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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주영은 포드사와 결별을 선언하고 단독으로 자동차 공장을 만들기 시작하게 되었죠. (1974년 7월)


아마 정주영은 조선소를 막 성공한 이후에 자신감에 충만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현대의 자동차공장은 연간 5만 6천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었는데, 금액만으로 따지면 '조선소'보다 더 큰 모험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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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제가 무모하다고요? 난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지만, 사실 (자동차 공장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결국 1975년 현대는 자동차 포니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76년부터 판매를 시작했는데, 결국 포니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16번째, 아시아에서는 두번째 (일본 다음으)로 독자적인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됩니다.


정주영의 도전 정신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없던 산업 혹은 규모가 작았던 사업인 자동차와 조선을 대규모로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이죠.


정주영의 마지막 업적은 바로 중동 진출입니다.

원래 정주영은 1965년부터 꾸준하게 해외 진출을 시도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 9월 540만달러에 태국의 파티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공사를 따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해외공사 수주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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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기에, 이 사업에서 현대건설은 적자를 보게 됩니다.

당시 태국의 인부들은 현대의 건설 장비를 제대로 다룰 줄 몰랐고, 기후, 풍속, 법률 등이 모두 다른 외국땅이었기에, 정주영의 추진력도 통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 다음에 진출한 베트남 건설 공사 역시 현대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합니다. 전쟁 복구 사업이나 메콩간 준설 공사 등을 따내기는 했지만 오히려 적자만 봤고, 게다가 미국의 철수로 사실상 현대는 1973년부터는 베트남에서 더 이상 사업을 하지도 못하게 되었죠.


이후 정주영이 눈을 돌린 곳은 바로 '중동'이었습니다.

당시 1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원유 가격이 약 4배 가량 올랐고, 한국 경제 역시 부도직전까지 몰리게 됩니다. (1973년)


이때 정주영은 오히려 오일머니가 모이는 중동으로 눈을 돌려 진출하게 됩니다.

"돈을 벌려면 세계의 돈이 몰리는 곳으로 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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