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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6.25 전쟁 당시에 이병철의 삼성가의 전통(?)을 하나 세우게 됩니다.


바로 아들들인 이맹희와 이창희 등을 군대에 보내지 않고, 몰래 일본 유학을 보낸 것이죠.


이맹희는 1931년생으로 1952년 기준으로 22살, 이창희는 1933년생으로 1952년 기준으로 20살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이 군대에 징병되었고, 어린 학생들마저 학도병으로 최전선에서 싸울 때 이병철 아들들은 일본에서 공부를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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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희: "내가 1952년 동경농과대학에 정식으로 입학을 했고, 그 해 동생 창희까지 일본으로 공부하러 건너 왔다."


이맹희: "아버지께서는 우리 형제들의 숙식을 구라다상 (이병철 일본인 첩)에게 우리 형제들의 숙식을 맡겼다."


(참고로 이병철의 일본인 부인 구라다는 이맹희와 비슷한 나이였음)

당대의 라이벌 이병철 정주영 사진


이맹희: "(아버지 이병철의 일본인 애첩때문에) 고국의 어머니 생각 때문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맹희: "(어느날) 스무 살 안팎의 먹성 좋던 우리 형제(이맹희와 이창희 형제)와 친구 두어명이서 달걀 20여 개를 삶아서 한꺼번에 먹어치웠다."


이맹희: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구라다상으로서는 그런 우리를 보고 한편으로는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퍽 난감했던 모양이었다. 계란을 먹은 다음에 방안에 누워 있는데, 가정부와 구라다 상이 하는 얘기 소리가 들렸다. "이러다간 한 달 생활비로 일주일도 못 버티겠다", 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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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맹희: "(이 말에 화가 나서) 구라다상을 붙잡고 한참 욕을 했다. (아마 나의 그런 행동 이면에는) 고국에 계신 어머니 (이병철 정식 아내 박두을 여사)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이맹희: "아버지께서는 구라다상으로부터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나를) 매로 다스리셨다.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것은 우리 남매 모두를 통틀어서 나뿐이었고, 나도 구라다 상 사건으로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맹희: "귀국하는 날 내가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이 일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상당히 고초를 겪었던 모양이다."


이맹희: "어머니 (박두을 여사)로서는 남편이 일본에 여자를 두고 있다는 것도 문제거니와, 집안의 장남이 먹는 걸로 그런 소리를 들었다는 점에서 퍽 화가 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병철의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1남 1녀가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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