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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정주영의 대표적인 업적은, 현대그룹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1981년에, 88 서울올림픽 유치 위원회 위원장으로 피선되어서 올림픽 유치에 밑거름이 되었고,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다음에는 '올림픽 조직 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서 서울올림픽이 제대로 개최되도록 역량을 총동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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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계자: "서울에 올림픽을 유치하자는데 서울시가 전혀 나서지 않았다. 올림픽 전시관을 개관하는 데 당시 서울 시장이 불참할 정도였다."


당시 관계자: "이미 일본 나고야로 개최지가 일본 나고야로 결정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정주영회장이 나선다는 말에 '망신만 당할 것이다.'라는 비웃음만 팽배했다."


당시 관계자: "서울올림픽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남북 분단 상황이었다. 1972년 서독 올림픽 때 테러가 발생했기에, 당시 안전 문제에 다들 민감했다. 당시 남한은 북한과 언제든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라고 다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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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계자: "그런데 정주영 회장은 오히려 이를 역이용했다. 즉,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았고, 1984년 LA 올림픽때는 공산권 국가들이 불참을 예고한 상태였다."


당시 관계자: "그런 상황에서 정회장은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면, 올림픽 정신에 맞게 전세계가 화합할 수 있고, 북한도 테러를 저지르지 못할 것이라고 호소했고, 이게 통한 것이다."


정주영의 창의성이 발휘된 것은, 서울올림픽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주영이 1984년 서산 간척지 사업을 성공하게 되는데, 이 사업에서도 정주영 특유의 '창의성'이 발휘되었죠.


즉, 착공 5년째이었던 1984년에 최종 물막이 공사가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습니다. 총길이 6400여미터의 방조제중에서 마지막 270미터에서 무서운 급류가 흘렀고, 아무리 바위와 자갈들을 짚어넣어도 급류가 모든 것을 앗아갔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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