지선을 서로 연결하여 이런 자켓을 해상으로 수송했고, 사람들은 이것을 '뗏못 수송 작전'이라고 불렀음)


당시 바지선으로 자켓을 운반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고, 또한, 세계 최대의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몬순(계절풍)이 부는 인도양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고라도 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현대건설 임직원들은 정주영의 이 계획에 처음에는 반대를 했고, 그 다음에는 정주영에게 보험 가입을 권했는데, 정주영은 오히려 보험 대신에 '만약 사고가 나더라도 자켓이 바다 위에 떠 있도록 하는 공법을 찾아서 제작하라'라고 지시를 합니다.


즉, 정주영의 '무모한 지시' 이면에는, 그 나름대로 위험성을 회피하기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 숨어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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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분에 바지선은 19회 항해중에 2번의 사고를 당해도 별다른 피해가 입지 않습니다.

8차 항해때 대만 국적의 배와 충돌하여 자켓에 경미한 손상을 입은 것과, 나중에 태풍으로 바지선 1척을 잃었지만 나중에 다시 회수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조선과 자동차, 중동 진출이 모두 1970년대 초반에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1970년대는 정주영의 나이가 50대 후반이었는데, 당시까지 쌓인 경륜과 특유의 추진력이 절묘하게 결합되어서 시너지를 일으키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덕분에 현대조선과 현대자동차, 현대건설의 중추가 이때 확립된 것이 아닌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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