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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 이야기/이병철

삼분폭리사건과 이병철의 업적

아무튼 이병철은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의 성공을 발판으로 큰 돈을 벌게 되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5.16쿠데타가 일어났고, 이병철은 부정축재자로 구속이 됩니다. 당시 이병철이 재계 1위였기에, '부정축재자 1호'로 불리게 되었죠. (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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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병철은 군사 정권에 협력을 약속하고, 군사정권 역시 경제 성장을 위하여 이병철과 타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비호를 받던 일부 재벌들이 '삼분폭리사건'을 일으킵니다. (1964년)


제일제당의 설탕, 대한제분의 밀가루, 동양시멘트와 대한양회의 시멘트 등은 사람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었습니다.

이병철과 박정희 사진

당시 박정희 정권은 어떻게 해서든 재벌들로부터 '돈'을 긁어 모으려고 했고, 이병철 역시 이익 극대화를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병철은 박정희 정권의 비호아래 '세금포탈과 폭리'를 취했고, 박정희 정권은 이를 빌미로 불법 자금을 받아서 챙기게 되었죠.

(박정희가 재벌들로부터 이렇게 받아서 챙긴 비자금 규모는 수억 달러에 해당한다고, 미 의회 프레이저 보고서에 나옴)


1964년에 일어난 사건인데, 몇년동안 폭리로 고통받던 사람들의 불만이 누적되었다가 한꺼번에 터진 사건이었죠.


사실 삼성 이병철의 업적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이런 과거를 잊어서는 절대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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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년 뒤인, 1966년에는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집니다.

원래 이병철은 이병철은 사카린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를 건설 자재로 속여서 밀수를 했고, 그외에도 엄청난 품목들을 밀수하게 됩니다.


이병철: "이 사건은 (박정희) 정부가 삼성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난 억울하다."


이병철 아들 이맹희: "1965년 말에 시작된 한국비료 건설과정에서 일본 미쓰이는 공장건설에 필요한 차관 4200만 달러를 기계류로 대신 공급했다."


이맹희: "그로 인하여 삼성에 리베이트로 백만 달러를 줬고, 아버지는 이 사실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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